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안=양지열 편집 자문위원/변호사] 할복이란 전쟁이 많았던 일본에서 유래한 악습이다. 악습이라 쓴 이유는 결코 미화할 수 없는 죽음을 마치 무사의 기개라도 보여줬던 일인 것처럼 꾸며대기 때문이다. 할복은 원래 전쟁에서 진 장수에게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한 형벌이었다. 명예라도 지켜주는 듯 보이지만 정말로 죽고 싶어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것도 자기 배에 칼을 밀어 넣어서. 강요에 의한 자살이 본질이다. 그래서 말이 할복이지 그렇다고 이름만 붙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보통은 스스로 크게 상처를 내지 못했고, 뒤에서 기다리고 있던 망나니의 칼에 의해 죽었다. 조금이나마 칼로 자해를 하면 그나마 용기(?)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칼이 아닌 부채를 억지로 쥐고 시늉만 낸 다음 가련하게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명예 따위와 거리가 먼 거짓 의식이었다.

# 동대구역 할복 선언

일본에서도 칼부림질 일삼던 시절에나 있었던 악습을, 자유한국당 최경환 의원이 꺼내 흔들었다. 국가정보원으로부터 1억원의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이 처음 제기됐을 때였다. 그런 일 없다고 펄쩍 뛰면서 사실이면 동대구역에서 할복 자살하겠다는 것이었다. 되짚어 보니 새삼 이상하다. 사실이 아닌데 억울하게 내몰렸다면 모를까, 사실로 드러나면 21세기 형법에 따라 처벌을 받아야지 왜 할복을 한단 말인가. 혹시 최 의원도 할복이 거짓 의식이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인지. 한 가지 덧붙이자면 할복은 궁지에 몰린 자들이 사기극으로 벌이기도 했다. 자살하는 척 연기만 한 다음 엉뚱한 시신을 관청에 가져가도록 했던 것이다.

강력한 반발에도 검찰은 뇌물 수수로 영장을 청구했고, 최 의원은 4일 새벽 서울 구치소에 구속됐다. 최 의원이 받고 있는 혐의는 경제부총리, 기획재정부 장관의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 국가정보원으로부터 돈을 받은 대가로 넉넉하게 예산을 편성해 줬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현역의원으로서는 최초로 기록됐다. 최 의원은 영장 심사를 받으며 내내 억울하다고 했지만, 판사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돈을 받은 것이 사실로 보였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예산에 도움을 받으려면 최 의원을 접촉해야 한다는 국정원 내부문건이 있었다. 이미 구속된 이병기 전 국정원장이 돈을 준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어쩌면 할복 운운한 것이 구속을 부추기기도 했을지 모른다. 혹시라도 피의자의 신병에 이상이 생길 것을 염려하는 것도 구속을 결정하면서 고려하기 때문이다.

# 국정원 돈은 왜 받았을까

수사 초기 최 의원은 동료 의원들에게 편지를 썼다. 이병기 전 원장과는 2007년부터 박근혜 전 대통령을 도우며 친한 사이었다고 했다. 전화 한 통으로 부탁해도 될 사이에 무슨 돈을 받겠느냐는 주장이었다(그랬다가 영장 실질 심사를 받으면서 말을 바꾸기는 했다. 사이가 나쁜 이병기 전 원장이 자신을 음해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검찰이 터무니없는 죄를 뒤집어 씌우고 있다고 했다. 정치보복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자신 혼자로 끝날 문제겠냐면서 다른 의원들까지 겁을 주는 물귀신 작전도 구사했다.

그런데 돈을 주고 받지 않을 사이였다는 말은 옳아 보인다. 최 의원의 주장이 아니라 다른 이유 때문이다. 남재준, 이병기 두 전직 국정원장은 구속돼 있다. 지난 정권들에서 국정원은 댓글로 국민들의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정권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들을 탄압했다. 국정원장들은 간첩 잡는데 써야 할 돈을 빼돌려 박 전 대통령에게 상납했다. 마땅히 벌을 받아야 마땅한 일이지만 박 전 대통령 입장에서는 “충성”을 바치는 사람들이었다. 최 의원도 대표적인 친박이었다. 지난 총선에서는 친박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진짜배기를 가려내겠다며 진박감별사를 자임하기도 했다. 당시 국정원과는 “같은 편”이었던 것이다. 돈을 받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동지”에게 자금을 두둑하게 챙겨줬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런데도 거꾸로 자기 주머니에 국정원 돈을 채워 넣어야 했던 것일까? 물론 그건 세금이니 궁극적인 피해자는 국민이지만.

그렇게 따지면 박 전 대통령은 한 술 더 뜬 셈이다. 검찰은 4일 박 전 대통령을 뇌물죄 등으로 추가기소했다. 충성을 다 바치는 국정원으로부터 36억5천만원을 상납받은 혐의이다. 검찰은 그 돈을 최순실과 연락하는데 쓴 차명폰 요금, 기치료, 주사비용, 사택 관리비 등 개인적 용도로 쓴 것으로 보고 있다. 전용 의상실 운영 비용, 아니 그냥 옷값이라고 하자. 옷값으로만 6억9천여만원을 썼다고 본다. 그런 박 전 대통령에 대해 최 의원은 “단돈 1원도 자신을 위해 챙긴 적 없는 지도자”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 대통령에 그 실세였던 셈이다. 도대체 그들은 무엇 때문에 권력을 잡았고, 대한민국에 무슨 짓을 하려고 했던 것일까?

# 마지막 자긍심은 지켜주길

최 의원이 정말로 뇌물을 받았는지는 재판을 통해 밝힐 일이다. 하지만 할복까지 운운했던 만큼 장관까지 지냈던 정치인으로서 최소한의 자긍심은 보여주길 바란다. 그를 위해서가 아니라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국민의 자긍심을 위해서 말이다. 최 의원이 하필 동대구역을 고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자신과 박 전대통령을 지지해줬던 정치적 고향이니 말이다. 정치에서 패배했다는 이유로 억울한 일을 겪는다는, 지지자들에 대한 거짓 호소는 아니기를 바란다. 거짓 의식에 또 다시 속기에는 우리 국민은 너무 많은 일들을 겪었다. 밝혀야 할 진실이 있다면 법정에서 당당한 모습으로 밝히시라. 하지만 더 이상의 부끄러움을 주지는 마시라. 결코 할복 따위 말과 칼인 척 하는 부채를 꺼내지도 마시라. 죄가 있다면 살아서 오랫동안 씻으시라.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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