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 노란조끼운동과 격동 프랑스 사회, 마크롱의 운명 ①
[신년특집] 노란조끼운동과 격동 프랑스 사회, 마크롱의 운명 ①
  • 홍소라 파리 통신원
  • 승인 2019.01.04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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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롱 대통령의 불통 이미지에 시민 분노
‘마크롱 퇴진!’ 외치는 정치운동으로 진화
2018년 사망자 이미 10명, 경찰 과잉진압 논란
시위대는 프랑스 국회와 정부를 “해산하라!”고 주장한다 (사진=뉴시안 홍소라)

뉴시안에서는 신년 특집으로 작년 한 해 프랑스를 뒤흔들었던 ‘노란조끼운동’을 총정리하는 두 개의 시리즈 기사를 게재합니다. 노란조끼운동은 일견 단순했던 민생 관련 이슈가 진화하여 어떻게 거대한 개혁운동으로 발전했는가를 잘 보여줍니다. 파리 현지에서 기사를 보낸 본지 홍소라 파리 통신원은 이 운동의 원인과 전개, 향후 전망을 치밀한 현장취재를 통해 분석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열독을 기대합니다.<편집자> 

[뉴시안=홍소라 파리 통신원] 노란조끼운동(mouvement des Gilets jaunes)은 마크롱 정부에 반대하는 프랑스의 시민들이 교통안전을 위해 입도록 되어 있는 형광색의 조끼를 입고 거리로 나와 시위를 펼친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2018년 10월에 시작하여 12월 말인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 시작은 마크롱 정부의 유류세 인상 정책을 발표하면서로 알려져 있으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사람들이 노란 조끼를 입게 된 것은 자클린 무로(Jacqueline Mouraud)라는 여성이 페이스북에 영상을 올리면서부터였다. 영상에서 무로는 “언제까지 운전자들을 괴롭힐 거냐”라며 마크롱에게 항의했고, 여기에 공감한 시민들이 노란 조끼를 입고 거리로 나서게 된 것이다. 

프랑스는 파리나 리옹 등과 같은 몇몇 도시를 제외하고는 자동차가 없이는 살 수가 없다. 도시에서 비싼 집세를 감당하고 살지 않는 이상, 자동차란 일상에 필수적이다. 그런데 마크롱 정부 하에서 기존의 최고속도 90km/h가 80km/h로 낮아지면서 동시에 단속 카메라는 늘어났다. 

한국과 달리 프랑스의 네비게이션은 단속 카메라 위치를 알려 주지 않는다.

대도시 진입 시 지불해야 하는 혼잡통행료가 신설되기도 했다. 보통 도시 교외에 사는 이들의 경제 생활이 자신의 거주지가 아니라 도시에서 이루어짐을 감안하면 마크롱의 일련의 정책은 서민에게 과해지는 세금을 늘리는 방향으로 전개되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이에 화가 난 시민들은 소셜네트워크를 통하여 자신들의 분노가 나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것임을 확인하였고, 결국 10월 10일을 전후하여 혼자 혹은 소그룹으로 자신들이 사는 지역의 원형 교차로를 점거하여 자동차의 통행을 방해하는 식으로 모여 들기 시작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소셜 네트워크를 매개로 퍼져 나갔다.

노란조끼 운동이 전국적인 규모로 확대되고, 그 운동의 장소가 교차로 및 도로에서 거리로 바뀌기 시작한 데에는 2018년 11월 9일의 사건이 있었다. 

이날 마크롱 대통령은 곧 있을 제1차 세계대전 휴전기념일을 맞아 프랑스 북부의 알베르(Albert)라는 도시를 방문했다. 1차대전 당시 알베르에서는 연합국의 승전의 발판이 된 중요한 전투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 노란조끼운동 참가자들 몇 명이 대통령을 만나 직접 이야기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이들은 저지당했고, 노란조끼들은 대통령은 자신들과 소통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다. 


◆ 11월 17일 1차 시위-한 명 사망 227명 부상

노란조끼들은 11월 17일, 시위를 예고했다. 하지만 마크롱은 유류세 인하는 불가하다는 반응을 보였고, 필립 에두아르 국무총리는 도로 점거는 불법이니 시위 참가자들이 처벌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분노에 불을 지핀 격으로 결국 예고된 시위가 현실이 되었다.

