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안=김지윤 편집 자문위원/정치학 박사] 유학시절, 채용된 지 얼마 안 된 신입교수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스탠포드 출신의 이 젊은 교수는 할아버지가 텍사스 주 지사를 지낸 남부 명문가 출신으로, 세상만사 자신만만한 사람이었다. 잘 나가는 싱글이었던 그의 집은 비싼 동네에 있는 세련된 로프트였다. 누가 봐도 공화당인 그가 갑자기 사냥 이야기를 꺼내면서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엽총 중 한 정을 들고 나왔고, 체로키 인디언 피를 4분의 1쯤 가진 최강 리버럴인 내 지도교수가 어처구니 없어했다.

그가 왜 메추리 사냥이 생태계를 위해 필요한 지를 설파하고 있을 때, 다른 교수 한 명이 내게 갑자기 물었다. “지윤, 너 총 만져본 적 있니?” 순간 초등학생 수학여행 당시 논산 훈련소에서 군인 아저씨들 도움을 받아 사격훈련 시범을 했었던 기억이 났다. “응. 쏴 본적 있는데.” 엽총을 든 젊은 교수가 눈을 반짝이며 반갑게 물었다. “오, 무슨 총?” “M16.” 거기서 사냥 이야기는 끝이 났고, 나는 분단국가 출신의 터프한 동양여자가 되었다. 나중에 그 질문을 왜 하필 나한테 했느냐고 물었더니, ‘엽총 따위’에 심드렁해 하던 내 표정에 호기심이 생겨서 였다고 했다.

2017년 10월 1일 벌어진 미국 총기 난사 사건. 우리에게도 익숙한 라스베이거스의 만달레이 베이 호텔 부근에서 무려 58명의 사망자와 500명에 가까운 부상자를 낸, 그야말로 최악의 사고였다. 범인인 스테판 패덕은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했고, 호텔 32층에서 컨트리 뮤직 페스티벌이 열리던 아래를 향해 무차별 난사를 했다. 상공에서 비처럼 쏟아지는 총알을 피할 노릇이 없었기에 그 참상이 더했다. 당시 범인은 호텔 방 안에 무려 23정의 총기가 발견되었고, 그 중에는 ‘범프스톡’을 사용해 개조한 탓에 완전자동화기에 가까운 무기도 있었다고 보도되었다.

심심하면 터지는 미국의 총기난사사건을 볼 때마다 모두 궁금해 한다. 도대체 미국이라는 나라는 왜 총기를 아무나 살 수 있게 하는가? 물론, 미국에서도 공식적인 경로로 총기를 구입하려면 신원조회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주마다 규제 수준이 다르고, 패덕이 거주하는 네바다주는 총기 구입이 꽤 쉬운 편에 속한다. 최근에는 인터넷을 통한 개인들 간의 거래나 총기 엑스포 같은 곳에서의 매매 때문에, 위험인물에게 총기가 들어갈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

미 연방수사국(Federal Bureau of Investigation:FBI) 통계에 따르면 미국 전체 가구 중 약 40% 정도가 집에 총기를 소지하고 있다고 한다. 좀 오래된 통계이지만 2007년도에 조사된 스위스의 소총 서베이에 의하면, 미국에서 약 2억7천만 정의 총기가 거래되었으며, 미국인 100명당 88.8정의 총기를 소유하고 있는 셈이라고 했다. 4명 이상의 사망자가 나오는 사건을 집단 총기 사건이라 정의하는데, 전 세계 집단 총기 사건의 3분의 1이 미국에서 발생했다. 이 쯤 되면 전국적인 총기 규제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상황이 아닌가.

한국인이 이해하기 힘든 미국인의 총기 사랑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미국인이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헌법이 있다. 특히, 무기 소지에 관해 언급한 수정헌법 2조는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켜왔다. 딱 한 문장인 이 문구의 해석을 둘러싼 미국 연방 대법원의 유명한 판례가 있는데, 바로 워싱턴 DC 대 헬러 사건이다. 당시 수정헌법 2조가 ‘개인’의 총기 소유의 자유를 보장한 것인지, 아니면 건국 시절 ‘민병대’의 총기 소유권을 보장한 것인지를 두고 논쟁이 있었다. 결국, 연방 대법원은 지금은 고인이 된 스칼리아 대법관을 포함한 5대 4로 전자에 힘을 실어주는 보수적 판결을 내렸다. 수정헌법 2조와 헬러 판결은 총기 소유의 자유를 외치는 전미 총기 협회(National Rifle Association:NRA)의 가장 강력한 무기로 작동해왔다.

또한, 총기 소지 자유에 대한 미국인의 유난한 집착은 연방 정부 불신의 역사와 연관이 있다. 독립전쟁부터 시작해서 서부 개척에 이르기까지, 미국 역사에서 용맹스러운 순간들은 ‘정부’가 아니라 ‘시민’에 의해 만들어졌다. 미국의 독립혁명가들은 전제정치의 압박으로부터 개인의 자유, 특히 사유재산에 관한 권리를 지키기 위해 총을 들었고 승리했다. 서부 개척시대 법 질서가 작동하지 못할 때, 나와 내 가족을 지켜주었던 것은 저 멀리 워싱턴 DC에 있는 연방정부가 아니라 내 손에 쥔 총기였다. 워낙에 반항기 가득하고 자신감 넘치는 시민들이라, 개인의 자유의지와 판단력에 대한 굳은 믿음이 있다. 그래서일까? 이런 집단 총기 난사 사건으로 인해 사상자가 나오면, 항상 총기 구매자 숫자가 늘어나곤 한다. 실제로 2012년 샌디 훅 초등학교 사건 직후와 2015년 샌 버나디노 사건 이후, FBI의 총기구매를 위한 신원조회 숫자는 대폭 증가했었다. 백날 총기규제 어쩌구 하다 마는 정부를 믿느니, 차라리 나도 총 한 자루 구비해서 이 험한 세상 대비해야겠다는 의지의 발현이다.

최악의 총기 사건이었지만, 이번에도 ‘범프스톡’ 금지 이상의 강력한 규제는 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설령 강력한 규제 법안이 의회를 통과한다 해도, 트럼프 대통령이 승인할 것인지도 물음표이다. 혹여 트럼프 대통령이 구국의 결단으로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법안에 사인한다 할지라도, 그 법의 앞날은 상당히 험할 것이다. 수많은 NRA 회원들과 총기 사업체가 수정헌법 2조 위헌 소송을 제기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총기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맑은 표정으로 자신의 엽총컬렉션을 자랑하던 벽안의 교수가 생각이 나곤 한다. 심드렁한 표정이었다지만, 사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총을 꺼내는 그 앞에서 상당한 문화적 충격을 받았던 터였다. 앞으로 미국에서 얼마나 더 많은 대규모 총기 난사 사건과 희생자를 봐야하는 건지, 벌써부터 마음이 무겁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필자 김지윤 박사

- 연세대 정치외교학 학사

-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캠퍼스 대학원 석사

- 매사추세츠 공대 대학원 정치학 박사

- 아산정책 연구원 여론 계량 분석 센터 센터장

- 뉴시안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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