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안=백성문 편집 자문위원/변호사] 다수의 여성들이 무대에 올라 배꼽티에 짧은 반바지를 입고 선정적인 춤을 추는 영상이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새로운 걸그룹의 론칭행사가 아니었다. 신입간호사들이 병원 체육대회에서 장기자랑 행사로 한 것이다.

장기자랑이라면 당연히 자발적이겠거니 했지만 아니었다. 노무 법률 상담단체 "직장갑질119"로 쏟아진 제보를 보니 이 행사는 사실상 강요에 의한 것이었다. 비판적인 언론보도에 병원측의 첫 입장은 충격적이었다. 마치 이게 뭐가 문제냐는 듯한 태도였다. 질타가 이어지자 뒤늦게 병원측에서 사과를 했지만 여론의 반응은 싸늘했다. 진정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뒤늦은 사과였기에.....

#일송 가족의 날 행사

매년 10월경 일송재단 성심병원 소속 간호사들은 원하지 않는 행사에 참여해야 했다. 바로 일송 가족의 날 행사 때문이다. 재단에 소속된 전국의 관계자 900여명이 모여 강원 춘천시의 한림성심대학교 운동장에 모여 체육대회를 개최한다. 취지는 매우 좋은 행사였지만 문제는 바로 장기자랑에 있었다.

재단 소속 간호사들 중 2~3년차 내외의 간호사들을 뽑아 그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매우 선정적인 복장을 입히고 누가봐도 민망한 춤을 추게 했다. 실제 장기자랑에 참여한 한 간호사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짧은 바지를 입고 장식을 한답시고 가슴쪽엔 가위질을 내서 파이게 한 옷을 입었다" "관리자급에서 하고 싶지 않았다고 얘기도 했지만 소용없었다"라고..

신규나 2~3년차 간호사들은 이런 행사에 동원되도 거부하기 어렵다. 애시당초 이런 간호사들로만 장기자랑을 구성했다면 병원측 역시 강제로 동원해야 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을 것임은 충분히 짐작이 가능하다. 왜 강제라고 볼 수 밖에 없는지는 다른 이유를 보면 더욱 명백하다.

이번 논란이 된 장기자랑 동영상을 보면 상당히 많은 준비를 했음을 알 수 있다. 단순히 한 두번 맞춰보고 선정적인 옷만 입었던 것이 아니었다. 결국 엄청난 연습이 필요했다는 얘기다. 간호사들은 통상 24시간을 삼등분하여 3교대 근무를 하도록 되어있다. 의사만이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간호사 역시 일조를 하기 때문에 적정한 휴식은 반드시 보장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저 장기자랑 연습은 언제 해야했을까? 결국 근무 외시간에 연습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한 간호사는 이렇게 진술했다. "아침 6시반에 출근하면 새벽 한시까지 연습시킨 적도 있구요. 그리고 나서 추가 수당 이런 건 한푼도 지급된 적이 없습니다" 사람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수면시간도 보장되지 않은채 연습을 해야하는 상황, 게다가 시간외 수당도 지급되지 않음에도 과연 자발적으로 이런 행사에 참가하고자 하는 간호사가 있었을까? 시간외 수당을 지급하지 않은 것은 현행법 위반의 소지마저 크다. 고용노동부에서 이에 관한 내사에 착수했다. 그럼에도 병원측은 "간호사들의 불만이 이 정도일 줄 몰랐다"는 말을 하고 있다.

#간호사들이 왜 정치후원금까지 내야하나

한 언론사의 보도를 통해 공개된 성심병원의 한 수간호사와 다른 간호사의 문자메세지가 공개됐다. 메세지 내용은 이렇다. "작년처럼 김진태 의원 후원금 10만원 부탁해. 연말에 연말정산 영수증으로 10만원을 돌려받으면 돼" 작년처럼이라는 단어에서 보듯 일단 이 일은 올해에 한정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문자 메세지의 내용을 보면 강제적으로 모금을 지시한 것이라고 보이지 않는다라고. 그건 병원의 구조를 몰라도 한참 모르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병원 내부의 위계질서상 수간호사의 요청을 일반 간호사가 거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태움이라는 간호사들 사이에 존재하는 문화가 있다. 이는 재가 될때까지 태운다는 말로 병원이란 공간이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곳이기 때문에 위계질서가 일반 직장보다 훨씬 강하다는 의미이다. 심지어 상사에게 찍히면 집단적 괴롭힘을 당하는 경우까지 발생하기도 한다.

그런데 간호사 중 가장 높은 수간호사가 부탁한 것을 거절한다고? 이것 역시 사실상 강요에 의한 것이다. 한 간호사는 이렇게 진술했다. "부서에서 서너명 하라고 강요했으며 대부분 김진태의원을 지지하지 않음에도 어쩔 수 없이 내야만 했다라고"..... 이 역시 수간호사 개인의 독단적인 행동이었는지 병원의 조직적인 개입이 있었던 것인지 밝혀내야 한다.

# 이번 사건이 일송재단 성심병원만의 문제일까

을지병원의 파업이 40일을 넘어섰다. 2014년 신규 간호사였던 한 간호사가 주임간호사로부터 교수와 직원들이 참여하는 송년회 장기자랑때 야한 옷을 입고 아이돌 그룹의 춤을 추라는 요구를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한 임신한 간호사는 락스 섞인 소독제로 병원을 청소하거나 오물을 치운 적이 있다고 증언했다. 체온계, 저울, 핀셋, 수술용품 등 병원 물품을 간호사들끼리 돈을 모아 마련해야 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또 다른 병원의 한 간호사는 성심병원 덕분에 연말로 예정된 장기자랑이 다 취소되었다며 감사하다는 SNS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결국 병원 이름만 바꿔 동일한 병원내 갑질 행태가 있어왔음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이번 성심병원의 문제가 왜 이렇게 큰 사회적 논란을 일으켰을까? 일차적으로는 격무에 시달리는 간호사들에 대한 처우가 이렇게 막장이었나라는 진실에 대한 충격때문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생명을 돌보는 업무의 최전선에 있는 간호사들의 인권은 결국 환자의 생명과 직결된다는 점이 더 큰 문제이다. 아침 6시에 출근해 환자를 돌보고 새벽 한시까지 춤연습을 해야 했던 간호사들이 다음날 환자들을 잘 돌볼 수 있을까? 실제 보도된 한 연구 결과를 보면 적정 간호사 수를 얼마만큼 확보했는지에 따라 환자의 사망률이 최대 40%까지 달라질 수 있다고 한다. 적정 간호사 수를 확보하는 것은 고사하고라도 지금 있는 간호사들이 최대한 환자를 잘 돌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생명을 다루는 병원이 해야 할 일차적 의무가 아닐까?

우리는 백의의 천사를 무대가 아닌 병원에서 보길 원한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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