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연재] ‘대통령들의 스포츠’…우간다 이디 대통령, 복싱 실력으로 만든 ‘아프리카의 지옥’
[2021 연재] ‘대통령들의 스포츠’…우간다 이디 대통령, 복싱 실력으로 만든 ‘아프리카의 지옥’
  • 기영노 편집위원
  • 승인 2021.07.06 13: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간다 이디 아민대통령(사진=Thoughtco화면캡처)

[뉴시안=기영노 편집위원]대통령들은 힘이 세다. 막강한 힘을 가진 최고의 권력자임은 역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독일 총통 아돌프 히틀러는 2차 대전을 일으켜 600여만 명의 유대인과 그 열 배에 이르는 6000여만 명 가량의 군인과 민간인을 사망케 했고, 존 F. 케네디(구소련의 후루시초프)는 쿠바 봉쇄로 3차 세계대전을 막아 수억 명의 생명을 구했다.

넬슨 만델라는 남아공의 인종차별정책 ‘아파르트헤이트 시대(the Apartheid era)를 ‘용서와 화해’로 풀어냈고, 군부독재의 상징 전두환은 86, 88 때 스포츠 장려정책으로 체육인들로부터는 크게 미움을 받지 않고 있다.

리처드 닉슨과 마오쩌둥은 탁구를 매개로 냉전 관계의 미국과 중국(공)의 관계를 녹여내 인류 평화에 막대한 기여를 했고, 조지 웨아는 축구에서 얻은 명성을 바탕으로 스포츠인 최초로 라이베리아 대통령에 당선됐다.

대통령도 인간이다.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와 영국 총리 보리스 존슨은 ‘코로나 19’에 감염되었다가 회복됐다. 일본의 아베 총리와 김영삼 대통령은 골프를 치다가 엉덩방아를 찧는 촌극을 벌였고,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병인 알츠하이머를 앓다가 사망했다.

스포츠는 그 나라 대통령들의 관심, 그리고 정책 변화에 따라 활성화되거나, 침체되곤 했었다.

지구촌의 현역, 역대 대통령(수상)들은 그동안 어떠한 스포츠 정책을 폈고, 그 나라의 스포츠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알아보았다.

<이 연재물은 기자(시간의 물레 간 2013년, 대통령과 스포츠)의 저서를 보강한 것이다>

 

말 안 듣는 장관 링 위로 끌어올려 난타한 이미 아민

아프리카의 전형적인 흑인 이디 아민은 키 193cm에 몸무게 130kg의 거구였다.

이디 아민은 체격만 큰 게 아니었다. 1951년부터 60년까지 10년 동안 아프리카 우간다의 복싱 라이트 헤비급 챔피언 출신이었다. 복싱은 그 스피디한 동작과 순간적인 판단이 요구되는 두뇌의 작용, 30분 이상 링 위에서 상대를 가격하고 피하고 맞으면서 버틸 수 있는 지구력과 힘의 배분 등을 동을 볼 때 현대 스포츠가 요구하는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는 훌륭한 스포츠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이디 아민은 복서로서의 장점을 대통령이 돼서 국민들을 지배 하는데 십분 악용했다.

그는 자신이 집권하던 1978년, 우간다와 국경분쟁이 잦은 탄자니아의 줄리어스 니에레레 대통령에게 “양국 대통령 간 권투 시합을 해서 국경 문제를 해결하자”고 황당한 제안을 하기도 했었다.

당시 우간다와 탄자니아는 국경선을 따라 흐르는 ‘카제라 강’을 놓고 국경분쟁을 벌이고 있었다.

한술 더 떠서 자신이 왕년의 우간다 라이트 헤비급 복싱 챔피언인 만큼 경기를 공평하게 하려고 자신은 한 손을 묶고 양다리엔 무거운 짐을 달아맨 채 링에 오르겠다고 제의했다.

이렇듯 엉뚱한 제의는 결코 농담이 아니었다. 그는 공보담당관에게 자신의 제의를 정식으로 공표하게 했다.

물론 이 황당한 제의는 탄자니아 측에서 일언지하에 거절한 탓에 성사되지 않았다.

알리가 심판을 본다면 이노끼와도 싸우겠다

1976년 일본의 프로레슬러 안토니오 이노끼와 무하마드 알리가 세기의 대결을 펼쳐 세계적인 관심을 모았었는데, 당시 ‘알리-이노끼’의 대결이 끝나자 이번에는 이디 아민 대통령이 나섰다.

그는 “알리가 심판을 본다면 나도 이노끼와 격투를 벌이겠다”고 제의를 한 것이다. 성사되지는 않았지만, 현직 대통령이 이종 격투기를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디 아민은 대통령 재직시절에 수시로 복싱 글러브를 끼고 우간다 복싱 대표 선수들을 지도하기도 했다.

특히 각료들 가운데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링 위로 불러올려 3분 3라운드 동안 실컷 두들겨 패 주기도 했다.

복싱을 하지 않은 사람은 글러브를 끼고 링 위에서 1분만 지나도 헉헉 대기 마련인데, 무려 9분 동안 무서운 펀치를 퍼부은 것이다.

당시 이디 아민에게 링 위에서 합법적으로 두들겨 맞은 각료들은 최소한 경상 아니면 전치 10주 이상의 중상을 입었었다.

아마 3회전 이상 뛸 체력이 남아 있었다면 사망하는 각료도 나왔을 것이다.

이디 아민은 자신이 각료를 코너에 몰아넣고 강력하게 몰아붙일 때 심판이 클린치 선언을 하고 두 사람을 떼어 놓자 심판을 가격해서 실신시키기도 했다.

복서 출신이 비록 링 위에서 글러브를 끼었다고 해도 일반인을 상대로 주먹을 휘두르는 것은 마치 어른이 아이를 상대로 폭행을 하는 것처럼 비인간적인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복싱에서 익힌 파워를 국민들을 포악하게 지배하는 데 이용했다.

이디 아민은 포악한 통치로 영국의 처칠이 ‘열대의 정원’이라고 했던 우간다를 ‘아프리카의 지옥’으로 전락시켰다.

이디 아민이 포악한 정치인이 된 이유는 정서적으로 전혀 인간이 되어 있지 않은 문맹이었기 때문이었다.

대통령 재임 시절 자신이 총장으로 있는 우간다 국립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사실 까막눈이었다.

그가 비록 8년밖에 집권하지 않았지만, 그가 저지른 만행은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의 냉장고에 정적의 머리를 넣어 놓고 수시로 꺼내 보며 즐겼고, 사형당한 시체를 자신이 기르던 악어에게 먹잇감으로 주는가 하면, 이혼한 전처가 자신의 아이를 낙태시키자 전처는 물론 시술한 산부인과 의사까지 죽여서 서로의 팔과 다리를 바꿔서 봉합시키기도 했다.

이디 아민의 폭정을 참지 못해서 군부가 들고 일어나자, 그 화살을 밖으로 돌리기 위해 탄자니아를 침공했다.

그러나 탄자니아의 역습을 받아 수도까지 함락당하자 중동으로 탈출, 사우디아라비아에 정착해서 연명하다가 2003년에 사망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