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구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사진=이준구 교수 홈페이지 캡쳐)
이준구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사진=이준구 교수 홈페이지 캡쳐)

[뉴시안=이태훈 기자] "어느 정당이 집권을 하더라도 국민연금 재정 문제는 목의 가시처럼 고통스러운 것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고, 그저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현명한 대응책을 찾아 나가는 것 이외의 다른 뾰족한 방법이 없습니다"

국내 재정학 권위자 이준구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가 지난 13일에 이어 15일에 올린 '아무도 말하지 않는 국민연금의 진실(ps)'란 제목의 글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지금 국민연금이 안고 있는 문제를 '재정위기'라고 부르기보다는 '재정압박'이라고 불러야 옳다"며 "국민연금 재정압박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저출산·고령화 현상에 그 뿌리를 두고 있고, 여기에 '저성장'이라는 새로운 요인이 겹쳐져 3중고(三重苦)에 시달리게 된 셈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아무리 능력 있는 정부라 할지라도 저출산·고령화·저성장이라는 근본적 요인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는 한계를 갖고 있다"며 "지금은 민주당이 집권하고 있지만, 앞으로 몇십 년에 걸친 기간 동안 자유한국당이 집권당이 될 수도 있고 바른미래당 혹은 정의당도 집권당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연금 출범 초기의 문제" 현 정부의 잘못 아니다

특히, 이 교수는 13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아무도 말하지 않는 국민연금의 진실' 글에서 국민연금제도의 재정 위기는 1988년 출범 초기부터 이어져 온 것으로 현 정부에게 책임 소재를 물을 것이 아니라고 전했다.

국민연금 출범 당시 보험료율은 3%에 불과한 반면, 소득대체율은 70%에 육박했다. 현재 보험료율 9%, 소득대체율 45%에 비해 적게 내고 많이 받는 현상이 두드러지는 대목이다. 그는 이런 불행한 출발이 두고두고 발목을 잡아왔다고 평가했다. 소득대체율은 연금가입기간 중 평균소득(현재가치 환산 분) 대비 연금지급액이 개인의 평균소득의 몇 %가 되는가를 나타내는 비율을 말한다. 

최근 벌어진 국민연금의 논쟁 또한 이 선상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보험료율 '현행 9%에서 11~13%로 인상', 소득대체율 '현행 45%에서 40% 미만으로 인하' 검토는 출범 초기 벌어졌던 선심성 포퓰리즘을 현실적인 방안으로 대처하는 하나의 방편인 셈이다.

대가 없는 경제법칙 없다

이 교수는 푼돈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받는 국민연금에 대해 소득대체율 인상을 통한 연금 확대를 바라는 바이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는 "모든 일에 대가가 따른다는 냉엄한 경제법칙에 눈을 떠야 한다"며 이를 일갈했다. 연금 가입자가 아무 대가 없이 더 많은 연금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으며, 현재 '보험료율 인상'·보험료 납부기간 '현행 60세에서 65세로 연장하는 방안' 등이 가장 현실적인 대처라는게 그의 평가다.

또, 국민연금의 운용 수익률 감소에 대한 지적에도 반박 의견을 내비쳤다.

국민연금기금 운용 수익률은 올해를 제외하고 줄곧 4~5% 범위 안에서 성장을 지속해왔다. 하지만 민간보험 자금운용 수익률은 고작 2%대를 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게 그의 주장이다. 이어 국민연금은 규모의 경제를 통한 행정비용 절감이 가능하고 이윤을 빼지 않고 가입자들에게 모두 돌려준다는 점에서 민간보험사 보다 수익률이 좋은편 이라는 평가를 덧붙였다. 민간부문의 보험회사들의 경우 회사의 이윤을 뺀 나머지 금액을 가입자들에게 돌려주기 때문에 수익률이 낮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 교수의 의견이다.

국민연금 가입자 나중에 연금 못 받을 가능성 '제로'

이 교수는 국민연금 기금 고갈 사태에 대한 정부 대응 예상 시나리오를 밝히며 '연금 혜택 불가' 논란도 불식시켰다.

그는 실제 기금이 고갈될 경우 현재 국민연금의 자금 조달 방식인 적립방식(reserve-financed method)을 부과방식(pay-as-you-go method)으로 바꾸는 정부 대응법을 예고했다.

적립된 기금의 범위 안에서 연금을 지급하는 적립방식은 저출산·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현재 기금 고갈의 가능성이 매우 높은 방식이다. 이에 반해 부과방식은 현재 일하고 있는 사람에게서 거둔 보험료를 즉시 은퇴자에게 지급하는 방식으로 기금 고갈 가능성이 전무하다. 이미 인구 구성이나 경제 상황의 변화로 기금이 고갈된 독일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시행 중에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일하는 사람과 연금 받는 사람 사이의 불균형으로 한계에 부딪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국민연금제도는 노인을 위한 복지프로그램의 한 종류이기 때문에 정부의 일반재정자금 투입이 가능해 연금을 못받을 가능성은 없다며 이를 일축했다.

마지막으로, "2057년 연금 고갈은 40년 동안 아무 대책 없이 허송 세월을 보내지 않는 한 그럴 일은 없다"며 "2035년 연금 고갈을 앞둔 미국도 조용한 시점에서 20년이나 더 긴 여유를 가진 우리가 마치 발등에 불이라도 떨어진 양 조급하게 굴 필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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