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안=소종섭 편집 자문위원/前 시사저널 편집국장] 몇 년 전 필자가 서울의 한 고서점에서 발굴한 자료에는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서울의 유래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 있다. 1956년 4월1일 당시 대통령 공보실이 발간한 <대통령 이승만 박사 담화집 제2집>이 그것이다. 이 책자는 1954년부터 1955년 12월10일까지 이대통령이 발표한 담화문들을 수록한 자료집이다. 이 자료집에 따르면 이대통령은 1955년 9월16일 ‘수도 명칭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담화를 발표했다.

‘서울이란 말은 우리나라 말로 수도이지 수도 자체의 땅 이름은 아니다. 서양인들이 동양에 오기 시작했을 때에 우리나라에 먼저 들어온 사람이 프랑스 천주교 전도사인데 이 사람이 비밀리에 변장하고 와서 이 도성의 이름을 물었을 때 서울이라고 대답한 것을 프랑스 사람이 할 수 있는 대로 음을 취해서 쓴 것이 외국인에게 차차 알려져서 이 도성 이름이 서울이라고 불리어왔다.’

담화 내용으로 미루어보면 당시 이대통령은 수도를 의미하는 일반명사 ‘서울’이 외국인들에게 그대로 전해지면서 고유명사 ‘서울’로 바뀌어 굳어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해방 전부터 이미 외국에서는 ‘경성’보다는 ‘서울’이라는 이름이 더 널리 알려진 이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서는 ‘우연이 바꾼 한국현대정치사 4’ 편을 참고하기 바란다.

이승만, 발음 어려우니 ‘서울’ 이름 바꾸자 제안

이 담화문은 또 당시 이대통령이 ‘서울’이라는 이름을 대체할 새로운 이름을 찾느라 고심했던 사실도 보여준다. 겉으로는 ‘발음이 어렵다’는 이유를 댔다. 그러나 막후에서는 이대통령의 충성파들이 이대통령과 관련 있는 이름으로 수도 이름을 바꾸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발음이 어려워서 모든 외국 사람들이 이 글자를 어떻게 발음해야 하는 것이냐고 늘 문제가 되니 우리 도성의 이름이 세계에 날 만큼 교정해서 이름으로 부르기 좋게 만들어 모든 사람이 편리하게 해야 할 것이다. 이 도시 이름도 옛말을 찾아서 부르도록 민간에서 많이 토론해서 발표해주기를 바라며, 만일 다른 이름을 찾을 수가 없으면 한양으로라도 고쳐서 세계에 공포해야겠으니 생각 있는 분들의 의견을 구한다.’

이대통령의 담화 이후 서울시에서는 수도명칭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다음해인 1956년 1월18일 3천5백2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수도 명칭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1위를 차지한 것은 우남(이승만 대통령의 호)특별시였다. 1천4백23명이 이런 의견을 냈다. 2위는 한양시(1천1백17명), 3위는 한경시(6백31명), 4위는 한성시(3백53명)로 나타났다. 1위가 ‘우남특별시’로 나왔다는 것은 의도된 조사가 아니었나 하는 의심을 하게 한다. 이승만은 부인했으나 이른바 ‘이승만 우상화’의 한 방법으로 수도 이름을 바꾸는 방안을 고심했던 것이 아닐까.

이승만은 ‘한도’, 최현배는 ‘한벌’ ‘삼벌’ 제안

그러나 반대 움직임 등이 일자 1957년 1월20일 이대통령은 수도 명칭을 ‘한도’로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는 “내가 대통령으로 있으면서 서울의 이름을 우남특별시로 하는 것은 원치 않는다. 여러 사람들이 내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그렇게 될 것이니 그냥 둬보는 것이 좋겠다고 했으나 내가 (수도 명칭을 바꾸자고) 강권해서 여기까지 온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글학자로 널리 알려진 고 외솔 최현배도 서울의 이름을 바꾸자고 주장한 사실이 있다. 그는 1955년 9월22일과 9월23일 이틀에 걸쳐 조선일보에 ‘새로운 이름을 정하자’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서울’이라는 명칭의 유래와 개정 필요성에 대해 최씨는 이대통령보다 좀 더 분명하게 언급했다.

‘19세기 끝머리에 프랑스 사람이 우리나라에 와서 <한불자전>과 <불한자전>을 꾸몄는데(1880년 간행) <한불자전> 머리말에 조선의 서울은 한양인데 SYEOUL-수도를 뜻한다고 하였다. 여기서부터 시작되어 우리의 서울을 SEOUL로 적게 되고 땅이름 대신에 쓰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그 이름이 서양인에게 널리 사용되어 온 것은 사실이다. 8·15 해방 뒤 미군정이 들어서면서 이 명칭을 쓰게 되어 진작부터 그 부당함을 통감해왔다. 미군정이 가고 대한민국이 들어섰는데도 바로잡아야 할 것이 여전히 사용되는 것을 보면서 심히 한심한 심사를 금하지 못하였다. 나라의 머리가 되는, 정부의 모든 기관의 중심이 있는 곳 즉 서울과 땅이름을 혼동한 결과 외국인이 그릇된 흉내를 내어 제 나라의 ‘서울’을 잃어버리고 다만 땅이름으로 사용한다는 것은 참 치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서울이 없는 나라가 어디 있단 말인가?’

한글학자 최현배, “서울이 없는 나라가 어디 있단 말인가?”

최씨는 이렇게 주장하면서 어떤 명칭이건 순 한글로 수도의 이름을 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제안한 이름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한벌’(한강·북한산 등에 나오는 크다는 뜻의 漢과 벌판을 뜻하는 벌), 다른 하나는 ‘삼벌’(삼각산에 열린 벌판 또는 삼천리를 다스리는 벌판이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서울’의 명칭을 바꾸자는 이대통령과 최현배의 주장은 실현되지 못했다. 그 연유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으나 당시 격변하던 정치 상황이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오늘날 서울은 국제도시로서 이름을 날리고 있다. 그러나 ‘서울’이라는 이름이 브랜드로서 안착하기까지는 이처럼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다. 그 과정은 한국현대사와도 긴밀히 맞닿아 있다.

저작권자 © 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