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11일 오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싱가포르 에스플러네이드 인근 다리에서 야경을 감상하고 있다.(사진=뉴시스)
북미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11일 오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싱가포르 에스플러네이드 인근 다리에서 야경을 감상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싱가포르=콘도 다이스케 일본 주간현대 편집위원]  “모든 것을 이겨내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6월 12일 오전 9시 4분, 역사적인 미북회담장인 싱가포르 샌토사섬의 ‘카펠라호텔’. 세계에서 모여든 취재진 앞에 모습을 드러낸 김정은 위원장의 첫마디에는 그의 고뇌가 농축되어 있었다.

김정은 위원장과 그 일행은 ‘자신과 조국의 명운을 걸고’ 싱가포르로 향한 것이다.

미북회담을 앞두고 시진핑 주석을 찾은 김 위원장은 다음과 같은 우려를 표했다고 한다.

"우리는 1953년 한국전 휴전협정 이후 가장 중요한 이 회담에 국가의 명운을 걸고 임하고 있다. 그런데 트럼프 정권의 대응에는 진지함이 부족하다."

전 세계 취재진에 섞여 싱가포르 현지에서 이번 회담을 취재한 나 역시, 회담에 임하는 양국의 온도 차를 느낄 수 있었다.

예를 들면, 트럼프 대통령이 묵었던 샹그릴라 호텔과 김정은 위원장이 묵었던 세인트 레지스 호텔은 불과 600m정도 떨어져 있었지만, 주변의 긴장감은 전혀 달랐다.

실제로 내가 투숙객을 가장하여 호텔 진입로인 앤더슨 로드를 걸어서 샹그릴라 호텔로 들어가기까지 3차례 검문을 받았지만 별 문제 없이 호텔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바로 맞은편에 있는 세인트 레지스 호텔은 입구 300m 앞에서부터 싱가포르 군인들이 출입을 제지하며 나에게 총을 들이댔다. 북한측 관계자 이외는 어느 누구도 들여보내지 않고 있었다.

그럼에도 김정은 위원장은 11일 밤 9시경 몰래 호텔을 빠져나갔다. 싱가포르의 빌라크리쉬난 외교장관과 동행하여, 숙소에서 차로 15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로 향한 것이다.

이 곳은 2009년에 건설된 카지노호텔로서 공중풀이 유명한 싱가포르의 새 명소다.

원산 갈마에 아시아 최대의 리조트 시설의 건설 중 

바로 다음날 아침에 ‘세기의 회담’을 앞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김 위원장이 이곳을 방문해야만 했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 호텔 주인은 트럼프 대통령의 최대 후원자인 ‘카지노 왕’ 셀든 애덜슨이다. 김 위원장으로서는 가능하면 트럼프 대통령의 조력을 얻어 북한 내에 이와 같은 거대 카지노 호텔을 만들고 싶은 것은 아닐까.

사실은 그 건설 공사는 이미 시작되었다. 동해안에 위치한 원산갈마지역에서, 내년 ‘태양절’(4월 15일) 완성을 목표로 100개동 이상의 아시아 최대의 리조트 시설의 건설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미북회담 직전의 분주한 상황에서도 김 위원장이 직접 그곳을 둘러보았다. 추측하건데 이번 미북정상회담에서도 이 문제는 두 정상 사이에서 가장 먼저 언급되었을 것이다.

12일에 열린 미북회담에서 두 정상은 ‘12초간의 악수’을 끝내고, 카펠라 호텔의 자랑인 호화로운 서재로 이동하면서 서로의 통역만 대동한 ‘투샷 회담’을 40분 먼저 진행했다.

이 스타일이야말로 이번 회담을 상징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정상회담은 양국이 간부와 실무 당국자를 다수 배석시켜, 한마디 한마디에 정확을 기하며 발언들을 일일이 기록해 나간다.

그러나 비즈니스 맨 출신의 트럼프 대통령은 이 스타일을 싫어한다. ‘거래는 상대 회사 사장과 일대일로 한다"는 것이 트럼프의 상식이다.

마찬가지로, 외교에 있어서도 "협상은 상대국 정상과 일대일로 진행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은 종래의 외교스타일을 주장하는 국무부의 예산을 30%나 삭감하여 약화시키고, 대신 자신의 외교 스타일과 잘 맞는 CIA(중앙정보부)에 중요 외교를 맡겼다.

이 흐름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이 폼페이오 CIA장관으로, 올 4월에는 그가 외교를 총괄하는 국무장관에 임명된 것이다.

‘아시아의 미래를 결정하는 40분’ 동안 무엇이 논의됐는지는 미북의 두 정상만이 알고 있다. 하지만 추측은 가능하다.

‘북한판 싱가포르 건설’을 꿈꾸며, 귀국길에 오른 김정은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실현한다면 대규모 한미연합훈련을 중지하고, 주한 미군을 철수해도 상관없다고 말했을 것이다.

우선 그 시작으로 한해에 몇 차례나 실시하는 한미 합동 군사훈련을 중단한다. 이는 그 뒤에 진행된 확대회담에서 김 위원장이 요구하여 트럼프 대통령이 승인했다고, 13일 조선중앙통신이 전했다.

즉 김정은은 이 문제를 확대회담에서 다시 한 번 트럼프 대통령에게 요구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승낙함으로써, 그 자리에 참석한 강경파인 볼튼 보좌관이 반대할 여지를 주지 않은 것이다.

그 증거로 후속회담은 폼페이오 장관과 북한 측 실무자가 진행하기로 명기함으로써, 볼튼 보좌관과 강경파가 끼어들지 못하게 했다.

북한 측이 개인 이름을 넣지 않은 것은 어떤 측근이라도 향후, 숙청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김 위원장이 부하들에게 보였기 때문은 아닐까.

할아버지 김일성은 주체사상에 기초하여 조선 노동당을 장악하고 정치의 위업을 달성했다. 아버지 김정일은 선군정치를 바탕으로 조선 인민군을 장악하고 군사적 위업을 쌓았다.

그리고 남은 경제적 위업을 이루게 될 34살의 젊은 지도자는 ‘북한판 싱가포르 건설’을 꿈꾸며, 귀국길에 오른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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