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안= 전규열 기자]‘국가채무와 경제위기(지은이 안일환, 출판사 시공사, 출판연도 시공사)’ 이 책에서 저자는 정부 예산 분야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의 예산에 대한 편성과 집행 그리고 해법 등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모든 현황과 앞으로의 과제 등을 설명할 때는 세밀한 숫자까지 제시하고 있다. 내공이 깊어 보인다.
우리나라의 예산집행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증세가 불가피하다. 미래세대에게 부담을 전가시키는 국채가 아니라 지금 당장은 어렵더라도 현 세대의 조세 부담이 옳은 선택이다.
(P.37) 하이퍼인플레이션(Hyper Inflation)
인플레이션이 악화되어 더 이상 수습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이것이 나타나는 근본적인 이유는 화폐에 대한 신뢰도 하락인데, 국가재정이 약화된 상태에서 화폐발권 차익(Seigniorage)을 지니고 있는 중앙은행이 정부의 요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대규모 화폐발행을 통해 통화량이 급격히 증가할 때 주로 나타난다.
1980년대 브라질,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등 일부 남미국가들은 좌파 정부의 포퓰리즘 정책으로 재정을 방만하게 운영했고, 그 결과 하이퍼인플레이션의 고통을 겪었다. 주로 방만한 복지정책으로 재정적자가 일상화된 결과였다. 2008년 7월 짐바브웨의 물가상승률은 2억%에 달했다. 이들 국가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은 막대한 재정적자 보전을 위한 통화 발행 때문이었다. 지폐의 가치가 없어지자 교환수단으로 사용되지 못하고, 도배지로 사용되기도 했으니 그 폐해가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다. 소비자들은 일상적 거래에서 소량의 물품을 사기 위해 돈으로 가득찬 보따리를 여러 개 들고 다녀야 했다. 이러한 상황은 판매자와 구매자 모두에게 강요되는 거래비용을 높였을 뿐만 아니라 돈을 둘 장소를 구하는 보관비용과 은행까지 나르는 이전비용도 급증시켰다. 그 결과 차라리 장사를 접고 가게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베네수엘라는 상황이 더욱 심각했다. 2010년초 남미의 부국으로 꼽히던 베네수엘라는 국영 석유기업에서 벌어들인 돈을 포퓰리즘성 복지정책의 재원으로 활용하였다. 그러나 2014년 이후 국제유가가 급락했다. 국가수입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석유수입은 크게 감소한 반면 정부는 복지확대와 각종 보조금 지출을 지속하여 막대한 재정적자를 초래하였다. 적자재정을 화폐발행으로 충당함에 따라 2019년에는 인플레이션율이 무려 32만%까지 치솟았다. 무분별한 재정정책으로 인해 베네수엘라 국민들이 겪고 있는 고통은 매우 심각하다. 경제 파탄을 피해 국민들이 대규모로 다른 나라로 이주하여 난민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교사들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학교 밖에서 시위를 벌이는 일이 일상화되면서 공교육은 이미 오래 전에 무너졌다. 상인들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길거리에서 노점상을 하게 되었고, 그 결과 상가 건물들은 빈 채로 방치되고 있다. 베네수엘라의 최저임금은 월 4.5달러 수준으로 한 달 식비의 100분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가 100개월 동안 임금을 꼬박 모아도 가족의 1개월치 음식을 사기 어려울 정도라면 그 심각성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잘못된 재정정책과 국가채무 관리 실패는 국민들에게 뼈아픈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더욱 무서운 점은 국가채무로 인한 경제위기는 단순히 일회성이 아니라는 점이다.
(P.73)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에서 찾은 교훈
1993년 이전까지 일본의 국가채무는 경제성장과 함께 안정적으로 유지되며 GDP의 약 60% 수준을 유지한다. 그러나 1993년 이후 저성장과 비효율적인 재정운영으로 인해 국가채무가 빠르게 증가하기 시작한다. 1998년에 GDP의 100%를 넘어선 이후 2008년에 150%, 2019년에 200%, 그리고 2023년에는 250%까지 상승한다. 지난 30년 동안 일본의 국가채무는 GDP대비 60%에서 250%로 약 네 배 이상 증가한다.
