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의 문화 포커스] 기자와 기레기를 구분하는 법
[김성수의 문화 포커스] 기자와 기레기를 구분하는 법
  • 김성수 평론가
  • 승인 2018.04.26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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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안=김성수 편집 자문위원/시사문화평론가]

4월 25일 의미심장한 두 개의 사건이 벌어졌다.

오전 10시, 프레스센터에서는 “국경 없는 기자회”가 “2018 언론자유지수”를 공개했다. 2002년부터 매년 발표하는 언론자유지수는 180개 국가의 언론 자유 정도를 나타낸다. 올해 한국의 순위는 43위. 작년보다 20위나 뛰어올랐을 뿐 아니라 70위로 최하를 기록했던 2016년보다는 무려 27위나 올라 미국(45위), 일본(67위)을 제쳤다.

자유한국당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언론을 장악했다고 비난하고, 일부 여당 지지자들은 ‘기레기 울어 예는’ 조작 언론만 판친다고 비난하고 있지만, 권위 있는 세계적 언론단체에서는 전혀 다른 평가를 내린 것이다. 국경없는 기자회는 보도자료를 통해 “문재인 대통령 당선과 함께 언론자유의 어두웠던 10년이 끝났다. (지난) 10년의 후퇴 뒤 눈에 띄는 개선이 있었다”라고  평가하며, “언론인에 대한 적대감이 증가하는 추세"가 두드러진 현실에서도 이런 성취를 이룬  “한국 기자들과 시민사회에 박수를 보낸다.”고 축하했다. 

언론자유지수 43위로 오른 날 시도된 언론사 압수수색

이런 상황에서 저녁 8시 조선일보 건물 앞에서는 경찰과 기자들의 실랑이가 있었다. 드루킹 댓글 조작사건과 관련해서 TV조선의 기자가 절도 혐의로 입건된 가운데, 그의 자택에 이어 사무공간의 압수수색이 시작된 것이다. TV조선 기자들은 ‘언론탄압’이라고 격렬하게 저항했고 결국 경찰은 압수수색을 유보했다. 사실 문재인 정부는 국정과제로 ‘표현의 자유 및 언론의 독립성 신장’ 표방하고 있으니, 아무리 발부된 영장을 집행하는 것이 원칙이라 해도 기자들을 강제 해산하면서까지 강행한다는 것은 부담일 수밖에 없다.  

조선일보 건물 앞의 대치가 끝나자 인터넷 공간에서 전쟁이 시작됐다. ‘남의 건물에 허락도 없이 문을 따고 들어가 태블릿PC와 USB를 훔친 범죄자를 수사한다는데, 그걸 가로막았으니 공무집행 방해’라는 주장과 ‘아무리 취재윤리를 지키지 않았다 해도, 훔친 기기를 반환했고 사과도 했는데 굳이 언론사를 압수수색하는 것은 언론 탄압’이라는 주장이 격돌하고 있다. 두 주장 사이에서 비난과 혐오도 난무하고 있는 실정이다.

4월 25일 벌어진 두 사건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드라마 ‘미스티’에서도 확인했듯, 범죄 혐의자의 증거 확보를 위해서라면 방송사도 얼마든지 압수수색 할 수 있다. 하지만, 살인혐의와 같은 강력 범죄도 아니고, 훔친 물품들을 모두 반환했으며, 보도에도 사용하지 않았다면, 사무실 전체를 압수수색할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범죄 혐의로 입건된 자의 말을 다 믿을 수 있을까? 같이 들어갔다는 사람과도 말이 맞지 않는데? 또 일부의 도발적인 문제제기이지만 취재욕심에서라도 절도를 행하는 기자를 ‘기자’라 불러야 하는 것 아닌가? 

요즘 널리 쓰이는 ‘기레기’라는 단어는 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로, 지난 정권에서의 권언유착, 자본 지배를 효과적으로 경고하는 단어였다. 하지만, 지금은 ‘국경 없는 기자회’가 우려하는, 언론인에 대한 적대감의 대명사가 되었고,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 기사를 논리 없이도 축출할 수 있는 낙인이 되었고, 언론 혐오를 조장하는 단어로까지 타락하고 있다. 이 낙인 아래에선 토론이 사라지고, 진위가 불분명해지며, 오로지 ‘십자가 밟기’와 ‘편 가르기’만이 남게 된다. 누군가에게 기레기는 다른 진영의 언론 수호자가 되고, 그 진영의 편파 언론은 다른 진영에서 공정 언론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기자는 어떻게 행동 하는가?”란 질문은 중요하다. 기자다운 기자는 표현의 자유 아래 민주주의를 지키고, 권력과 자본을 감시하며 약자를 보호한다. 이들이 모이고, 훈련받고, 취재를 하게끔 지원하는 곳이 참 언론사이기에, 시민들은 부정한 권력의 침탈로부터 언론사를 지키기 위해서 희생했고, 언론사다운 언론사를 스스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고, 지금도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언론을 소재로 한 영화들은 비교적 명확하게 이 답을 밝혀 놓았다. 예비 신문기자들에게 항상 추천해주는 영화 ‘페이퍼’나, 예비 방송기자들에게 손꼽히는 영화 ‘브로드캐스트 뉴스’는 고전이다. 또한 최근에 나온 영화 ‘포스트’는 언론사 주인이나 언론협동조합의 조합원들이 반드시 봐야 할 영화다. 여기에 추출된 기준들을 근거로 기자의 특성 7가지를 정리해 보았다. 이를 통해 기자와 기레기를 구분할 수 있기 바라며.

