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이 2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시안=김도진 기자] 이명박(77) 전 대통령이 국가정보원의 특수활동비를 불법으로 상납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진술 증거가 24일 법정에서 공개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정계선) 심리로 열린 이 전 대통령의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뇌물) 등 혐의 공판에서 검찰은 김주성 전 국정원 기조실장의 진술조서 내용을 공개했다. 이 진술은 이미 지난 1월 검찰이 확보한 것으로, 언론에 내용이 일부 보도된 바 있지만 이날 공판에서 자세히 공개된 것이다.

이 전 대통령의 심복 김백준 기획관이 먼저 요청해와

김주성 전 실장은 김성호·원세훈 전 국정원장 시절인 2008년 3월부터 2010년 9월까지 국정원 기조실장으로 재직했다.

이날 공개된 내용에 따르면 그는 조사 당시 '기조실장으로 있을 때 청와대에 특활비를 상납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임명 직후 이모 예산관에게서 김백준 당시 청와대 총무기획관이 도와달라고 한다는 보고를 받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대답했다.

‘왕비서관’또는 ‘MB 집사’로 불렸던 김백준 총무비서관은 이 대통령의 고려대 2년 선배로  이 대통령 임기 5년 내내 총무비서관으로 일한 이 대통령의 심복이다.

김 전 기조실장은 "김백준 기획관에게서 요청이 왔다는 건 청와대에서 얘기가 왔다는 의미"라며 "사기업에서도 이렇게 비자금 만들면 다 알게 되고, 몰래 해도 담당 직원 몇 명은 알게 돼 결국 진실이 알려져 사달이 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도 밝혔다.

이 전 대통령과 독대 요청, “나중에 문제 된다”고 말해

김 전 실장은 이 전 대통령에게 특활비 상납의 위법성을 밝혔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그는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청와대에 가서 직접 면담해 정면 돌파하기로 했다"며 "독대 신청을 해서 이 전 대통령을 만났고, (특활비를 청와대에 주면) 나중에 문제가 된다, 숨길 수 없다는 취지로 간곡히 말씀드렸다"고 털어놨다.

그의 이 말에 이 전 대통령은 "예전에 국정원에서 그런 관례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고, 김 전 실장은 대통령이 자신의 말에 공감했다고 생각하고 국정원으로 복귀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김 전 실장의 진술 내용이 "이 전 대통령이 자금 수수의 문제점과 위법성을 충분히 인식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라고 해석했다.

한편 이 예산관은 자신이 김주성 전 실장에게 김백전 전 청와대 기획관의 요구를 전달한 게 아니라, 2008년 4월께 김 전 실장이 자신에게 "청와대가 도와달라고 하는데 어떻게 하느냐"고 물어봤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그리고 현금 전달 당일 김 전 실장에게서 김 전 기획관 휴대전화 번호를 받았고, 청와대 인근 공원 주차장에서 돈이 든 캐리어 가방을 김 전 기획관에게 전달했다는 것이다.

이 예산관은 "김주성 전 실장이 '오늘 대통령을 만나서 더 이상 상납이 적절하지 않은 것으로 얘기했다'고 자랑삼아 이야기를 한 기억은 있다"고 검찰에 밝혔다.

국정원에 노골적으로 요구, 현금으로 4억 원 받아내

다스 비자금 조성 등 이 전 대통령이 받고 있는 16개 혐의 중엔 김성호 전 국정원 원장 시절인 2008년 4~5월께, 원세훈 전 원장 시절인 2010년 7~8월께 현금으로 각 2억 원씩 국정원 특수활동비 4억 원을 받은 혐의도 포함돼 있다.

지난 1월 처음 김 전 실장의 이 진술이 언론을 통해 나왔을 때 이 전 대통령 쪽은 비서실 명의로 “국정원 기조실장이 대통령을 독대해 이 같은 내용을 보고할 위치가 아니다. 있지도 않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라고 부인한 바 있다. 또 “짜맞추기식 표적수사며 퇴행적인 정치공작”이라고 검찰을 비난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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