일본은 199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적자재정을 운영해 왔고, 지출과 수입의 차이에 해당하는 부분을 건설공채나 적자보전 국채로 충당하여 왔다. 그런데 재정지출의 증가속도가 수입보다 커, 해가 감에 따라 지출과 수입의 격차는 더 커지게 되어 재정지출과 수입의 추이를 나타내는 그래프가 악어 입처럼 벌어지는 모양을 나타내게 된다. 이는 1990년대 초 거품이 붕괴되는 경제의 경착륙에 따라 법인세와 소득세 등의 세입은 감소한 반면, 사회보장 비용은 급격히 증가한 때문이다. 재정적자의 폭이 커지게 되자 국채 중에 적자 보전 국채(special deficit-financing bond)의 규모가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조세수입은 1990년 62.8조 엔(GDP대비 14.1%)에서 2012년에는 45.3조 엔(GDP 대비 9.6%)이 되었다. 1985년 '플라자 합의'로 1달러당 240엔 대였던 엔화 환율이 2년여 만에 120엔 대로 급격히 절상되었다. 이렇게 재정수입이 줄어든 첫 번째 원인은 경제성장률 하락이다. 1990년부터 2010년까지 20년 동안 연평균 -0.8% 내외의 디플레이션을 경험하면서 성장률의 하락으로 인한 세수기반이 구조적으로 약화된 재정상황을 맞이한다. 1980년 대에 연평균 4.40%의 높은 성장률을 보이던 일본 경제가 1990년 이후 30년간 연평균 성장률이 1.1%로 떨어져 세수기반이 크게 약해졌다.
두번 째는 감세정책이다. 일본은 1994년, 1998년, 1999년 세 차례 감세정책을 실시한 바 있다. 1994년에는 지속된 경기침체를 완화하기 위한 감세정책으로 소득세 관련 공제를 확대하고 세율을 인하하였다. 1990년대 후반에는 아시아 발 외환위기로 경기가 급락하였고 이에 대한 대응조치들도 이루어졌다. 1998년에는 1997년의 소비세 인상(3%->5%)에 대한 대응조치로 법인세율 인하(34.5%->30%) 및 소득세 특별감세(최고세율 50%->37%)를 실시하였다. 소비세의 인상과 함께 이루어진 감세 정책의 결과 간접세 수입은 1990년 165조 엔에서 2012년에 195조 엔으로 증가한 반면, 직접세는 소득세와 법인세의 실적 부진으로 인해 1990년에 45.3조 엔에서 2012년에는 25.9조 엔으로 크게 감소하였다.
한편 재정지출은 늘어만 갔다. 첫째, 급속한 고령화에 따른 사회복지지출의 증가이다. 고령화의 진전에 따라 연금수급자가 1990년 226만 명에서 2019년에는 2,568만 명으로 증가하는 등 사회복지지출이 급증하여, GDP대비 사회복지지출(SOCX Social Expenditure) 비중이 1980년 10.3%에서 2017년에는 22.3%로 상승했다. 일본은 2005년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이후, 65세 이상 인구 비중은 2020년 28.8%, 2023년 29.2%로 상승했다. 이 비중은 2050년에는 약 38%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둘째. 공공사업 지출이 비효율적으로 늘어난 데도 원인이 있다. 1990년 대 초반 경제가 침체에 빠지면서 정부는 경기부양 차원에서 공공사업을 크게 늘렸는데, 이로 인해 사회간접자본(SOC) 관련 자본스톡이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다. 1990년 이후 2013년까지 일본의 건설국채 누적 발행액이 238조 엔을 상회하는 등 공공사업의 확대가 채무증가로 연결되었다. 사회간접자본 등 공공사업이 효과적으로 투자되어 성장에 기여한다면 채무증가 문제가 심각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1990년 이후 일본 정부의 경제회복을 위한 공공투자는 정치적인 영향으로 지방과 농업 분야 등에 많이 투자되였는데, 이는 산업이나 서비스업에 투자하는 것에 비해 성장률 향상에 크게 기여하지 못했다. 정치적 영향을 받은 농어촌 지역의 인프라 건설사업들은 수요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비효율적인 투자가 많았다. 예를 들면, 서로 인접한 지역에 중복되는 공항을 건설한다든지, 인구도 없는 마을에 시설을 설치하는 것 등이다. 일본의 이러한 공공투자를 돈만 많이 들고 실효성은 없는 투자였다는 측면에서 '하얀 코끼리'에 비유한다.
