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의 문화 포커스] 추석과 영화
[김성수의 문화 포커스] 추석과 영화
  • 김성수 평론가
  • 승인 2017.10.1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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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안=김성수 편집 자문위원/시사문화평론가] 올 추석은 유례 없는 장기 연휴 때문에 다양한 기록을 세웠다. 사상 최대의 인파가 해외여행을 떠났고, 국내 유명 여행지들도 인산인해를 이뤘다. 극장가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신기록을 써 내려가고 있다. 지난 9월 30일부터 일평균 120만씩 극장을 찾는 것으로 드러나 연휴 열흘 동안 대략 1200만 명 이상이 영화를 관람할 것으로 추정된다. 숫자만 놓고 본다면 몇 년 동안 시들했던 명절 대목 흥행이 완벽히 되살아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관객들의 선택을 꼼꼼히 분석해 보면 명절 대목이라기보다 연휴가 가져온 자연스러운 관객의 증가라고 보는 것이 옳다. 하루 120만 명의 관객이 많아 보이지만, 영화 ‘명량’의 경우 흥행 절정기엔 하루 125만 명이 보기도 했다. 오로지 한 영화에 125만 명이 몰리는 현상을 기억한다면 모든 영화를 합해 하루 평균 120만 명은 놀랄 만큼 많은 숫자는 아니며 그저 볼 만한 영화가 있는 연휴 수준의 규모를 유지했다는 것이다. 오히려 명절 날 온가족이 영화를 보러가는 모습은 거의 사라졌고, 이는 명절의 문화 자체가 바뀐 것을 입증하는 현상이기도 하다.

올 추석 극장가에 걸린 영화를 살펴보면 더 이상 영화계가 명절에 통할만한 영화를 아예 제작하지 않거나, 개봉할 때에도 명절을 크게 고려하지 않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명절 대목이 통하던 시절에는 아무리 연휴가 길다 해도 그 시기에 청소년관람불가 영화를 붙이지 않았다. 명절엔 3대가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로 전체 관람가에서 12세 이하 등급 수준의 영화가 주로 선택되었으며 장르도 휴먼 드라마나 휴먼 코메디 장르가 많았다. 성룡의 쿵푸영화에서 조폭 코메디를 거쳐 ‘7번방의 선물’ 같은 휴먼 코메디로 그 명맥이 이어졌던 명절용 영화(?)의 흐름을 굳이 찾아보면 ‘아이 캔 스피크’ 정도만 눈에 띌 뿐이다. ‘남한산성’은 어려운 인문학 영화이고, 흥행 2, 3위를 다투는 ‘범죄도시’와 ‘킹스맨’은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다. 소재나 주제 측면에서도 명절용 영화는 사라졌다. ‘과속스캔들’처럼 가족공동체의 소중함을 다루는 영화는 아예 없다. 심지어 아이들을 자극해서 젊은 부부들의 지갑을 노리는 애니메이션에서도 이런 소재가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은 사뭇 의미심장하다.

개봉 영화들의 개성은 더욱 뚜렷해 졌다. 이들은 장르와 색깔도 다르지만 주된 타겟으로 삼고 있는 관객도, 마케팅 방식까지도 다르다. ‘남한산성’은 블록버스터 모양새를 갖추었지만, 역사 속에서 오늘을 반추하는 영화로 정치와 시사에 관심 많은 3040을 노리고 있다. 치열한 연기 대결과 논리 대결을 주된 무기로 삼았다는 것도 토론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장점으로 부각된다. 반면 ‘범죄도시’는 마동석, 윤계상의 리얼 액션으로 스트레스를 날려 주는데 ‘왕건이파’, ‘흑사파’ 사건이란 ‘실화’를 바탕으로 2030 남성들을 공략한다. 와이드 릴리즈보다 객석 점유율을 높이는 2등 전략을 구사하는데 입소문 마케팅이 통하면서 손익분기점을 쉽게 넘길 예정이다. ‘킹스맨’은 화려한 그래픽과 세련된 비현실적 액션으로 덕후들을 자극해서 400만을 넘겼다. ‘아이 캔 스피크’는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일상 속으로 가져와서 코믹하게 풀어내는 만만치 않은 내공을 보여주고 있는데, 나문희, 이제훈의 연기가 생각보다 묵직한 울림을 선사한다. 액션, 특히 피 튀기는 리얼액션에 지친 관객들이나, 위안부 문제에 대해 관심 많은 관객들이라면 다른 선택지가 없다보니 200만을 훌쩍 넘길 수 있었다.

이런 4강의 전략과 무기들이 통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 가족단위의 영화 소비문화가 큰 힘을 잃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명절에도 각자 자기 입맛에 맞는 영화를 보는 현상이 확고해 졌다는 말이다. 이런 현상은 TV 추석 명화에서도 두드러진다. 그러니, 함께 보며 함께 나누는 시간은 길어진 연휴에도 사실 더 적어진 것이다.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의 어색함을 달래 줄 수 있었던 극장영화 나들이가 이제 그 힘을 잃게 되었다는 사실은 명절에 모인 가족들을 소통하게 해 줄 채널 하나가 더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명절에 가정폭력 신고건수가 급증하고 명절 전후에 이혼 신청이 급증하는 현상과 맥락을 같이한다. 너무나 다른 가족 구성원들이 흉금을 터놓고 소통할 수 있는 문화가 없다면 명절은 특히 젊은 세대와 여성들에게는 계속 지옥일 수밖에 없다.

원래 한가위는 밤이 해방되는 날이었다고 한다. 밤이라면 한 치 앞을 못 보는 어둠만이 존재하던 시절, 휘영청 밝은 달은 노동으로부터 해방되는 밤 시간의 문화적 가능성을 획기적으로 늘려 놓았다는 것이다. 이 시간에 놀이가 있었고, 소통이 있었고, 연애가 있었고, 그래서 한풀이가 가능했었다는 것이다. 가족끼리 사는 것이 당연했던 시절에 맘 편하게 놀아도 되는 밤이 허락되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선물인가. 그 시간에 오고갔던 수많은 대화는 일 년을 버틸 수 있게 하는 힘이었을 것이다. 산업화 이후 오랫동안 그 역할을 했던 TV와 극장의 영화가 이미 그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 시대, 명절은 완전히 새로운 문화를 요구하고 있다. 한가위에 모인 가족들이 잘 놀게 해 주는 것도 정말 중요한 문화적 정치적 화두이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필자 김성수

- 문화.시사 평론가

- 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 언론학 석사

- 서강대학교 철학과 졸업

- 서울시 문화정책 자문단

- CBS 객원해설위원

- 뉴시안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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