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안=백성문 편집 자문위원/변호사] 최근 교도소 수용생활을 다룬 슬기로운 감방생활이라는 드라마가 화제다. 그런데 "슬기로운 수용생활"에 앞서 교도소에 가는 계기가 된 사건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명한 야구선수인 주인공은 여동생을 성폭행하려는 범인을 추격하여 트로피로 머리를 가격했고 결국 그 범인은 사망한다. 드라마속 주인공은 정당방위를 주장했지만 결국 법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징역 1년을 선고한다. 

이 드라마는 현재 법원의 정당방위 인정기준을 정확히 반영했다. 드라마나 영화에 "판결이 부당하다"는 이유로 정당방위 사례들이 등장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대중의 법감정과 법원의 판단의 괴리가 상당하기 때문일 것이다. 즉 법원을 욕하며 드라마나 영화를 본다는 것... 이제는 정당방위 요건을 전체적으로 점검해야만 할 시점에 왔다.

#정당방위 인정 요건

정당방위에 관한 형법 제21조는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벌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쉽게 말해 누가 때리면 "상당성이 인정될만한 방위행위"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상당성이 인정될만한 방위행위"를 수사기관이나 법원이 지나치게 좁게 해석한다는데 있다. 

최근 30대 남성 A씨는 새벽에 술취한 행인에게 봉변을 당했다. 길을 걷고 있는데 이유 없이 자신에게 주먹을 휘두른 것이다. 맞고만 있을 순 없는 노릇이니 A씨는 그 행인의 멱살을 잡았고 같이 넘어졌다. A씨는 코뼈골절에 전치 6주 진단을 받았고 그 행인은 가벼운 찰과상만 입었다. 하지만 경찰은 이 둘을 쌍방 폭행으로 입건했다. 

정당방위 인정 여부로 가장 화제가 됐던 사건은 "도둑 뇌사 사건"이다. 

2014년 3월 20세 최씨는 군입대를 앞두고 친구들과 어울리다 새벽 3시경 집에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보니 50대 도둑이 2층 거실에서 서랍장을 뒤지고 있었다. 이에 격투 끝에 최씨는 도둑을 잡고 경찰에 직접 신고했다. 그 직후 도둑이 도망가려하자 최씨는 주변에 있던 빨래건조대로 도둑을 폭행하였고 도둑은 식물인간 상태가 되어 결국 사망하였다. 

법원은 최씨에게 정당방위를 인정하지 않았고 1심에서 실형,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하였다. 이 당시 대중은 "도둑이 들어왔을 때 흉기는 들고 왔는지, 물건만 훔칠 것인지, 그냥 도망갈 것인지 물어보고 방위해야되느냐"면서 법원의 판결을 비판하였다. 

만약 위 두 사건이 미국에서 발생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물론 총기소유가 가능한 미국과 동일한 선상에서 비교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지만 미국은 16개주에서 "캐슬 독트린"법을 시행하고 있다. 이는 집주인이 주거침입자를 사살해도 기소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스탠드 유어 그라운드"법도 있다, 2011년 미국에서 14세의 소년이 평소 상습적으로 자기를 구타하는 친구를 버스정류장에서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사건이 있었다. 14세 소년은 2급살인죄로 기소되었지만 법원은 "스탠드 유어 그라운드" 법조항을 들어 무죄판결을 하였다. 

캐슬톡트린을 집 밖까지 확대시킨 법인 셈이다. 총기 소지가 불가능한 우리나라에서 위 두 법을 그대로 적용하기는 물론 다소 무리가 있다. 하지만 나와 내 주변을 지키는데 완벽한 이성적 행위만을 요구하는 우리나라의 정당방위 판단은 변경의 필요가 있다. 

#수사기관의 유의미한 변화

2015년 9월 서울 공릉동의 한 주택에서 두 명이 사망했다. 한명은 집주인A씨의 약혼녀였고 다른 한 명은 휴가를 나온 육군 상병이었다. 

술에 만취한 육군 상병이 문이 열려있던 A씨 집에 침입해 잠을 자던 A씨의 약혼녀를 흉기로 살해했다. 비명소리를 듣고 나온 A씨는 몸싸움 끝에 육군 상병의 흉기를 빼앗아 그를 살해했다. 검찰은 2년만에 A씨를 불기소처분했다. 

기존의 정당방위의 이론대로라면 집주인 A씨가 흉기를 빼앗은 순간 그 흉기를 사용하여 공격을 한 것은 새로운 침해라고 보았을 것이다. "살인 사건의 피의자를 처벌하지 않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지만 국민의 법정서가 변한 것을 고려했다"라는 것이 검찰의 설명이었다. 검찰이 살인 피의자에게 정당방위를 인정한 것은 27년만의 일이다. 

과거 길거리에서 발생한 폭행사건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대부분 쌍방폭행으로 입건해왔다. 그런데 최근 수사 현장에서 유의미한 변화들이 감지된다. 30대 남성 A씨는 여자친구를 폭행했다는 이유로 경찰조사를 받았다. 끈질기게 다시 만나자는 여자친구가 옷가지를 잡고 늘어지자 A씨는 이 상황을 벗어나고자 여자친구의 양손목을 잡아 누르고 무릎으로 다리를 제압했다. 

경찰은 이 사건을 불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최소한의 방어행위의 일환으로 본 것이다. 20대 여성 B씨는 택시를 잡는 과정에서 술에 취한 세 명이 시비를 걸며 머리채를 잡아당기고 집단 폭행을 하는 과정에서 상대방에게 발길질을 하며 저항했다. 이 사건에서도 경찰은 CCTV 분석 등을 통해 정당방위를 인정했다. 

결국 수사 현장에서의 치밀한 조사와 국민의 법상식에 맞춰 판단하고자 하는 수사기관의 의지가 반영된 사건들이다. 수사 기관에서 정당방위의 판단에 유의미한 변화가 있다는 점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하지만 정당방위의 법조문의 변경이나 법원 해석 기준이 국민의 상식에 부합하는 수준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판단기준이 애매한 정당방위는 늘상 논란의 중심에 설 여지가 크다. 

법의 다른 이름이 상식이 되는 세상이 가장 이상적인 사회가 아닐까? 슬기로운 감방생활이라는 드라마의 제목이 성폭행범을 검거한 야구영웅으로 바뀔 수 있는 나라가 되길 바라는 건 지나친 사치인걸까?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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