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에서 거래인들이 비트코인 거래 상황을 모니터로 살펴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미국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에서 거래인들이 비트코인 거래 상황을 모니터로 살펴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시안=정윤기 기자] 지난해 12월 시카고상품거래소(CME)가 비트코인 선물상품을 만든 이후 뉴욕증권거래소가 최근 암호화폐 플랫폼 개발에 나섰다.

거기다 자본시장의 큰손인 골드만삭스가 본격적인 투자를 시작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월가의 흐름이 달라지고 있다.

워런 버핏이나 빌 게이트는 여전히 가상화폐에 비판적이지만, 블록체인의 무궁한 잠재력과 암호화폐의 가능성에 주목하는 월가의 달라진 흐름을 막기는 힘들어 보인다. 

처음 물고를 튼 곳은 골드만삭스. 월스트리트 대형 투자 은행 중 처음으로 가상화폐 시장에 진출하는 골드만삭스는 이사회를 열고 파생 상품 거래를 결정했다.

라냐 야레드 골드만삭스 임원은 "비트코인을 보유하고자 하는 투자자의 요청이 있었다"며 "골드만삭스는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가 사기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골드만삭스는 비트코인을 직접 거래하진 않지만 파생상품에 투자할 예정이다. 몇 주 안에 자사의 운영 자산으로 비트코인 선물거래를 시작한다고 것.

가상화폐가 제도권 시장에 진입할까?

월가는 그동안 가상화폐가 가격변동이 심해 투자수단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평가절하해 왔다.

'비트코인은 사기'라는 극단적인 평가에서 '가격 거품론'까지 제기됐지만, 이제는 냉정하게 가치를 인정하고 재점검하자는 분위기다.

이런 달라진 월가의 분위기와 시선은 암호화폐 진영으로선 고무적이다. 

이번 골드만삭스의 투자 결정으로 과연 가상화폐가 제도권에 인정받고 시장에 진입할 수 있을지 모두 주목하는 가운데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최고경영자(CEO)도 달라진 태도를 보였다.

비트코인은 사기라고 주장하며 17세기 네덜란드 튤립 광풍에 비유했던 그는 "비트코인을 사기라고 한 발언을 후회한다. 블록체인은 현실이다. 암호화된 가상달러화도 가능하다."고 선언했다. 

이런 분위기 덕에 월가를 중심으로 가상화폐가 제도권에 진입한다는 전망이 점점 힘을 얻어가고 있다.

모건스탠리와 JP모건도 비트코인 파생상품을 시장에 공개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비트코인 자체를 사고파는 직접 거래는 아직 피하는 분위기지만, 가격과 연동된 파생상품에는 긍정적인 편이다.   

지난해 12월 세계 양대 선물거래소인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CME)와 시카고옵션거래소(CBOE)는 비트코인 선물 시장을 개장했다.

이제 세계 최대 증권거래소인 뉴욕증권거래소(NYSE)도 가상화폐 거래 온라인 플랫폼 개발에 나섰으니, 이제 일반 투자자들이 비트코인을 구매해 보유할 수 있게 됐다.

미국 3대 증시 가운데 하나인 나스닥의 아데나 프리드먼 CEO도 "나스닥에서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를 거래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며 가상화폐 시장에 진출할 의사를 내비쳤다.

비트코인 시가총액 5000억 달러 예상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월가의 주요 투자자들이 가상화폐를 안정된 자산형성 수단으로 인정하는 분위기에 힘입어 한동안 주춤했던 비트코인 가격이 1만 달러에 접근하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비트코인 시가 총액이 5000억 달러(약 538조 원)까지 갈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가상화폐 투자 전문업체인 BKCM LLC의 브라이언 켈리 CEO는 스탠포드대학 후버연구소 주최의 연례 통화정책 회의에서 가상화폐가 이제 진지한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행사에서 비트코인은 무시당했다. 그러나 이번 회의에서는 아주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비트코인 시가총액이 5000억 달러까지 갈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여전히 비트코인을 '사기'로 규정하는 목소리가 가라앉지 않고 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는 가상화폐 투자를 '바보이론'에 비유했다. 바보이론은 더 비싸게 사줄 바보가 시장에 있을 것이란 기대심리를 의미한다.

"비트코인과 ICO(가상화폐 공개)는 완벽한 광기이자 투기다. 내가 비트코인을 가지고 있다면 다 팔아치우겠다."
 