1. 기자는 보도를 하면서 절도를 하지 않는다
론 하워드 감독의 94년도 영화 ‘페이퍼’의 주인공 헨리는 뉴욕의 작은 신문사 부편집장. 지역지의 한계를 절감해서 전국지로 자리를 옮기려고 하는데 살인사건이 터진다. 백인 사업가들이 무참히 살해된 것. 인근에 사는 흑인 소년들이 살인범으로 몰리지만 뭔가 찝찝해 하던 그는 하필 면접을 보러 간 자리에서 그 신문 편집장의 메모를 보게 된다. 그는 그 메모를 베끼긴 하지만 훔치지 않는다. 훔치면 범죄가 되기 때문에. 후에 이 사실을 안 그 편집장은 헨리에게 전화를 건 뒤 욕을 퍼붓는다. 하지만 신고하거나 할 수 없다. 도둑맞은 ‘물건’은 없기에.

2. 기자는 인용을 하고 분석을 하지 예언이나 주장을 하지 않는다
헨리는 동료와 함께 경찰을 찾아다닌다. 경찰은 흑인 소년들을 유력한 용의자로 체포해 놓았지만, 증거도 불충분하고 정황도 비논리적이라 불안하다. 경찰 중 일부는 무리한 보여주기식 체포라고 불만까지 표시한다. 하지만 기자 앞에서는 일제히 입을 닫는다. 헨리는 휴직 중인 만삭의 동료 기자, 자신의 아내 덕분에 중요한 단서를 포착, 백인사업가들이 마피아에 의해서 살해되었다는 심증을 굳혔지만, 경찰의 견해를 따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기사는 예언이나 주장이 아니라 확인된 사실을 논리적으로 쌓아 올리는 분석이기 때문이다. 마침내 한 양심적인 경찰이 익명을 전제로 인용을 허락하고 기사는 완성된다.

3. 기자는 오보를 방치하느니 윤전기를 세운다
영화 페이퍼의 상징적 장면은 거대한 윤전기가 멈춰서는 장면이다. 헨리와 동료들이 발바닥에 땀이 나게 뛰어 기사를 완성하지만 경영담당 사장은 이미 ‘잡았다’는 제목의 타이틀 사진과 함께 신문 인쇄를 명령한 것. 사장은 데드라인 넘기면 다음날 기사가 나가는 것이 원칙이니 오늘까지는 오보라 할 수 없고, 다른 신문들 역시 똑같이 오보를 낼 테니, 특종 욕심에 경제적 손실을 입히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헨리는 육탄으로 제지를 뚫고 비상버튼을 눌러 윤전기를 세운다. 오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기사를 고치지 않는 사람은 결코 기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더구나 억울하게 범인으로 몰린 사람의 마음과 그들의 장래를 생각한다면 반드시 제대로 된 기사가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기자다. ‘세월호 전원 구조’의 오보가 이런 사람들이 있다면 나올 수 있었을까?

4. 기자는 월급과 취재비를 받지 뇌물과 사례비를 받지 않는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2017년 영화 ‘포스트’를 보면, 워싱턴포스트의 사주 캐서린 그레이엄에게 이사들이 편집장과 일부 기자들에게 왜 그렇게 많은 돈을 주느냐고 핀잔을 주는 장면이 나온다. 남편이 죽자 전업 주부였던 여자가 경영 일선에 나와 뭘 잘 모르고 내린 결정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캐서린은 이미 젊어서 기자 생활을 했기에, 기사는 기자가 쓰는 것이고, 신문사의 경영진들은 그 기사로 장사를 하는 것임을 명확히 알고 있었다. 넉넉한 월급과 취재비가 있어야만 우수한 기자들을 쓸 수 있고, 그래야 좋은 기사가 확보 된다고 믿었기에, 캐서린은 주식 상장을 하면서 돈을 마련하려 하지, 인력감축이나 월급 삭감을 하려 하지 않는다.

만일 충분한 월급과 취재비가 없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충분한 자료와 취재원을 확보하기 어렵기에 아무리 능력 있는 기자라도 활동에 제약을 받는다. 재정이 취약한 일부 신문에서는 댓가를 요구하며 기사를 쓰기도 하고, 지난 정권에선 정부에서 돈을 주면서 기사를 샀다던데, 둘 다 기사가 아니라 ‘광고’다. 그래서 기사인양 이런 광고를 쓴 기자라면 ‘기레기’란 비난을 들어도 반박할 수 없다. 그래서 모 보도채널 신임 사장의 자랑이 ‘매출 증대’였을 때 시민들은 절망했던 것이다.

