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 남아공 포트 엘리자베스 만델라 베이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0 남아공월드컵 B조 대한민국과 그리스의 경기에서 박지성(대한민국)이 차리스테아스(그리스)의 수비를 피해 돌파를 시도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 2010년 남아공 포트 엘리자베스 만델라 베이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0 남아공월드컵 B조 대한민국과 그리스의 경기에서 박지성(대한민국)이 차리스테아스(그리스)의 수비를 피해 돌파를 시도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시안=기영노 편집위원]사람은 누구나 승부를 겨루면서 살아간다. 저녁내기 같은 작은 승부도 있지만 때로는 자신의 운명을 걸어야 하는 큰 승부도 있다. 하물며 스포츠 세계에서의 승부는 늘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할 만큼 절박한 상황에서 벌어진다. 매주 목요일, 승부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같은 행위의 반복을 통해 새로운 세계에 들어서는 스포츠인들의 몸부림을 들여다본다.

2021시즌 K리그는 전북 현대의 우승으로 막이 내렸다.

최우수선수는 전북 현대의 홍정호, 영 플레이어는 울산 현대 설영우 그리고 우승팀 전북 현대 김상식 감독이 올해의 감독상을 받았다.

8일 대전 한밭종합운동장에서 벌어진 승강플레이오프 1차전에서는 2부리그 2위 팀 대전 시티즌이 1부리그 11팀 강원 FC에 1대0으로 이겼고, 이제 12일(오후 2시) 강릉종합운동장에서 벌어질 2차전이 남아있고, 11일 DGB 대구은행 파크에서 FA컵 2차전(1차전 대구 FC가 전남 드레곤스에 1대 0승)이 벌어진다.

그렇다면 한국 축구 역사에 가장 화려하고 의미 있고 멋진 골은 어떤 골일까?

 한국축구의 역사는 멀리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사기에는 우리 조상들이 쇠가죽 속에 털이나 겨를 넣어 둥글게 공을 만들거나 돼지의 방광에 바람을 넣어 찼던 축국(蹴鞠)을 즐겼었다.

근대식 축구가 도입된 것은 19세기 말엽이다. 1900년에는 유학생 출신의 궁내부 참리들과 어전동역관 등이 처음으로 훈련원과 서삼평 등지에서 영국인 선교사들의 지도를 받으며 축구를 했다.

1921년 제1회 전 조선 축구대회가 열렸고, 1928년 조선축구심판협회(조선축구협회의 전신)가 창립됨으로써 한국에 정식으로 축구가 보급되었다.

1948년 런던 올림픽에 태극기를 앞세우고 세계에 도전하였었고, 1954년 스위스월드컵에 처음으로 출전했다.

그렇다면 한국에 현대축구가 들어온 이후 가장 화려하고, 값진 골은 어떤 골이었을까?

역시 세계축구 최고의 무대인 월드컵 본선에서 한국 선수가 넣은 골 가운데 골라야 할 것 같다.

한국은 1954년 스위스월드컵 본선 2조 예선에서 헝가리에 0대9, 터키에 0대7 2연패를 당하면서 16골을 허용했고, 한 골도 넣지 못했다.

한국이 월드컵 본선에서 첫 골을 넣은 것은 그로부터 32년 후인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본선 A조 아르헨티나와의 첫 경기였다.

한국이 아르헨티나에 0대3으로 뒤지던 후반 27분 박창선 선수가 골을 넣었다. 한국축구는 박창선 이후 월드컵 본선에서 23명의 선수가 34골을 넣고 있다.

안정환, 박지성, 손흥민 선수가 각각 3골로 공동 1위를 달리고 있다.

그 뒤를 홍명보, 황선홍, 유상철, 이정수, 이청용 선수가 각각 2골로 공동 2위, 박창선을 비롯한 15명의 선수가 1골씩을 넣어 공동 9위에 올라있다.

박지성 선수 3대회 연속골, 최고 골 2관왕?

월드컵 본선 골 맛을 본 23명 가운데 3개 대회에서 연속 골을 넣은 것은 박지성(전북 현대 클럽 어드바이저)뿐이다.

박지성 선수는 2002한일월드컵, 2006 독일월드컵, 2010 남아공월드컵 등 세 대회에서 각각 1골 씩 모두 3골을 터트렸다.

박지성 선수가 월드컵 본선에서 넣은 3골 가운데 2002 한일월드컵 포르투갈전에서 넣은 골을 ‘월드컵 최고 골’로 기록 할 수 있을 것이다.

2002년 6월 14일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열린 한, 일 월드컵 축구대회 D조 예선 마지막 경기 포르투갈전, 한국은 1승 1무, 포르투갈은 1승 1패를 기록하고 있어서 만약 비긴다면 한국은 1승 2무로 조 1위, 포르투갈은 1승 1무 1패로 미국과 동률이지만 골 득실 차로 조 2위로 16강에 오를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 경기 전, 포르투갈 선수들이 한국 선수들에게 은근히 비기자는 사인을 보냈다는 말이 나돌기도 했다.

경기는 0대0 팽팽하게 전개 되다가 후반 25분경 한국 팀의 결승 골이 터졌다.

박지성, 마치 펠레 전성기를 연상하게 하는 골 넣어

0대0, 두 팀 모두 골을 넣지 못하고 답답하게 흘러가던 후반 25분경, 박지성은 코너킥 상황에서 이어진 이영표의 크로스를 가슴으로 트래핑한 뒤, 오른발로 살짝 공을 띄워 수비를 속인 후 떨어지는 볼을 왼발로 때리는 기막힌 묘기를 부렸다. 마치 펠레의 전성기 때를 보는 듯한 골이었고, 축구선수라면 누구나 월드컵 본선에서 ‘그런 골을 넣는 꿈을 꿀’ 정도로 환상적인 골이었다.

박지성의 슈팅은 포르투갈 골키퍼 비토르바이어 다리 사이를 통과해 그대로 골문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골은 한국 축구 역사상 월드컵 2번째 승리를 안긴 결승 골이자 한국의 월드컵 16강을 이끈 골이었다.

당시 일본 프로축구 교토 퍼플상가 소속이던 박지성의 나이는 겨우 21세였다.

박지성은 그 골을 넣은 직후 거스 히딩크 감독에게 달려가 폭~ 안기기도 했다.

당시 포르투갈 대표 팀에는 현재 한국 국가대표 감독인 파울루 벤투(수비형 미드필더) 감독이 선수로 뛰고 있었다.

박지성은 2002 한일월드컵이 끝난 이후 그해 12월 거스 히딩크 감독의 부름을 받고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번에 3년 6개월 동안 450만 달러를 받고 입단했다.

당시까지 한국축구선수의 해외 진출 최고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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