'투자의 귀재' 워렌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도 "비트코인은 쥐약을 제곱한 것(rat poison squared)과 같다"며 "가상화폐는 종말을 맞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거물들의 연이은 비판에 비트코인 가격은 1만 달러 돌파를 앞두고 상승세가 한풀 꺾였다. 제도권 진입을 앞둔 비트코인에 비판적인 시선은 여전한 셈이다.

수요는 예측이 어려울 정도로 불확실한 투자상품

IT업계의 구루와 투자업계의 전설이 모두 부정적으로 보는 가운데 월가가 비트코인을 투자상품으로 만들려는 속셈은 무엇일까?

최근 월가의 속내를 엿볼 수 있는 보고서가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CME)에서 낸 '비트코인 경제학 심층 분석(An In-Depth Look at the Economics of Bitcoin)'보고서에는 비트코인의 성격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비트코인은 공급이 2100만 개로 한정돼 예측 가능성이 높지만, 수요는 예측이 어려울 정도로 불확실한 투자상품이다.

2009년 1월 세상에 처음 채굴된 비트코인은 총발행량이 2100만 개로 정해져 있다. 첫 채굴자에게는 보상으로 50비트코인이 주어졌다.

이후 개발자인 사토시 나카모토의 설계에 따라 보상이 점차 줄어들었다. 비트코인은 21만 개가 채굴될 때마다 보상이 절반씩 준다.

비트코인은 2009년 이후 반감기를 두 번 거쳤다. 21만 블록이 형성되는 시간은 약 4년. 현재는 한 블록을 채굴할 때마다 비트코인 12.5개가 보상으로 주어진다.

위 보고서는 공급량이 정해져 있고, 가격이 오르더라도 채굴자에 의해 정해진 양만 생산되는 상품이라는 특성으로 가격변화가 심하다고 지적했다. 이것이 비트코인 가격이 급격한 변화를 보인 요인이라는 것이다.

"가격이 얼마로 오르든 채굴자들이 정해진 수량 이상 생산해낼 수는 없다. 게다가 가격이 상승한다고 채굴 속도가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 설사 속도가 오른다 해도 미래의 채굴량을 끌어오는 것일 뿐이다."

보고서에는 채굴 시스템이 가격을 상승시키는 또 다른 요인이라는 지적도 들어 있다.

비트코인은 암호화된 수학 문제를 푸는 채굴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시간이 지나면 문제의 난이도가 상승한다. 이에 문제를 푸는 장비의 성능이 올라가게 되고 비용도 증가한다. 이런 현상을 석유와 비교하기도 했다.

"석유는 시간이 갈수록 추출하는 작업 난이도가 높아진다. 지표면 가까이 매장된 석유는 이미 수십 년 전에 모두 추출했다. 이제 추가 공급량은 대부분 접근하기 어려운 오지 채굴을 통해 얻고 있는 상황이므로 채굴 원가가 상승해 유가가 올라가게 된다."

석유와 마찬가지로 공급량이 한정돼 있고, 채굴원가가 상승하게 되는 비트코인은 가격 변동성이 커지면서 장기적으로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는 것. 월가는 이런 비트코인의 속성을 통해 파생상품 시장을 형성하고, 수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취하는 것으로 보인다.

파생상품 발행은 국내에도 기준 만들어야

월가의 가상화폐 투자를 두고 국내 전문가들은 미국 정부가 시장 움직임에 대응해 새로운 규제 기준을 만드는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월가의 파생상품을 통해 비트코인을 제도권에 진입시키려는 움직임은 그에 맞춰 가상화폐 규제 기준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우리 정부는 규제에 대한 명확한 입장이 없어서 업계가 당혹스러운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세계는 이제 가상화폐 규제 기준을 마련하고 설계에 들어가고 있다. 우리 정부도 규제에 나몰라라 하지 말고 명확한 입장을 내놓아야 한다." 

김종현 아주대 사이버보안학과 교수는 "그동안 비트코인 가격이 급등락을 거듭해 투자대상으로 바라보지 않았던 월가가 이제 가상화폐와 블록체인을 살릴 수 있는 길로 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선물, 옵션 상품은 투기라기보다 '고위험 고수익' 투자상품이다. 비트코인 가격이 급등락하더라도 전문가들이 투자하는 상품이 됨으로써 가상화폐 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선물거래가 계속 되면 비트코인 가격이 안정화될 것으로 보인다."

가상화폐가 시장에 진입하게 되면 이와 연동된 블록체인 산업도 큰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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