본래 교차로 등 도로 점거를 주 활동으로 했기 때문에 1차 시위 역시 파리 외곽순환도로 점거로 시작되었다. 파리 외의 다른 도시에서도 도로 점거 위주로 진행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여러 건의 교통사고가 발생해서 죽거나 다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한 명 사망 227명 부상. 파리에서는 정오가 조금 지난 시각, 노란조끼들이 개선문에 나타났다. 

대통령 관저인 엘리제 궁으로 마크롱을 ‘찾으러’ 갔던 것이지만 이들의 시도는 번번이 무산되었다. 오후 세 시 무렵에는 엘리제 궁으로 향하는 노란조끼들을 막기 위해 경찰이 최루탄을 사용하기도 했다. 

이쯤 되자 노란 조끼들의 구호는 ‘마크롱 퇴진’으로 집중되기 시작했다. 이 날 프랑스 전역 3천 여 곳에서 28만 여 명이 노란 조끼를 입고 밖으로 나왔다. 이 수치는 프랑스 내무부의 발표 자료에 의한 것인데, 보통의 집회와는 달리 따로 주최 측이 없기 때문에 자체 집계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실제로 이후 노란 조끼 시위 참가자 수에 대한 내무부 발표를 믿을 수 없다는 정치인들의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1차 시위는 프랑스 사회에서 많은 호응을 이끌어 내어 70%가 넘는 프랑스인들의 지지를 받았다.

◆ 11월 24일 2차 시위-샹젤리제를 점거하다

1차 시위가 끝나자마자 소셜 네트워크에 그 다음 주 토요일 시위를 예고하는 글들이 올라왔고 전파되었다. 

샹젤리제가 본격적으로 점거되기 시작한 것은 2차 시위 때부터이다. 1차 시위에서 마크롱에게 가는 길이 막힌 것에 분노한 이들이 이제 도로 점거를 내려 놓고 거리로 올라선 것이라 이해할 수 있겠다. 

그와 함께 노란조끼들은 파리의 심장인 샹젤리제로 집결하기로 의견을 모으고 있었고, 정부에서는 에펠탑 앞의 마르스 광장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정부 방침에 따라 경찰은 처음에는 샹젤리제로 향하는 노란조끼들을 가로막았으나 2차 시위 당일인 11월 24일, 워낙 많은 사람들이 몰리면서 결국 노란조끼들은 소기의 목적, 즉 샹젤리제 점거를 달성했다. 

이 날 시위에는 최루탄과 물대포가 등장했고 이 과정에서 24명이 부상당했고 101명이 경찰에 연행되었다. 

폭력적인 장면이 다수 연출되면서 정부에서는 이를 극우와 극좌의 난동으로 파악했고, 이는 별다른 여과 없이 미디어를 통하여 전파되었고, 노란조끼들이 극단적인 세력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시각이 번져나간 것은 여기에서부터인 것으로 파악된다. 

내무부 발표에 따르면 11월 24일 제2차 노란 조끼 시위에서는 16만6천여 명의 시민이 참가했다. 또한 이 날 프랑스인들의 노란 조끼에 대한 지지율은 84%였다.

노란조끼는 “부유세를 부활시키라!”는 요구를 강력히 제기하고 있다 (사진=뉴시안 홍소라)

◆ 12월 1일 3차 시위-음모론이 나돌다

폭력적인 장면이 가장 많이 발생한 시위로, 2차 시위 바로 다음 주인 12월 1일 토요일에 진행되었다. 

프랑스 전역에서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았는데, 프랑스 남부의 니스 공항으로 가는 길목을 노란조끼들이 막아 비행기 이용이 몇 시간동안 불가능했는가 하면 마르세이유에서는 경찰차가 불에 타고 보석상이 털리기도 했다. 

디종에서는 시청 근처에서 방화 사건이 일어났고, 보르도에서는 시위대가 시청으로 진입하려다가 경찰과 무력 충돌을 일으켜 7명이 부상당했다. 

리옹 근처의 생테티엔에서는 시위대에 의해 슈퍼마켓이 털렸고, 프랑스 중남부의 오트 루아르 지방에서는 화염병으로 인한 경시청 방화 사건도 있었다. 이 화재를 진압하고자 소방차가 출동했는데 시위대가 이를 저지하기도 했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린 파리에서는 폭동 혹은 소요라고까지 불릴 만큼 충격적인 장면들이 많이 발생했는데, 한국 언론에서는 “프랑스 혁명의 상징 마리안 조각상까지 파손되었다”는 식으로 보도되었다. 