세번 째는 지방이전 재원의 확대를 들 수 있다. 일본의 지방교부세율은 1954년에 소득세•주세의 19.9%, 법인세의 20%를 기점으로 지속적으로 상승하여 소득세•법인세•주세의 32%, 소비세의 29.5%, 담배소비세 수입액의 25%로 확대되었다. 지방이전 재원이 확대된 결과 지방정부는 대체로 건전재정을 유지할 수 있었으나 중앙정부의 지출부담은 크게 증가하였다.
1990년에는 사회복지지출이 11.6조 엔으로 총재정지출 66.2조 엔의 17.5%를 차지했는데 2023년에는 36.9조 엔으로 3배 이상 늘어 총재정지출 114.4조 엔의 32.3%를 차지하게 되었다. 국채 원리금 상환비용 (national debt service)도 1990년 14.3조 엔에서 2023년 25.3조 엔으로 크게 증가 하였다. 수입 측면에서 보면 1990년도에는 총 62조엔 중 대부분이 세금이다. 건설국채에 의한 수입은 5.6조 엔으로 전체의 8% 수준에 불과했고 당시 적자보전용 국채는 발행되지 않았다. 이러한 재정수입 구조가 2023년에 크게 변화하였다. 전체 수입 114조 엔 중 조세는 69.4조 엔으로 60%에 불과하고 적자보전용 국채가 29.1조 엔으로 전체의 25%나 차지한다. 이자지출 예산은 2024년에 9.7조 엔으로 전체 예산의 8.6%, 2025년도 예산에서 10.5조 엔으로 9.1%를 차지한다. 이미 일본의 재정리스크와 국채 공급부담이 국채 금리의 인상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다.
(P.93)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의 국가채무는 2025년 6월 37조 달러를 넘어섰다. 이는 중국(18.7조 달러), 독일(4.9조 달러), 일본 (4.4조 달러), 영국(3.7조 달러), 인도(4.3조 달러) 등 경제규모가 큰 5개 나라의 GDP 합산을 초과하는 엄청난 규모이다. 최근에는 평균 4~5개월마다 1조달러(약 1,400조원)씩 늘어나고 있다. 2008년까지 누적된 미국 국가채무가 10조 달러 수준이었는데, 10년 뒤인 2017년에는 20조 달러, 그로부터 5년 뒤인 2022년에 30조 달러, 다시 3년 후인 2025년에 37조 달러 수준으로 급격히 늘었다.
국방비 비중이 높은 것도 미국 재정의 특징 중 하나이다. 미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국방비를 지출한다. 2022년 미국의 국방비는 8,770억달러(약 1,150조원)에 달했다. 이 사실을 가리켜 미국을 천조국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미국 국방비 규모는 전 세계 국방비의 39%에 달하며, 국방비 지출 2위에서 11위까지 10개 나라의 국방비를 합친 것보다 많다. 2위인 중국의 국방비(2,920억달러)도 미국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2024년 국방비는 8,500억 달러인데 이자지출이 8,810억 달러로 국방비를 추월하고 있다.
미국 의회예산처(CBO Congressionel Budget Office)의 분석에 따르면, 2025년도 미국의 연방 지출은 7조 달러(GDP의 23.3%)인데 2034년까지 GDP의 24.4%까지 증가할 전망이고, 재정수입은 2025년도에 5.2조달러로 GDP의 17.1%인데 2035년에는 GDP의 18.3%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어 향후에도 재정적자가 지속되어 국가채무가 늘어날 것으로 보았다. 그 이후에도 재정적자가 계속되어 2050년에는 미국의 국가부채 비율이 GDP 대비 195%까지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이자 지출 증가와 함께 인플레이션 및 차입 비용 상승의 악순환을 초래할 수 있으며, 결국 경제성장을 둔화시키고 재정위기를 유발할 위험이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P.119) 한국은 어떠한가?
