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경찰이 범인 캄잣 아지모프에게 쏜 총알 중 한 발이 근처 까페 유리창에 박혔다.(사진=AFP)
파리 경찰이 범인 캄잣 아지모프에게 쏜 총알 중 한 발이 근처 까페 유리창에 박혔다.(사진=AFP)

[뉴시안 '알로! 파리'=홍소라 파리 통신원] 프랑스 파리 2구. 2018년 5월 12일 토요일 밤 9시 경. 한 남자가 거리에서 무차별적으로 칼을 휘둘렀다.

사람들은 겁에 질려 도망갔고, 거리는 칼에 찔린 사람들의 피로 물들었다.

범인은 사살되기 직전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를 외쳤다고 전해진다.

이 칼부림으로 네 명이 다치고 한 명이 목숨을 잃었다.

2015년 1월,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 이후 벌써 다섯 번째. 이로써 프랑스에서 최근 3년간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공격으로 인해 희생당한 이의 수는 230명을 넘겼다.

슬프지만 폭력과 위협은, 그 대상이 직접적으로 자신 혹은 자기 주위의 사람이 아닌 이상에는 쉽게 익숙해 진다.

하지만 이번 칼부림 사건의 발생은 2015년 11월 파리테러 이후 선포된 계엄령이 해제된 지 아직 1년도 채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프랑스에 사는 한국인으로서 이번 사건이 더욱 섬뜩하게 느껴진다.

칼부림이 일어난 장소가 한국인 및 일본인 상권이 모여 있는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적잖은 언론이 말한 것처럼 해당 장소는 그 역사와 화려함을 자랑하는 파리의 오페라 가르니에 근처로, 언제나 관광객과 파리지앵들로 북적거리는 곳이기는 했다.

하지만 사건 장소는 오페라보다는 오히려 한국 슈퍼 및 식당, 파리바게트 오페라 지점과 더 가까웠다.

본 통신원 역시 그날따라 간장이 똑 떨어지는 바람에 한국 슈퍼에 갈까 심각하게 고민을 하다가 토요일의 게으름을 누리기로 결정했던 터였다.

게으름이 아니었다면 칼에 맞아 피를 흘리며 길에 쓰러진 이가 내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사건이 일어난 그 시각, 모처럼 라멘을 먹으러 그 동네를 찾았다가 눈 앞에서 사람이 칼을 맞아 쓰러져 죽는 광경을 목격한 프랑스 국립동양어문화대학(INALCO) 일본학과의 한 학생은 여전히 트라우마를 호소하고 있다.

사건 발생 직후 현장을 통제하고 있는 파리 경찰.(사진=AFP)사건 발생 직후 현장을 통제하고 있는 파리 경찰.(사진=AFP)

범인은 프랑스 국적의 캄잣 아지모프(Khamzat Azimov). 2016년부터 테러의 위험이 있는 요주의 인물로 당국의 감시와 관리를 받고 있었다.

그러한 이유로 정치인들은 ‘도대체 정부는 뭐 하는 거냐’, ‘이게 모두 이전 올랑드 정부의 탓이다’ 등으로 한참 설전을 계속했다.

한편, <샤를리 에브도> 사건 때부터 점차 확산되기 시작한 반 이슬람 정서는 시민들의 끝없는 자정 노력에도 불구하고 극우의 부상 및 정부의 우클릭 경향과 함께 점점 노골적으로 표출되고 있다.

실제로 얼마 전 프랑스 정부는 보다 엄격하고 자국 중심적인 이민 및 난민 정책을 취하기 시작했다.

또한, 2018년 5월 18일 엘렌 비다르(Hélène Bidard) 파리 부시장의 발표에 따르면 전세계 셀럽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파리 8구의 유명 레스토랑 <라브뉘 (l’Avenue)>에서 공공연하게 아랍인과 히잡을 쓴 여성들의 출입을 금지하고 있어 검찰이 조사에 착수했다.

아랍계 이름으로는 레스토랑의 예약도 불가능하다는 소식이다.

인종차별을 법으로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는 프랑스에서 이는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으나, 최근의 반 이슬람 정서를 생각하면 그다지 새로운 일도 아니라는 것이 프랑스 사회의 일반적인 반응인 것으로 해석된다.

