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인천 계양구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배구 V리그 여자부 흥국생명과 GS칼텍스의 경기, 프로배구 올스타 팬 투표로 올스타에 선정된 흥국생명 이재영(왼쪽)과 이다영이 경기 전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들고 기념 촬영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시안=기영노 편집위원] 흥국생명 사태로 불거진, 학교폭력 즉 학폭 가해자인 쌍둥이 자매인 이자영·이다영으로 고통을 당한 피해자들은 오랫동안 앓고 있었던 마음의 상처를 드러냈다. 또 OK금융그룹의 가해자 송명근·심경섭으로부터 가해를 당한 피해자들도 역시 오랜 기간 앓았던 상처를 세상에 드러낼 수 있었다.

그러나 만약 쌍둥이 자매나 송명근 등의 가해자들이 일찌감치 배구를 포기했거나, 무명 선수에 그쳤을 경우 피해자들은 어디에 자신들의 억울함을 호소 할 수 있었을까? 아마 어디에 호소할 수 없어서 그들의 상처는 영원히 치유되지 않고, 평생 ‘마음의 짐’으로 안고 살아가야 했을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2019년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조재범 코치의 심석희 성폭행 사건을 계기로 벌인 전수조사 결과, 학생 선수가 일반 학생보다 두 배 더 폭력에 노출돼 있었는데, 폭력의 가해자가 선배와 동료 운동선수를 지목한 응답이 중학생 31.8%, 고등학생 37.9%나 됐다.

지난 2018년의 ‘미 투’ 열풍도 가해자가 유명인이었을 때만 응징을 받았을 뿐 보통 일반인이였을 경우는 거의 모두 공소시효가 끝난 사건이라 유야무야 되었었다.

무명선수에게 당한 피해자들은

한국배구연맹은 지난 16일 학폭에 관계된 선수는 프로배구 선수가 될 수 없도록 규정을 만들었다. 그러나 KOVO가 발표한 ‘학교폭력 방지책’은 미봉책에 그칠 것 같다.

만약 학교폭력 가해자가 프로배구 선수가 되지 않으면 응징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아예 학교폭력이 일어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해야 한다.

학교폭력은 체육계 뿐만 아니라 일반 학생들 사이에서도 흔히 발생한다. 그런데 체육계에서 유독 많이 일어나는 이유는 제도가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다.

학교폭력은 우리나라 스포츠의 구조적인 성과제일주의, 폐쇄성, 잘못된 위계질서 등으로 폭력이 정당화되면서 발생한다.

상급생이나 실력이 뛰어난 선수가 ‘갑’이 되어 영향력이 커지면서 정신력을 강화시키거나 훈련 성과를 더 높이기 위한 명분으로 폭력을 정당화하고, 폭행을 당한 수많은 ‘을’ 선수들은 보복이 두려워 제대로 신고하지 못한다.

학교폭력 여론조사에 의하면 폭력을 당한 학생 선수 중 80% 가까이 피해 사실을 주변에 알리거나 신고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가운데 보복이 두려워 신고하지 못한다는 응답이 4명 중 1명이나 되었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운동기계로

우리나라 학교스포츠는 대개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시작한다.

일단 육상, 축구, 농구, 수영, 야구, 스피드스케이팅 등의 선수가 되면 수업을 빠지는 것이 보통이다. 그리고 합숙훈련을 하게 되고, 특기자 제도 속에 진학이나 취업(소속팀)을 해야 한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운동기계로 전락하는 것이다.

수업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은 그 종목에 일생을 건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구타 등 웬만한 비인격적인 대우를 받아도 참아야 하는 환경에 놓이게 된다. 신고를 한다는 것은 곧바로 그 종목에서 도태(淘汰)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하게 된다.

합숙훈련을 하면서 기압, 구타, 상납, 성추행 등 갖가지 비인간적인 행태가 이뤄지게 된다. 그리고 ‘특기자 제도’는 선수들이 상급 학교에 진학하는데, 오로지 그 선수의 기량(성적)만을 보고 진학이 결정되기 때문에 갖가지 비리가 발생한다. ‘최순실 게이트’ 즉 승마 특기자로 이화여대에 입학했었던 정유라가 대표적인 경우다.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줘야

인격적으로 완성되지 않은 어린 선수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학교폭력을 아예 없앨 수는 없다.

그러나 대폭적으로 줄이는 것은 가능하다.

학교 스포츠에 합숙훈련을 없애고, 4강제도 등의 특기자 제도도 없어져야 한다. 그리고 ‘선수학생’이 ‘학생선수’가 되도록 선수들이 모든 수업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학생선수들의 체계적인 학사관리를 위해 공식출범한 학교체육진흥회와 대학스포츠협의회가 있기는 하지만 아직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학력이(미국 대학의 B학점제도) 미달하는 선수는 운동부에서 자동으로 퇴출되도록 하는 미국의 대학스포츠 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최숙현 법 시행, 미약하나마 효과 있을 듯

최숙현 법 즉 스포츠 인권보호 강화를 위한 2차 개정 '국민체육진흥법'이 2월 19일부터 시행된다. 지난해 7월 지도자와 동료로부터 가혹행위를 당하고 극단적 선택을 했던 고(故) 최숙현 선수 사건 이후 개정이 이뤄지면서 '최숙현 법'으로도 불리는 이 법은 2020년 8월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최숙현 법 즉 개정법에서 가장 실효성 있는 항목은 가해자에 대한 처벌 강화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선수에게 폭력을 휘두르거나 부정, 비위 행위를 한 지도자의 경우 자격정지 기간이 기존 1년에서 최대 5년까지 늘어나게 된다.

체육지도자, 체육단체 임직원, 체육시설 종사자 등 관련자가 체육계 인권침해, 비리를 알게 되거나 의심이 있을 때는 스포츠윤리센터 또는 수사기관에 즉시 신고해야 한다. 신고자에 대한 정보 공개, 보도, 누설은 물론 신고 방해와 취소 강요 및 신고자에 대한 각종 불이익 조치도 금지된다.

또한 지도자를 채용할 때는 징계이력 증명서가 요구되며 징계이력은 대외에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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