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안=김지윤 편집 자문위원/정치학 박사] 세제개혁안으로 미국 의회가 바쁜 지난 금요일, 큰 폭풍이 백악관을 강타했다. 트럼프 행정부 첫 국가안보보좌관이었던 마이클 플린이 특검에 유죄를 인정했다는 뉴스가 떴다. 플린은 플리바겐, 즉 유죄를 인정하고 감형받기로 협상한 후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기로 특검과 협상한 것이다. 모든 미국 매체가 러시아게이트가 재점화 되었고 트럼프 대통령이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며 크게 보도했다.  
    
이 모든 사건의 시작은 2월 13일, 트럼프 행정부의 첫 국가안보보좌관(National Security Advisor)으로 임명되었던 마이클 플린(Michael Flynn)이 전격 사임하면서 부터다. 

플린이 요직을 그만둘 정도의 큰 잘못은 2016년 12월, 트럼프가 당선이 되고 아직 취임하지 않았을 당시 주미 러시아 대사인 세르게이 키슬리악을 만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 러시아 대사와의 대화 내용에 관심이 쏠리면서, 대선기간 중 러시아와 트럼프 캠프 사이에 모종의 ‘딜’이 있었다는 이른바 ‘러시아게이트’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발단이 된 키슬리악 대사와의 만남 도대체 키슬리악 대사를 만난 것이 뭐가 잘못인걸까? 
    
플린이 위반했다는 법은 이른바 ‘로간법(Logan Act)’이다. 무려 1799년에 제정된 오래 된 법이다. 법의 요지는 정부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지 아니한 일반 시민이 외국 정부를 상대로 협상을 하거나 외교적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뭔가 당연해 보이면서도 부자연스러운 이 법을 어길 경우, 벌금을 물던지 3년 이하의 징역형을 받는다. 

물론, 아직까지 로간법 위반으로 인해 징역을 산 사람은 없지만, 2016년 12월이면 플린이 차기 대통령으로부터 국가안보보좌관으로 낙점되긴 했지만 민간인 신분이었던 것은 맞다.    
    
미국이 나라의 기틀을 마련해 나갈 즈음, 대서양 건너 유럽대륙은 다른 혼란에 휩쓸려 있었다. 1789년 발발한 프랑스 대혁명은 자코뱅의 공포정치(reign of terror)로 발전했고, 혁명의 불씨가 번질까 두려워진 여타 유럽 국가들은 프랑스를 상대로 전쟁 선포를 했다. 미국은 당시 유럽 국가들보다 뒤떨어진 식민지 출신 신생 국가에 불과했다. 동맹을 맺고 독립전쟁에서 도움을 줬던 프랑스한테 미안은 하지만, 유럽의 싸움에 말려들고 싶지 않았다.
 
뒤통수 맞은 프랑스는 당장 미국을 혼내주고 싶었지만 유럽을 상대로 더 큰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따라서 정규군보다 이른바 사략선(privateer)의 활동을 장려했다. 사략선은 행실은 해적과 다름없지만 정부에 약탈한 재물을 바치고 비호를 받는 반해적들을 의미하는데, 프랑스 사략선은 꽤나 미국 상선을 괴롭혔다. 

이에 펜실바니아 주의 퀘이커교도이자 주의회의원인 로간은 느닷없이 프랑스로 건너간다. 당시 아담스 대통령이 보냈던 이전의 사절단들이 냉대를 받으면서 미국과 프랑스 사이의 감정은 상할 대로 상한 시점이었다. 로간은 당시 프랑스 외무장관이었던 탈레랑(Tallerynd)을 만나 미국민 사이에서 프랑스의 이미지가 얼마나 훼손되어 있는지와 양국간의 우호적 협력이 왜 중요한 지 등을 설파했다. 로간의 설득 때문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프랑스는 사략선을 철수시키고 미국을 그만 괴롭히기로 한다.  
    
따지고 보면 꽤나 큰 성과를 낸 셈이다. 그런데 로간이 미국으로 귀환하자마자 미국 정가는 난리가 났다. 민간인이 함부로 외국에 가서 협상을 하고 돌아왔다며 묵과해선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아니, 성과를 내고 왔는데 왜 그러시는지?
    
당시 미국 정가는 친영파와 친프랑스파로 나뉘어져 있었고 그 갈등의 수위가 상당했다. 연방정부의 권한을 강화시켜서 강한 국가인 미합중국을 탄생시켜야 한다는 연방주의자(Federalist)들은 상공업 중심의 경제 발전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었고, 이를 위해 교역상대로 1위였던 영국과의 관계 재정립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대부분의 연방주의자들이 북동부 상업지역 출신이었다는 것이 그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그 대척점에는 토마스 제퍼슨이 이끄는 민주공화당(Democratic Republican Party)이 있었다, 이들은 연방정부의 횡포를 견제하면서 독립전쟁 이전처럼 주(州) 단위의 정부가 강화되어야 하고 연방정부는 느슨하게 이를 관리하는 차원의 역할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농업을 기반으로 한 주를 대표하는 이들이 많았고, 독립전쟁 당시 도와주었던 프랑스에 보은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제퍼슨을 포함해 많은 민주공화당 의원들은 남부에 플랜테이션을 가진 농업 부호들이었다.
    
민주공화당의 당원으로서 당연히 친프랑스 성향을 가졌던 로간은 프랑스와 미국의 관계가 악화되는 것에 심각한 우려를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오지랖 넓게도 정부의 위임 없이 대서양을 건너가 프랑스 정부와의 협상을 단행했던 것이다. 당시 백악관과 상하원 모두를 쥐고 있던 연방주의자들은 이 사실에 격분했고, 이에 로간법을 만들었던 것이다. 결국, 정파간 악감정과 갈등으로 탄생한 법이다. 
    
로간법에 의해 처벌받은 사람은 얼마나 될까? 아직까지 단 한명도 없다. 먼저, 이 법의 탄생이 있게 한 조지 로간은 처벌에서 비껴갔다. 법적용은 제정 후 일어날 수 있는 것이기에 로간은 해당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후로도, 현대 대통령들이 로간법 위반이라는 비난을 한 인물들은 있지만, 실제로 처벌된 경우는 없다. 

이는 로간법이 사실상 감정법에서 출발했다는 점과, 자칫하면 수정헌법 1조의 표현의 자유를 위반하는 법률로 무효화 될 수도 있다는 점 때문이기도 하다. 이번 플린 사건은 로간법 위반으로 시작되었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트럼프 캠프가 러시아와 모종의 뒷거래를 했는지 여부이다. 

이미 트럼프의 사위인 쿠쉬너가 다음 타겟으로 지목되었고, 이는 결국 트럼프 대통령에까지 갈 수 밖에 없을 거란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미국의 대통령이라는 최고의 위치에 올랐던 트럼프에게 올 한해가 과연 즐겁기만 했었을까, 연말이 다가오면서 괜한 생각이 든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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