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안=김성수 편집 자문위원/시사문화평론가 2012년 5월 27일, 미국 마이애미 고속도로 진입로 부근 CCTV에 희한한 광경이 잡힌다. 벌거벗은 남자가 다른 남자의 얼굴을 물어뜯고 있었던 것이다. 이 남자는 목격자와 경찰이 제지했음에도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며 계속 사람의 얼굴을 물어뜯었다. 경찰이 테이저건까지 썼지만 18분간이나 잔혹한 만행이 계속되자 사살할 수밖에 없었다.

범인은 루디 유진(Rudy Eugene)이라는 31살 청년이었는데, 세계 금융위기 여파로 집이 경매로 넘어가는 바람에 노숙 생활을 하던 사람이었다. 피해자 역시 노숙자였지만 범인과 유대관계가 전혀 없던 사이였다니, 대체 어떤 이유로 코와 한 쪽 눈을 비롯해 얼굴의 80% 가까이를 훼손할 만큼이나 적대적 감정을 느꼈던 것인지. 사건은 아직도 미궁에 빠져있다.

범인의 행동을 보며 많은 사람들의 추리가 쏟아졌다. 조현병 등이 의심되었지만 전혀 병력이 없었고, 약물 중독도 의심되었지만 2012년 6월 11일 발표된 부검결과에 약물 중독의 증거는 없었다. 하지만 그가 차를 타고 가며 덥다고 옷을 벗었다는 점, 피해자를 공격하면서도 옷을 벗겼지만 성적 공격은 하지 않고 얼굴만 물어뜯었다는 점, 괴력을 발휘했다는 점 등을 근거로 “배스솔트”라는 마약에 취해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증언이 쏟아졌다.

배스솔트는 원래 목욕할 때 물에 넣는 소금형 입욕제를 가리키는데, 이스라엘 사해의 소금이 원조다. 바닷물에는 없는 12가지 미네랄이 더 함유되어 있어 각종 피부병과 류마티스 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사해 소금은, 클레오파트라의 입욕제로 유명하다. 지금도 웹서핑을 해 보면 수많은 배스솔트가 다양한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2010년 무렵부터 미국과 영국의 젊은이들이, 새로운 환각제를 ‘배스솔트’라고 부르며 유행시켰던 것이다. 육안으로는 일반 배스솔트와 구분하기 힘들다는 이 신종마약은, 유통될 때에도 실제 배스솔트 용기에 담겨 거래되고 있다는데, 환각 효과가 코카인의 10배에 달하며 효과 역시 수 일 동안 지속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 성분은 아프라카의 자생 식물 ‘까트’에 함유된 환각성분 ‘카티논’을 화학적으로 합성한 것으로, 예전에는 마취제로도 쓰였다지만 강한 환각작용과 부작용 때문에 현재는 법으로 사용이 금지된 약물이다.

이 약물의 가장 큰 문제는 과다 투약했을 때 몸이 타들어가는 느낌과 환각, 격렬한 폭력성을 보인다는 것이다.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도 자기 행동을 통제하지 못하고, 자신이 저지른 행동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증상까지 나타난다. 마치 영혼을 지배당하는 좀비와 같게 만드는 것인데, 이 약물을 ‘좀비 마약’이라고도 부르는 것은 그 때문이다.

실제로 배스솔트를 과다 복용한 사람들은 공포영화 속의 좀비와 비슷한 행동 양상을 보인다.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며, 맹목적으로 공격을 감행한다. 평소의 두 배 이상의 완력을 보이는데 얼굴이나 목 등 머리 부위를 주로 공격하며, 물어뜯거나 심지어 인육을 먹기도 한다. 공포영화의 거장 조지 로메로 감독의 “살아있는 시체” 시리즈가 연상될 수밖에 없다.

