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자동차 생산라인. (사진=현대자동차)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자동차 생산라인. (사진=현대자동차)

[뉴시안= 남정완 기자]벌써 1년 가까이 지속하고 있는 차량용 반도체 품귀 현상으로 글로벌 완성차 업체 공장들이 도미노 휴업에 들어가고 있다. 또 최근 미국 정부에서 삼성전자, TSMC 등 글로벌 반도체 업체들에 영업 기밀에 해당하는 자료까지 요청하는 등 반도체 수급을 위한 국가 차원의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1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자동차그룹은 지난달 현대차 미국 앨라배마 공장 가동을 닷새간 중단했고, 기아 조지아 공장도 하루 동안 생산 차질을 빚었다. 국내 공장의 경우 상황은 더 심각하다. 현대차는 지난달 아산공장 가동을 두 차례, 울산 4공장 가동을 한 차례씩 멈췄다. 한국지엠 역시 올해 초부터 부평 2공장을 절반만 가동하고 있으며 부평 1공장 가동도 절반 가까이 줄였다.

현대차는 지난 9월 국내외 시장에 28만1196대의 완성차를 판매하는데 그쳤다. 차량용 반도체 부족으로 인한 생산차질로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22.3% 판매 감소세를 보였다. 현대차와 기아는 반도체 수급난으로 상반기에만 각각 7만 대와 6만 대의 생산 차질이 발생했다. 

또한 신차 출고가 지연되면서 소비자들이 현대차와 기아의 주요 신차를 계약해도 연내 받을 가능성이 희박하다.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 투싼은 4개월 이상, 싼타페는 5개월 이상, 전기차인 현대차 아이오닉5와 기아 EV6도 4개월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GM, 포드, BMW, 도요타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도 상황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으로 인해 공장 일부 생산라인을 지난달에 이어 이달까지 중단하며 신차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다. 또 폭스바겐, 포드 등 주요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올해 들어 감산 일정을 발표했다. 폭스바겐은 지난 1분기 동안만 10만대 가까이 생산량을 줄였다.

미국 경제전문매체 CNBC에 따르면 미국의 지난 9월 신차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4~26% 이상 급감할 것으로 전망했다. 코로나19의 여파로 자동차 구매 심리가 커지면서 수요가 급증하는 반면 반도체 수급난 장기화로 대부분의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공장 가동을 중단하면서 신차 출시가 제때 이뤄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지난 4월 1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 루즈벨트룸에서 열린 반도체 공급망 복원에 관한 최고경영자(CEO) 화상 회의에 참석한 바이든 대통령이 실리콘 웨이퍼를 들고 있다. (사진=AP/뉴시스)
지난 4월 12일(현지시간)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 워싱턴 백악관 루즈벨트룸에서 열린 반도체 공급망 복원에 관한 최고경영자(CEO) 화상 회의에 참석해 실리콘 웨이퍼를 들고 있다. (사진=AP/뉴시스)

이런 중에 지난달 23일 미국 정부는 ‘반도체 공급망 대책 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했다. 이날 삼성전자, TSMC, 인텔, 애플, 글로벌파운드리 등 글로벌 반도체 업체와 GM, 포드, BMW 등 완성차 업체가 대거 참석했다.

회의 다음 날인 24일 미국 상무부 기술평가국은 참석한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에 영업 기밀에 해당하는 주력제품 매출과 재고, 고객사 명단 등을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글로벌 반도체 업체들이 미국의 반도체 관련 정보 요청에 대한 대책 마련에 나서는 등 분주하다. 미국 정부는 자료 제출을 기업의 자율에 맡긴다고 말은 했지만 45일 이내에 정보를 제출하라는 조건을 달아 사실상 강제하는 분위기다.

글로벌 반도체 업체로서는 가장 큰 반도체 소비 시장을 가진 미국의 요구를 거절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다만 어디까지 정보를 공개할 것인지를 놓고 각국 정부와 해당 기업들이 논의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업계는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이 올해 4분기를 정점으로 높아졌다가 내년부터 회복될 것으로 전망했지만 최근 추세를 반영하면 회복 시점이 더 늦춰질 것으로 예상한다.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 IHS마킷은 최근 내년도 전 세계 자동차 생산량 전망치를 기존 8260만대에서 10.3% 줄인 7410만대로 하향 조정했다.

한편 반도체 수급난이 자동차 산업을 넘어 철강 등 제조산업 전반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표면적으로 반도체 수급난은 미·중 무역 갈등에서 출발했다. 지난해 미국 정부가 자국에서 만든 반도체를 중국 업체에 공급하는 데 사전 허가를 받도록 제제를 단행한 바 있다. 이에 화웨이 등 중국 업체가 반도체를 대량으로 사들이며 반도체 부족 현상이 야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 작센주 츠비카우에 위치한 폭스바겐 공장에서 근로자들이 차를 조립하는 모습. (사진=AP/뉴시스)
독일 작센주 츠비카우에 위치한 폭스바겐 공장에서 근로자들이 차를 조립하는 모습. (사진=AP/뉴시스)

더욱 근본적인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의 원인은 자동차 산업 구조의 전환과 이에 따른 반도체 수요 예측 실패에 있다. 현재 내연 기관차에는 평균 200~300개의 반도체가 들어간다. 하지만 전기차, 자율주행차 등에는 이의 10배 수준인 2000여 개 이상의 반도체가 필요하다. 

글로벌 시장에서 차량용 반도체 분야의 매출액은 10% 수준에 불과했지만, 최근 주요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 전환에 속도를 내면서 마이크로 컨트롤러 유닛(MCU)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데 반도체 수요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차량용 반도체 시장은 독일의 인피니언, 네덜란드의 NXP, 일본의 르네사스 등 10여 곳이 점유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이 반도체 생산능력을 높게 평가받고 있지만, 차량용 반도체는 진입 장벽이 높고 마진율이 낮아 돈이 안 되기 때문에 직접 개발에 나서기 보다 팹리스(설계)를 통한 공급에 머물러 왔다. 이 때문에 국내 완성차 업계는 차량용 반도체 물량의 98% 이상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심화된 반도체 수급난은 반도체 시장 1위 기업인 대만 TSMC의 악재도 한몫을 했다. 지난 4월 대만 공장 화재와 정전 등으로 생산에 차질을 빚은 데 이어 말레이시아, 태국, 필리핀 등 반도체 공장이 100여 개 이상 밀집된 동남아시아 지역에 코로나19 델타 변이가 확산하면서 공장 가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미국의 거세지는 반도체 정보 공개 요구 속에 차량용 반도체 생산 확대 과제를 떠안은 반도체 제조사들과 완성차 업체들의 반도체 수급 등 해결해야 할 난제들이 쌓여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당면한 반도체 대란을 위기이자 기회로 받아들여 차량용 반도체의 수입 의존도를 낮추는 한편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열어나갈 필요가 있다”며 “이를 위해 기업과 정부 차원의 공동 대응이 긴밀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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