[뉴시안=양지열 편집 자문위원/변호사]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자기 생각과 맞아 떨어지는 정보는 적극적으로 받아 들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무시하는 성향이다. 심리학자들은 확증편향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확증편향이 일어나는 이유 중 하나는 누구나 자신의 경험에 비춰 세상을 바라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어떤 경험에, 알고 있는 어떤 사실 관계에, 일어나는 현상을 끼워 맞춘다. 척 보면 안다는 식이다. 두뇌의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 판단은 빨라지지만, 새로운 사실에 대한 판단을 왜곡시키기도 쉽다.
 
그런 측면에서 오피니언 리더라는 말이 맞는지 고개를 갸웃거리게도 만든다. 방송과 신문 지상에서 격렬한 토론이 벌어지지만 그들이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들을 좋아해주는 관객들이 좋아할 만한 얘기들을 할 때가 더 많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얘기지만 '확증'을 주기 때문에 그들을 리더라고 부르는 것이다. 정치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때가 많다.
 
드루킹의 댓글 조작
 
드루킹이라는, 작명 방법부터 희안한 존재가 나라 전체를 뒤흔들고 있다(게임에 나오는 마법사 종족에서 따왔다고 한다). 선거판을 거짓으로 만들었던 사건으로 특검, 국정조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있다. 정치판에 널린 브로커의 복수극이었을 뿐이라는 시각이 있다. 각각은 어떤 확증편향이 있을까?
 
우선은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라 공방을 주고 받을 수밖에 없는 여야 정치권이다. 그들을 따르는 지지계층도 물론이다. 온라인 정치를 어떻게 보느냐의 차이도 있을 수 있다. 논공행상이라는 대가관계 없는 행위가 있을 수 없다는 인식이 있다. 순수하게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표출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믿음도 있다.
 
현재로서는 어느 쪽도 확실하다고 할 수 없다. 그런데도 이미 확증들을 드러내고 있다. 김경수 의원이 협박을 당했다고 말했던 사실을 두고 해석이 갈린다. 한 쪽에서는 뭔가 켕기는 게 있으니까, 폭로할까봐 두려워 협박 받았다고 한 것 아니냐고 한다. 다른 쪽에서는 순수한 지지세력으로 믿었던 사람이 돌변해 선거에 도움을 준 사실을 정치적 스캔들로 왜곡시키려 하는 자체가 협박 아니냐고 한다.

인사 청탁을 했다는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부정한 거래를 했으니 청와대에 추천까지 하지 않았느냐고 한다. 하지만 그런 관계였다면 어떻게 기자들 앞에서 사실을 밝히느냐고 맞선다. 의혹이라고 불리는 대부분의 것들이 이렇다.
 
그런데 말이다. 문제의 발단이었던 아이스하키 단일팀을 돌이켜 보자. 드루킹이 정부를 비판하는 댓글을 달고, 수많은 공감 버튼을 눌러 여론을 조작했다는 것부터 말이다. 거기엔 어떤 확증편향이 있었을까?
 
평창 동계 올림픽에 대해서는 이미 회의적인 시각이 있었다. 지난 정권들에서 유치했던 일이고, 최순실의 이름이 끼어 들기도 했다. 남북관계라는 명분만으로 무조건 박수를 치며 지지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더 이상 아니었다. 김정은이 핵미사일로 전 세계를 불안하게 하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아무리 노력해도 미래가 불투명한 젊은층은 기성세대의 갑질에 희생 당한다는 인식이 있다. 이런 것들이 확증편향이었다. 그 와중에 올림픽만 바라보며 땀과 눈물을 흘려 온 젊은 선수들이 희생 당한다는 뉴스가 올라왔다. 부정적인 여론이 일었던 것은 드루킹의 매크로 조작으로 이뤄진 것일까? 아니면 이미 존재하는 확증편향에 숟가락을 얹은 것일까?
 
안철수와 MB 아바타
 
다른 누구보다 바른미래당 안철수 인재영입위원장이 비판 수위를 높이고 있다. 안 위원장은 지난 대선 자신에게까지 상당히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보고 있다. 문재인 정권이 정당성을 잃었다며 '불법 여론조작 게이트'로 규정하고 있다.
 