사실 ‘좀비’는 조지 로메로 이전에는 영혼을 빼앗기고 노동을 착취당하는 일종의 ‘꼭두각시’의 의미가 강했던 괴물이었다. 아프리카에서 건너와 라틴아메리카에서 완성된 부두교 신앙에서는 주술사가 주문을 걸면 시체도 움직이게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들은 완벽하게 주술사의 통제 하에 있으며, 듣지도 못하고 의지도 없어서, 임금이 필요 없는 노예로 농장 등의 노역에 동원되었다고 한다. 낮에는 무덤 안에 있다가 밤에는 일을 시작하니 집도 필요 없고, 애초에 시체니까 먹일 필요도 없다. 암흑 속에서도 앞을 잘 보기 때문에 불빛도 필요 없다. 이렇게 노예농장주들의 무도한 탐욕과 노예들의 처절한 탈출욕이 결합한 이 상상은 후에 어설픈 과학과 접목해 프랑켄슈타인이 되었고, 구체적으로 실현된 것이 로봇이다.

꽤 오랫동안 노동 착취의 상징이어서 노예나 노동자계급으로 인식되던 좀비를 시스템을 파괴하는 괴물로 재창조해 낸 것은 조지 로메로부터였다. 그는 "살아있는 시체” 시리즈를 통해서 좀비의 원칙을 하나씩 만들어갔고, 좀비에 대응하는 인간들을 묘사하며 바람직한 인간과 인간 사회에 대한 탐구를 이어나갔다. 그는 좀비를 철저히 욕망만이 남아있는 존재로 묘사한다.

첫 영화에서 좀비들은 소화기관이 뜯겨 나가도 먹는 것을 그치지 않는다. 무의미한 탐욕을 무절체한 탐식으로 묘사해낸 것이다. 이는 이후 후배들에 의해서 신선한 뇌를 원한다는 설정으로 구체화 되며 식욕이 ‘뇌가 없기’ 때문에 즉, 이성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생겨난다는 원칙으로 정착된다. 두 번째 영화 “살아있는 시체들의 새벽”에서는 죽은 뒤에도 남아있는 소비욕을 강력한 동기로 묘사하면서, 인간들이 종말로 치달아가는 실체를 보여주었고 세 번째 영화에서는 과학에 대한 맹신과 성취욕 때문에 좀비에게 점령당하는 인간을 보여주면서 이 묵시록을 완성한다.

조지 로메로 이후 많은 후배 감독들은 좀비를 통해 인간을 탐구했다. 좀비의 원칙을 더하거나 인간이 좀비가 되는 원인을 나름대로 해석하면서 자신만의 메시지를 담았던 것이다. 특히나 인간이 ‘무엇’ 때문에 좀비가 되는지는 중요한 설정이었다. 조지 로메로는 방사능에서 그 답을 찾았고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나 부산행에서는 바이러스가 선택되었다. 외계로부터 온 미지의 물질을 선택한 감독도, 새로운 합성 약물을 선택한 감독도 있었다. 이는 사회학자들도 관심거리였는지 학자들은 인정욕구나 스마트폰, 심지어 한류도 좀비를 만들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좀비를 만드는 원인은 비교적 명확해 보인다. 실제로 얼마 전 한 국회의원은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국정감사 질의 시간에 어떤 사상을 갖고 있느냐고 물었다. SNS에서는 “나는 앞으로도 묻고 또 물을 것이다. 당신들의 머리에 무엇이 있는지”하며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인터넷에서는 지금도 대통령에게 ‘당신이 공산주의자가 아니라는 설명’을 하라는 서명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국민들 다수로부터 선택받은 대통령조차 빨갱이라고 물어뜯는 이 행위는 뇌를 공격한다는 측면에서 좀비들의 행위와 다를 바가 없다. 이들이 어떤 원인 때문에 이런 행위를 그치지 않는지 알 길이 없지만 ‘배스솔트’의 원조인 사해가 성경에 어떻게 묘사되고 있는지를 보면 짐작은 할 수 있겠다. 갈릴리 호수와 사해는 똑같이 성스러운 요단강에서 물을 받지만 갈릴리 호수는 받은 만큼 흘려보낸다. 사해는 받기만 할 뿐 나누지를 않아 생명들이 살 수 없는 곳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결정체가 사해소금이라면 ‘배스솔트’의 다른 이름은 탐욕 아닌가? 이 또한 좀비 상징과 얼마나 닮아있는가?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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