실제로 개선문 외벽에 스프레이 페인트로 ‘마크롱 꺼져라 (Macron degage)’라고 적힌 낙서와 내부의 마리안느 조각상이 훼손된 장면이 빈번히 소개됐던 것으로 보인다. 

이날 하루, 파리에서만 경찰특공대는 만 여 개의 최루탄을 사용했고, 파리 경찰에 따르면 총 133명이 부상당했고 412명이 연행되었다. 내무부는 이날 13만 6천 여 명이 시위에 나섰다고 발표했다. 

워낙 폭력적인 장면 위주로 방송에 보도되면서 노란조끼에 대한 우려와 함께 여러 음모론이 나돌았다. 가장 주된 음모론은 노란조끼 뒤에 마린 르펜이 있다는 거였고, 러시아 언론은 노란조끼들 뒤에 트럼프가 있다고도 했다. 

반면 노란조끼 시위는 점차 유류세 인하 뿐만 아니라 마크롱 정부의 정책 전반에 대한 요구로 번져 갔고, 각종 시민단체나 노조 역시 노란 조끼에 적극적으로 합류하기 시작했다. 

◆ 12월 8일 4차 시위-경찰 과잉진압으로 부상자 속출

마크롱은 3차 시위 이후에도 처음에는 “유류세 인상 철회는 없을 것”(12월 2일), 이틀 후인 12월 4일, “유류세 인상 6개월 유예”, 바로 다음 날 12월 5일 “유류세 인상 전면 폐지” 등 불과 3일 만에 입장을 바꾸었다. 

그런가 하면 3차 시위에서 워낙 사건 사고가 많았기 때문에 정부에서는 거의 유래 없을 정도의 경찰 인력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총 8만9천 명. 파리에는 장갑차까지 등장했다. 

새벽부터 경찰들이 시위 장소에 진을 치고 통과하는 이들의 짐을 일일이 검사해서 무기로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을 가진 이들을 미리 연행해 가기도 했다. 13만 6천여 명의 노란조끼들이 시위에 참가했다. 

이는 마크롱의 입장 발표 시기가 너무 늦었다는 것도 있지만, 짧은 기간에 여러 번 말을 바꾸면서 신뢰도가 더욱 추락한 측면도 있고, 또한 이제 노란조끼운동의 목표가 단순히 운전자 관련 정책에만 국한되지 않음을 반증하는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13만 6천 명 시위 참가자 중 연행자만 1723명이 나왔다. 이제 미디어는 노란 조끼의 구호에는 크게 관심이 없고 과연 오늘 시위에서 얼마만큼의 경찰과의 충돌이, 드라마틱한 장면이 연출될 것인가에 집중한다. 

실제로 이날 시위는 각종 뉴스 채널에서 하루 종일 생중계되었는데, 전문가 몇몇을 패널로 앉혀 놓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현장을 보여 주는 형식이었지만 뭔가 경찰이 최루탄이라도 던질라치면 진행자들이 노골적으로 흥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말았다. 

이전의 3차 시위보다 확실히 폭력 및 방화 사건이 줄어든 반면, 경찰의 과잉 진압에 의해서 부상자가 속출했다. 264명 중에는 경찰이 쏜 플래시 탄에 맞아 눈 한 쪽을 잃거나 손을 잃은 이들도 있었다. 

특히 전혀 무장하지 않고 폭력 의사가 없음을 두 팔을 벌려 입증하려는 노란 조끼에게 대놓고 무기를 사용하는 장면, 총기를 얼굴 쪽으로 겨냥하여 사용한 점 등이 문제가 되었다. 

한편, 경찰의 과잉 진압은 12월 11일, 스트라스부르 크리스마스마켓 총격 테러 사건 등으로 인하여 크게 이슈가 되지 않았다가 12월 말이 되면서 다시 조명받고 있다.

실제로 4차 시위 이후에 노란 조끼 운동은 적잖은 동력을 상실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노란 조끼들도 사람인지라 지쳐 갔고, 두 번째는 스트라스부르 크리스마스마켓 총격 테러 사건이다. 