5. 기자는 원고를 고치기보다는 해고를 택한다

영화 ‘포스트’에서 편집장 벤은 뉴욕 타임즈에게 물을 먹은 후 전력을 다해 ‘펜타곤 페이퍼’를 구하려고 한다. 탁월한 인맥과 식견을 가진 기자들이 이를 유출한 연구원을 찾아내고 베트남 전쟁의 진실을 알게 된다. 벤과 기자들은 밤을 새워 페이지 표시도 없는 복사본을 짜 맞추며 기사를 써 내지만, 닉슨 행정부에서 뉴욕 타임즈의 기사를 막고자 ‘펜타곤 페이퍼’를 1급 기밀이라 규정한 뒤 이의 보도를 출판금지 가처분 신청으로 막은 사실을 알게 된다. 천신만고 끝에 기사를 썼는데, 이제 기사를 신문에 못 싣게 된 것이다. 벤은 기사를 빼려면 자신을 해고하라 한다. 캐서린은 그것이 진심임을 알기에 장고에 들어간다. 

자신의 기사가 오보로 판명이 나거나 본의 아니게 엉뚱한 피해자를 만든다면 절차에 따라서 업데이트나 문구 수정은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유가 아닐 때, 기자는 완성된 원고를 고치라는 부당한 압박과는 싸워야 한다. 대통령 수석비서관이 전화로 사정을 한다 해도.

6. 기자는 취재원을 보호하지 동료나 사주를 보호하지 않는다

영화 ‘포스트’에서 가장 긴장감 넘치는 장면은 닉슨 정부의 소송으로 내려진 법원의 결정을 어기고 기사를 내야 하는지를 워싱턴 포스트의 경영진들이 토론하는 장면이다. 특히 그 일은 주식 상장을 1주일 앞두고 하필 캐서린의 생일 파티 날 벌어졌고, 캐서린을 설득하기 위해서 다자 통화를 하면서 벤과 경영 이사들은 각자의 주장을 펼친다.

기자와 편집장은 취재원을 밝히라는 이사들의 압박에도, 같은 회사의 법률 자문에게도 이를 밝히지 않는다. 또한 벤의 아내가 지적했듯이 기사를 실으라는 결정을 캐서린이 내렸을 경우 그녀는 전 재산을 비롯해 모든 것을 다 잃을 수도 있었지만, 벤과 동료는 그런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그런 벤이 야속할 수도 있지만 캐서린은 말한다. “Go, ahead!"

법원의 명령을 어겨서라도 잘못된 전쟁의 진실을 알려야 하는 것이 신문의 마땅한 역할이라는 것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사주의 입맛에 맞는 기사만 내거나, 친구를 보호하기 위해 기사들을 취사선택하게 되면 신문이 죽는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철저히 지킨 사주의 행동원칙은 “소유하되 간섭하지 않는다.”였다.  

7. 기자는 연민을 하더라도 연출을 하지 않는다. 

제임스 브룩스 감독의 88년도 영화 “브로드캐스트 뉴스”는 또 하나의 위대한 원칙을 잘 담고 있는 영화다. “연민은 하되 연출은 하지 않는다”는 특히 방송기자에게 반드시 기억되어야 할 원칙이다.

캔자스의 시골 출신 톰, 보스턴 출신 아론, 네브라스카에서 온 제인은 각각 다른 성장 배경을 가지고 거대한 TV 조직 안에서 함께 일을 하게 된다. 제인은 여성 PD로 자리를 잡고, 아론은 일류 방송 기자가 되지만 톰은 그들보다 뒤처진 상태에서 선의의 경쟁을 하게 된다. 어느 날 톰은 성폭행 피해자의 인터뷰를 감동적으로 해 내며 일약 인기 리포터가 되고, 제인의 마음도 빼앗고 앵커자리까지 차지한다.

경쟁에서 밀려난 아론은 워싱턴을 떠나며 제인에게 말한다. “명심해 제인, 그날 카메라는 한 대 뿐이었어” 제인은 톰의 리포트 테이프를 돌려보다가 그가 인터뷰가 끝난 후 눈물을 흘리는 연기를 하고 이를 편집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를 떠난다.

만약 제인이, 실제 피해자도 아닌 자신의 지인을 출연시켜 피해자 연기를 하게 했던 MBC 김 모 기자의 벤츠 리포트를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 만일 어떤 방송기자가 자기 리포트에서 연출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면, 우리는 그에게 기자라는 이름표를 달기 어려울 것이다. 기자가 아닌 연출을 하는 것이 자기 역할인 PD도, 절대 인터뷰를 연출하진 않는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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