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골프계의 '양 싸부'로 불리는 양찬국 프로가 뉴시안에 고정칼럼을 게재합니다. 양프로는 KPGA회원으로 대한골프협회전문위원을 지냈습니다. 경희대겸임교수를 역임하며 스카이72골프클럽 헤드프로로 골프채널인 J골프의 '시니어를 위한 노장불패'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한국 골프사와 함께해온 양프로의 골프뒷얘기를 담은 '양싸부, 양찬국의 골썰(Gol 說)' 연재에 많은 성원바랍니다.

골썰 연재에 앞서 양프로가 현충일을 추념하며 쓴 '현충일 헌사'를 소개합니다. 그는 50년전  베트남전에 참전한 용사입니다.

그는 시와 더불어

"벌써 50년전의 일이나 어제 일처럼 생생한 먼저 죽어 간 전우들을 기립니다.늙어서 떠나셨던 부모님들과는 달리 그들은 가장 젊은 나이에 어둡고 축축했던 타국의 전장에서 숨져 떠났기에 그 날처럼 푸르고 밝은 날이나 뿌연 새벽 안개 짙은 날이면 하루 온종일 그들의 영령과 함께 울며 지냅니다. 

아무리 울며 절규를 해도 되돌려주지 않을 생명이며 돌아오지 못할 그들이고 이미 흔적조차 없어진 그들이지만 매일 밤낮으로 같이 지내왔기에저 혼자만의 오늘 하루종일을 혼자가 아닌 그들을 기리며 눈물을 닦겠습니다."는 소감을 보내왔습니다.

 

"새벽의 시간
아침까지는 아직 먼 듯 

사위가 漆黑(칠흑)같이 어둡고
그 흔한 풀벌레 한마리 울지 않는
靜寂(정적)속에서
"죽음"을 생각하며 
무서워 몸을 떨던 그 시간들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가장 용감(勇敢)했다고 말하지만
가장 비겁했던 무서움을 감춘 채
불안에 떨면서 견뎌야만 했던
그 시절의 제 모습을
매일 새벽이면 다시 봅니다.

월남 졍글의 새벽 시간.
모두가 지쳐가는 
한 밤중과 이른 새벽의 사이는

어둡기만 했고
무섭기만 했고
추위에도 진땀을 흘렸고
아직도 한참 남은 새벽 하늘에서
한 점 흐릿한 별 빛이라도
밤의 끝이고 아침의 시작으로
스스로를 달래려는 
허망하기만 한 몸짓 이었습니다.

顯忠日 새벽
꼭 오늘이 아니어도
매일을 이 시간이면 
습관적으로 눈이 떠지는 탓에
50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저는 아직도 
埋伏(매복)중이고
경계 근무중 입니다.

이제는 잊혀질 때도 되었것만
매일 새벽의 그 어둠속에서
무서움에 떨고
긴장에 진땀으로 온 몸이 젖습니다.

언제나 새벽의 어둠속에서는
비겁했다가
새벽 하늘끝의 黎明(여명)을 보면
勇士로 되살아 나면서
월남에서의 근무를 마쳤습니다
그 지겨웠던 戰場을 떠나온지
50여년...

살아서 왔지만
몸만 살아서 왔습니다
몸과 靈魂은 
상채기 투성이 되었고
밤낮으로 
幻像과 惡夢에 시달리며
살아있어도 죽은 자 처럼
이승과 저승을 오갑니다.

오늘 하루는 모두가 
戰場의 亡者들을 기리는 날
顯忠日.
꽃 한송이
香 한줌 피워주면서 생색을 내는 날 
오직 변치않은 鎭魂의 나팔소리가
먼저 죽어 간 그들 묘지 위에
흩날립니다.

죽은 자들이
자신의 忌日에는
하루의 짧은 還生(환생)을
허락 받나 봅니다.
눈 앞에서 피 흘리며 죽었던
동수와 춘생이...
형돈이랑 일균이
겨우 하루 짧게 되살아 와서
앞에 앉아 있습니다.

철모는 벗어 놓고
방탄조끼 풀어 헤치고
한 손에 담배를 
또 한 손에는 맥주를 들고
아직 살아 있는 제게
黃天길 旅程을 말 해줍니다.

그들 모두가 
늙어서 가는 황천길을 가기에는
너무 젊었지요
어렸습니다.

그런 탓인지
자꾸만 뒤돌아 보며
가기 싫은 발걸음을 
띄고 있었나 봅니다.

마지막 내려 감던 눈거풀이
그리도 무거웠어요...
오늘 새벽은 
보름이 일주일쯤 지난 달이네요
가끔은 보름달 달빛에 들어난
졍글속의 모습이
더 섬뜩하기에
차라리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소리로 彼我(피아)를 가렸으면
하는 이유도 
사실 무섭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가장 늦게까지 떠 있는 것인지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인지
남십자성 그 별빛으로
아침으로의 남아있는 시간을
헤아렸던 그 시절을
70의 이 나이까지 
계속 겪으며 살고 있습니다.

어떤 시인은
이승에서의 삶을
" 逍風(소풍) "이라고 했고
또 어떤 시인은
" 어머니의 심부름 "이라고
했지요
매일 밤부터 새벽까지
먼저 죽어간 戰友들을 만나서
그 시절로 되돌아 가는 저에게
매일의 삶은
끝나지 않은 근무 입니다.

근무 교대없는 
徹夜(철야) 매복이라서
잠 못이루며 두리번 거리는...

서둘러 일찍 국립묘지로 가서
살아남은 몇몇의 전우들을 만나
먼저 죽어 묻힌 전우들에게
술 한잔 뿌려 주고
담배 한가치 피워 꽂아 주고
내년 이 날에 다시 오겠노라고
경례하고 오렵니다.

매일 밤 찾아오는 그들에게
오늘은 제가 찾아 갑니다.
전우들이 묻힌 묘지를 찾은
살아남은 자들은
아직도 
"埋伏 作戰중" 인듯
그 시절의 각이 살아납니다.

머리 빠지고 희어 졌지만
팔각모 각 잡아 눌러 쓰고
굽어진 등 펴며
각을 잡으려 애를 씁니다. 

먼저 간 전우들 곁으로 돌아가는 날
그 날에야 경계 근무가
끝나는 날 이겠지요.

살아서 맞는 
매일의 새벽 어둠이 지겹고
顯忠日의 새벽 어둠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어둡고 고요하고
무섭습니다.

책장 맨 위에
제가 죽으면 덮어줄 태극기가 
有功者 名牌와 함께 놓여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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