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안=김성수 편집 자문위원/시사문화평론가]

밀양 세종병원의 화재는 마지막 경고다

제천에서 끔찍한 화재 참사가 발생한지 한 달 여 만에 서른아홉 명이나 목숨을 잃는 끔직한 화재 사고가 또다시 일어났다. 경삼남도 밀양 세종병원에서 발생한 이 사고는 부상자를 포함해서 무려 19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해서 인명 피해의 규모 면에서 큰 충격을 줬지만,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이 밀집해 있는 병원임에도 마땅히 갖춰야 할 소방 시설과 대비 시스템이 전혀 갖춰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더욱 큰 충격을 주었다.

더구나 사고 직후에 열린 기자회견은 경악스러울 지경이었다. 병원의 이사장은 누차 자신들이 법을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병원 바닥 면적이 스프링클러 의무설치 면적에 미치지 못해 설치하지 했고, 소방 검사도 제 때 꼬박꼬박 받아왔으며, 내장재 역시 규정을 준수하며 사용했다는 것이다. 화재 원인을 천장의 누전이라 주장하면서도 누전 차단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불합리를 파고드는 기자가 없었다는 것도 한심했지만, 화재 시 당연히 닫혀있어야 하는 방화문조차 열어젖혀 두고는 줄기차게 법을 지켰다 주장하는 그의 초연한 얼굴은, 대한민국의 몰상식을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따라서 이번 참사는 준엄한, 최후의 경고라고 읽어야 한다. 더 이상 몰상식을 용인해서는 안 된다는.

병원이라면 당연히 스프링클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상식

몰상식의 우기기가 상식을 이겨내는 대한민국에서는, 자력으로 대피할 수 없는 입원자가 있는 병원이라면 당연히 스프링클러 설치가 의무화되어야 한다는 상식도 법에 의해 난도질당한다. 소방 검사를 제대로 받았다면, 아니 누전차단기라도 정확히 규정대로 설치하고 있다면, 스스로가 말한 천장 누전 스파크가 일어날 수 없다는 상식도 법에 의해 작성된 서류가 배신한다. 내장재에 난연성 제품을 제대로 썼다면 그렇게 유독가스가 발생할 리 없다는 상식에 입각한 의심도 그들이 준수했다는 규정이 막아낸다. 화재발생 시 방화문이 닫혀 있어 화염과 연기를 차단했다면, 비상발전기가 제대로 가동해서 산소호흡기 등에 전원이 끊어지지 않았다면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지 않았느냐는 지극히 상식적인 추정도 역시, 법과 규정을 지키며 운영했다는 그들만의 팩트가 가로막는다. 대한민국의 법은 이렇게 억울하게 죽어야 했던 39명보다, 상식을 대신해서 합법이란 이름표를 챙기는 데에만 급급했던 책임자들을 보호해 주고 있는 것이다.

몰상식을 법으로 만든 자들은 누구인가?

이런 상황에 당연히 나오게 되는 질문은 누가 법을 상식보다 못하게 만들었는가?’일 것이다. 국민들의 궁금증을 해소라도 해 주듯, 1야당의 김성태 원내대표는 지난 26일 화재 현장을 방문해서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그가 외쳐댄 대통령의 사과청와대, 내각 총사퇴주장에는 법을 만든 자에 대한 문책은 없었다. 홍준표 대표 역시 아마추어 정권의 부실한 예방조처를 비난하면서 화재 특별점검을 안 한 정부를 비난했지만, 여기에도 법을 만든 자에 대한 문책은 없었다. 오히려 두 대표의 주장은, 청와대가 특별점검 지시를 내렸다고 해도 실행은 지자체 소관이라는 점과, 소방점검을 직원이 셀프로 한 병원에서 난 화재란 사실을 감안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사건의 성격조차도 파악하지 못한 몰상식한 비난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집단지성은 이 해답을 찾아 공유하기 시작했다. 먼저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년부터 11년 사이에 정부와 여당의 주도로 수차례 개정된 소방법의 무서운 함정을 발견했다. 기존의 전수조사 방식의 소방검사는 샘플조사 방식의 특별조사로 바뀌었고, 특별조사는 7일 전 미리 관계인에게 통보하는 검사로 훼손되어 있었다. 심지어 7일 정도 교육을 받으면 누구나 딸 수 있는 소방시설관리사 자격증만 있으면, 이해 당사자든 누구든 셀프 소방점검을 하고 소방서에 결과만 통보해도 합법이란 이름표를 받을 수 있게 바뀌어 있었다. 과연 이 법은 누구를 위해 개정된 것이었을까.