프랑스는 2015년 두 건의 테러로 인하여 아직도 트라우마에 빠져 있는 상태이다. 실제로 2015년 11월 파리 테러 직후 선포되었던 국가비상사태는 연장에 연장을 거듭하여 2017년 11월에야 종료되었다. 

스트라스부르 테러 사건은 계속되는 노란조끼들의 시위로 인하여 모든 경찰 인력이 한 달 가까이 휴식 없이 동원되는 바람에 발생할 수 있었다는 식의 프레임이 등장하면서 노란조끼 책임론이 떠오르게 된 것이다. 

세 번째 이유는 노란조끼운동에 나타난 일명 파괴자들의 존재이다. 프랑스에서 시위와 평화란 공존할 수 없는 단어들이다. 어떤 형태로든 집회를 하게 되면 어디선가 나타난 이들이 폭력을 행사한다. 

프랑스가 월드컵 우승했을 때도 이들은 나타나서 샹젤리제 고급 상점을 부수고 털어갔었다. 2차 시위까지 이들의 존재가 노란조끼의 폭력성과 파괴성을 증명하는 데에 사용됐다면, 3차 시위부터는 이 파괴자들과 ‘일반’ 노란조끼들을 분류하여 이해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되었다. 

4차 시위에는 이러한 분리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났는데, 경찰 인력이 대거 포진하면서 폭력 사건이 해가 진 이후, 그러니까 대부분의 노란조끼들이 해산한 이후에 파괴자들이 적극적으로 행동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 노란조끼운동이 파괴자들의 존재로 인하여 의심을 사기 시작한 것도 사실이다. 처음에 70%가 넘던 노란조끼 운동에 대한 지지도가 4차 시위 이후 54%로 떨어진 데에는 파괴자들의 활약이 크다. 

네 번째 이유는 마크롱의 유화 정책이다.

12월 10일, 그러니까 4차 시위 이틀 후 마크롱은 TV를 통하여 전국민담화를 내보낸다. 최저임금 월 100유로 인상, 저소득 은퇴자에 2019년 사회부담금 인상 미적용, 연말 보너스에 대한 미과세 방침 등을 골자로 하는 일단의 화해의 제스쳐에 반응이 엇갈렸다. 어떤 이들은 이 정도면 됐다고 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기만이라며 더욱 화를 내기도 했다. 

“(서민의) 세금을 줄이고 월급을 인상하라”고 주장하는 시위대 (사진=뉴시안 홍소라)
“(서민의) 세금을 줄이고 월급을 인상하라”고 주장하는 시위대 (사진=뉴시안 홍소라)

◆ 12월 15일 5차 시위-확연히 줄어든 시위대

결국 5차 시위에서 거리에 모인 노란 조끼들의 수는 확실히 줄었다. 프랑스 전역에서 6만 6천 명에 그친 것.

동원된 경찰 인력이 6만 9천 명이었으니 분위기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짐작이 가능할 것 같다. 파리에는 4천 명이 모여서 시위하는데 경찰 인력은 8천 명이었다. 또 그 중에 179명이 연행되었고 부상자도 있었으나 그리 심각한 부상은 아니었다고 전해 진다.

◆ 12월 22일 6차 시위-2018년 사망자는 10명으로 집계

공교롭게도 마크롱의 생일이 바로 12월 22일이었으나 크리스마스 직전 토요일이었던 데다가 노란조끼의 동력이 상실되어 가고 있는 국면에서 이날 시위에는 적은 수의 시민들만이 참여할 것이 예상되었다. 

실제로 5차 시위의 절반 정도인 3만3천6백여 명만이 참여했다.

다만 노란조끼들은 이전과는 달리 작전을 변경하였음이 엿보였다. 파리에서는 샹젤리제보다는 상징적이면서도 작은 골목이 얼기설기 얽혀 있는 몽마르트에서 집결하여 경찰력을 분산시켰다. 

본래 베르사이유에서 모일 것으로 발표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적잖은 경찰 인력이 배치되었으나 실제로 베르사이유에 모인 노란 조끼는 100명이 채 되지 않았다. 지방에서는 국경을 오가는 도로를 점령하였고, 이 과정에서 또 다시 교통사고가 발생하여 한 명이 사망했다. 결국 노란 조끼 운동으로 2018년에 사망한 이는 10명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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