이제 갓 스무 살을 넘긴 청년이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

체첸 공화국에서 태어난 캄잣 아지모프는 2000년에 가족과 함께 프랑스에 도착했다.

당시 캄잣의 나이 세 살. 아지모프 가족은 처음에는 프랑스 남부의 니스에 머물렀고, 이후 스트라스부르로 이사했다.

프랑스와 독일 사이의 국경에서 그리 멀지 않은 도시인 스트라스부르 교외에는 전쟁을 피해 프랑스로 온 체첸인들이 모여 살고 있었다.

캄잣의 가족은 2004년에 난민 자격을 인정받았고, 2010년, 캄잣은 프랑스 국적을 획득했다. 2016년에는 대학입학자격시험에 합격했다.

같은 해부터 ‘요주의 인물’로 프랑스 당국의 감시를 받기 시작한다. 이는 캄잣이 체첸공화국 내 과격 조직과 모종의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의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단, 범죄기록 및 전과가 전혀 없고, 테러와 관련된 그 어떤 활동도 한 적이 없기 때문에 캄잣에 대한 감시는 약한 수준에 머물렀다.

2017년부터 파리 18구의 허름하고 작은 호텔방에서 가족과 함께 지내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캄잣의 이웃과 호텔 지배인에 따르면, 그는 거의 없는 사람인 듯 지냈다고 한다.

캄잣이 반사회적 징후를 보이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FranceTVinfo>와의 인터뷰에서 캄잣의 동창이라 밝힌 한 남성은 학창시절 캄잣은 그저 조용하고 다른 친구들과 크게 어울리지 않는 아이였다며, 이번 칼부림 사건의 범인이 캄잣이라는 것이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아지모프 가족이 스트라스부르에 살던 시절, 가족의 주치의였던 빅토리아 졸티 (Victoria Zolty) 역시 캄잣이 범인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고 밝혔다.

사건 발생 직후 파리 경찰이 현장을 통제하고 있다.(사진=AFP)
사건 발생 직후 파리 경찰이 현장을 통제하고 있다.(사진=AFP)

<르 파리지앵>과의 인터뷰에서 졸티는 당시 13세였던 캄잣은 약간 낯을 가리기는 했으나 임산부에게 자기 자리를 양보하는 등 착하고 예의바른 아이로 기억했다.

또한 월반을 할 정도로 학교 성적이 좋았고, 부모를 위해 프랑스어 – 러시아어 통역을 해 주거나 정부 보조금을 요청하는 서류를 작성하는 등 프랑스어에도 능통했다.

게다가 보통의 체첸 출신 난민 아동이 전쟁의 트라우마로 인하여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데에 반하여 캄잣에게는 그러한 징후가 전혀 보이지 않았고, 인생에서 성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던 청소년이었다.

<샤를리 에브도> 사건의 쿠아시 형제, 파리 테러의 압데슬람 형제 및 압델하미드 아바우드, 니스 트럭 테러의 마호메드 라후에유 부렐, 그리고 이번 사건의 캄잣 아지모프까지.

이들의 공통점은 프랑스 (압데슬람 형제는 벨기에) 사회의 구성원이지만,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했다는 데에 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자신의 피부색을, 이름과 성을, 부모와 조상을 바꾸지 않는 한 자신이 디딛고 있는 땅에서 이들은 주변인에 지나지 않았다.

이들의 절망감은 급진적인 이슬람 세력과 만나 시한폭탄이 되고 말았다.

2년에 걸친 프랑스의 계엄령도 이 시한폭탄을 막지 못했다. 하지만 걱정이다. 프랑스 정부는 점점 더 우클릭을 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프랑스 국적을 가진 사람들 중 스스로 프랑스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밝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서류상으로는 프랑스에 속해 있으나 심정적, 정신적으로는 다른 곳에 소속되어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고국을 버릴 준비가 되어 있다.

이렇게 상처받은 아이들을 프랑스 사회가 보듬지 못하는 한, 제2의, 제3의 쿠아시와 압데슬람, 부렐, 캄잣은 언제든 어디서든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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