집단지성은 소방법이나 건축법 등을 통해서 화재 예방을 하려던 입법 시도들이 무산된 것도 찾아냈다. 2009년도에는 야당 소속의 강창일 의원이 6층 이상의 건물에 불연재 사용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은 건축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과 국토부가 반대해서 법안심사소위에서 통과되지 못했다. 2014년 장성 요양병원 화재 때 스프링클러 부재가 문제로 지적되자 다양한 법안이 고안되었지만 세칭 맞춤형 규제를 담은 조원진 의원의 소방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는데, 이 법은 의료시설 전체 중에서 요양병원, 정신병원, 노유자 시설의 스프링클러 강화조치만 들어있었다. 이를 일반병원에까지 확대하는 조항이 담긴 개정안은 201611월에서야 발의되었는데 탄핵 국면에 방치되다가 제천 화재 참사가 벌어진 다음에서야 겨우 행정안전위원회를 통과했다. 야당은 이 법안의 소위 통과를 예상하며 대신 소방예산을 뭉텅 잘라내었는데 아직 법사위와 본회의를 통과해야 하는 까닭에 시행이 불투명하다.

왜 경남은 응급의료시설이 없고, 화재가 많이 발생하는가?

집단지성은 상식에 입각한 여러 흥미로운 의문들도 제기하고 있다. 우선 밀양시가 왜 그리도 세종병원의 불법 증축을 묵인하다시피 했는가에 대한 합리적 추론이 그것이다. 경남은 의료취약지가 많은 광역지자체로 손꼽힌다. 특히 홍준표 대표가 진주의료원을 없앤 후 도내 응급의료시설은 말도 못하게 부족한 상태다. 거창군, 산청군, 함안군은 응급실조차 없고, 통영시와 하동군, 함양군, 고성군, 합천군, 의령군, 남해군에는 각각 1개씩 있지만 의료 시설이 열악하기에 중상환자는 인근 큰 병원으로 옮겨가야 하는 실정이다. 그나마 사천시, 밀양시, 거제시, 창녕군에는 2곳씩 있는데 밀양 세종병원이 그 중 한 곳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응급실의 불법 증축을 문제 삼아 행정대집행을 강행했다면 그 넓은 지역에 응급의료시설이 단 한 곳만 남게 되는 위험천만한 일이 발생하기에 병원의 배짱영업에 끌려 다닐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경남이 다른 광역지자체보다 유독 화재가 많이 발생한다는 사실도 찾아냈다. 홍준표 대표는 제천 화재 시에는 자신의 재임 기간 동안 화재사고가 단 한 건도 없었다고 주장했고, 밀양에서는 재임 44개월 동안 항상 특별 소방점검을 했기 때문에 화재로 인한 인명 피해가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론 그의 재임기간 내 화재사고 건수는 16170건으로 경기, 서울에 이어 전국 3위였고, 사망자 숫자도 99명이나 되어 전국 4위였다. 인구 1만 명 당 화재사고 비율도 12건에 달해 5위 수준이었다.(소방청 국가화재정보센터 화재현황통계 참고) 이는 화재사고를 비롯해서 안전에 관한 인프라와 관리 시스템에 문제가 있음을 반증하는 자료들이었다.

그런데 경남 도지사는 어디에?

또한 집단지성은 이렇게 화재에 취약하고 의료시설의 관리 감독이 부실한 경상남도에 총책임자가 없다는 사실도 지적하고 있다. 지금 경상남도는 홍준표 전임 도지사가 대선에 출마하며 꼼수 사퇴를 하는 바람에 지방선거 때까지 새로운 도지사를 뽑을 수 없다. 광역지자체의 안전대책을 마련할 총책임자가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해 1년 넘게 공석인 상태니, 현상 유지조차 버거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작 홍준표 전임 도지사 본인은 이런 상식에 입각한 지적에도 여당과 언론 탓을 하며 허위사실만 퍼뜨리고 있을 뿐이다.

상식은 도덕이 아니다. 그러니 상식적인 법을 원하는 것은 윤리적 완결성을 원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상식은 전문적 지식도 아니다. 하지만 실용적이고 합리적일 뿐 아니라 최근에는 집단지성에 의해 더욱 정교해지면서 전문가의 오류조차 보완할 수 있는 힘을 획득하고 있다. 그럼에도 상식보다 몰상식이 판을 치고, 상식보다 못한 합법이 만연하다는 사실은, 법으로 대한민국의 안전을 지킬 수 없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특히 지난 9년의 우파 정권 시기에 말도 못할 정도로 심각하게 훼손된 안전 관련법들은,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어나가야 할 대한민국을 백척간두로 몰아가고 있다. 그들은 법을 훼손함으로 초과 이득을 얻을지 모르지만, 훼손된 법 때문에 서민들은 목숨을 잃고, 가정을 잃고,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그러니 이 화재사고가 마지막 경고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돈이 더 들더라도 하루바삐 사람의 목숨부터 챙겨야 함께 살 수 있다는 준엄한 경고, 이 경고를 무시한다면 대한민국은 탈출해야 하는 난파선이 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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