실제로 안 위원장이 '이명박의 부활'이라는 주장은 드루킹의 블로그 곳곳에서 발견된다. 특히 당시 문재인 후보의 지지율에 육박할 만큼 안 위원장이 올라왔을 때 그런 글들이 집중됐다는 언론 보도도 있다. 안 위원장이나 그 지지자들이 의혹을 품을만 하기도 싶다.
 

하지만 드루킹이 그런 말을 만들어 냈던 것은 이미 2012년 대선 때였다고 한다. 게다가 그 얘기가 얼마 만큼이나 대중들에게 퍼져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MB 아바타'라는 말을 온 국민에게 알린 것은 안 위원장 본인이었다. TV토론에서 문 후보에게 공개 질의를 하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무슨 뜻인지 궁금해 하며 찾아 보게 만들지 않았던가.
 
사실 이 문제는 확증편향을 만드는 방법 혹은 극복하는 방법과도 관련된다. 대중이 경험하지 않았던 완벽한 새로운 사실을 알리는 것이다. 새로운 확증편향을 덧씌우기하는 것이다. 선거판에서 허위 사실 유포를 통해 노리는 네거티브 여론전이 그런 것이다. 알고 보니 그 사람이 이러저러 했다더라고 말이다.
 
물론 이 마저도 기존에 어느 정도 비슷한 확증편향을 가졌을 때 잘 통한다. 보수정권이 걸핏하면 '빨갱이'를 들고 나오는 것도 전쟁을 겪은 세대의 확고한 확증편향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쪽이건 저쪽이건 지지가 확실할 때는 좀처럼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그런 것이 없는 부동층을 겨냥하는 것이다. 아니면 물들지 않은 새로운 세대를 겨냥하는 것이다. 젊은 층을 겨냥해 온라인에서 조직적 반복적으로 이뤄졌던 국정원 댓글 사건이 그랬고, 국정 교과서를 만들어 미래세대에게 자신들이 원하는 확증편향을 심어 주려던 시도가 그랬다.
 
드루킹에 의해, 혹은 그와 연결된 당시 민주당 진영에 의해 그 만큼의 노력이 있었던가? 국민들이 'MB 아바타'라고 믿을 만한 그럴듯한 허위사실들이 퍼져 있었던가? 자신에 대한 잘못된 확증편향을 극복하기 위해 TV토론에서 이슈로 삼을 만큼 절박한 상황이었다는 입증이 먼저 필요하다. 그런 전제를 밝히기도 전에 '게이트'를 거론하는 것은 성급하지 않을까?
 
아직은 정치공세일 수밖에 없는 이유
 
“고마워요 문재인”이라는 문구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 기념 이벤트로 네티즌들이 실시간 검색어 1위로 이 문구를 올렸던 일이 있다. 당초 그 만큼 많은 국민들이 성원을 보내고 있다는 증거라며 화제를 모았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드루킹은 이를 자신이 선물한 것이라는 주장을 한 것이다. 실제 이를 주도했다는 카페 회원들은 분개하고 있다. 자신들의 카페 회원수만 16만명인데 어떻게 드루킹의 작품이냐는 것이다.
 
어느 쪽 말이 맞을까? 드루킹은 그런 주장을 자신이 주도한 모임 회원들을 향해 하고 있다. 그 만큼 자신의 영향력이 크다는 얘기인 셈이다. 그런 식의 확인되지 않은 주장들이 반복됐던 덕분인지, 회원들은 드루킹의 일본대침몰 예언을 믿고 따를 정도로 확증편향이 형성돼 있다고 한다.
 
드루킹을 둘러 싼 일들은 황당하기 그지 없는 것들이 많다. 미심쩍어 보이는 것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확실한 건 아무 것도 없다. 앞서 보았듯이 충분히 다른 해석이 맞설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런데도 '사실'로 규정하고 '게이트'를 운운하는 것은 자신들의 확증편향을 과신하는 것이 아닐까? 때 이른 정치공세로 정작 해야 할 정치만 마비 시키는 것 아닐까 말이다.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인 확증편향을 강화할까봐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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