한국의 국가채무(D1)는 2024년 결산 기준 1,175.2조 원으로 GDP대비 46.1%이다. IMF 경제위기 이전인 1997년에는 60.3조 원이던 것이 2011년 420.5조 원, 2016년 626.9조 원, 2023년 1,126.8조 원으로 1997년에 비해 18배 이상 증가하였다. 같은 기간 GDP는 506.3조 원에서 2,401.2조 원으로 4.7배 증가했지만, 국가채무의 증가 속도가 경제성장보다 훨씬 빠르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한국은 IMF기준으로 선진국 가운데 부채비율의 상승속도가 빠른 편이다. 국가채무 1,175.2조 원 중 중앙정부채무 비중이 97.1%이고. 지방정부 순채무의 비중은 2.9%이다. 향후 조세 등 국민부담으로 상환해야 하는 적자성 채무가 815.4조 원으로 69.4%를 차지하고, 대응자산이 있어 재정의 추가 부담이 없는 금융성 채무가 359.8조 원으로 30.6%를 차지한다. 적자성 채무의 비중은 2003년 36.2%. 2008년 42.9%, 2013년 51.7%, 2017년 56.8%. 2024년 69.4%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적자성 채무는 일반회계 적자국채, 공적자금 상환, 지방정부 순채무 등으로 구성된다. 정부가 직접 갚아야 하는 적자성 채무의 비중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국가의 재정 건전성이 점점 악화되고 있다는 신호이다
(우리 앞에 놓인 위험 요인)
1. 경제성장률이 떨어지고 있다
1963년에서 1991년까지 연평균 9.5%의 놀라운 성장을 실현하던 한국 경제가 1992년부터 2011년까지는 연평균 5.1%의 성장률을 보였고, 2012년 이후부터는 연평균 2%대를 기록하고 있다. 더구나, 2025년의 경우 주요 기관들이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1% 이내로 전망하고 있는 상황이다. 1990년대 이후의 잠재성장률도 다른 선진국에 비해 높은 수준이었으나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향후에도 생산가능인구의 감소 등에 따라 낮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성장률의 감소는 정부세입의 감소로 이어져 재정적자를 확대시키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실제로 한국의 국세수입은 2022년 395조 9,000억원에서 2023년 344조 1,000억원, 2024년 336조 5000억원으로 감소했다. 경제성장률의 감소는 세입기반을 악화시켜 재정적자를 확대시키는 요인이 된다. 또한 성장률의 감소는 GDP대비 국가채무의 비율을 높이게 되어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위험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2. 인구구조가 바뀌었다
저출생과 고령화로 인한 인구구조 변화는 생산가능인구 감소와 소비 및 투자 위축을 초래하여 경제성장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는 결과적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된다. 또한 고령인구 관련 재정지출 수요가 증가하며 재정수지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동시에 납세 인구도 줄어 국가재정 수입 측면에서도 부담을 가중시킨다. OECD 국가들과 비교할 때, 한국의 고령화 속도는 상대적으로 매우 빠르며 인구구조 또한 단기간 내에 급격한 변화를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고령화는 2018년에 고령사회(노인인구 비율 14% 이상)에 진입한 데 이어, 2025년에는 초고령사회(노인인구 비율 20% 이상)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저출생과 고령화로 인해 2020년을 정점으로 전체 인구는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반면,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은 2050년에 약 40% 수준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3. 연금•건강보험 등 복지지출이 증가하고 있다
고령인구 비율의 증가는 연금지출과 요양보호•의료비 지출 등 복지 지출 소요의 증가를 가져온다. 우리나라의 인구 구조 변화는 일본과 유사한 추이를 보이고 있으며, 2050년 경에는 고령인구 비율이 일본보다 더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연금과 의료 등 복지지출에 대한 재정 압박이 심화되면서 복지제도의 지속 가능성 악화가 우려된다. 복지 분야 지출액은 2018년 144조 6,000억 원에서 2024년 242조 9,000억 원으로 67.9% 늘어났다. 같은 기간 총조세액은 2018년 293조 6,000억 원에서 2024년 367조 4,000억 원으로 25% 확대되었다. 즉, 주요 수입이 25% 증가한 것에 비해 복지지출은 67.9%나 급증하여 복지지출의 상승 속도가 훨씬 빠르고, 이로 인해 재정수지 적자 요인이 크게 확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4. 지출의 숙명이 된 기후변화
우리나라는 2016년 파리협정을 비준한 이후 2050년까지 탄소중립사회로 전환하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2020년 10월에는 2050 탄소중립을 공식 선언하였으며, 같은 해 12월에는 이를 실 현하기 위한 2050 탄소중립 추진 전략을 확정•발표하였다. 2021년 9월에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기본법이 제정되어 2050년 탄소중립을 법적으로 명문화하였고, 2030년까지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를 2018년 대비 40% 감축하는 것으로 설정하고 있다.
5. 지출구조의 경직화
한국의 재정지출은 복지지출뿐 아니라 지방 이전재원과 국채 이자 지출 등 의무지출도 꾸준히 늘어나 재정 경직성이 심화되고 있다. 재정지출은 의무지출과 재량지출로 나뉜다. 의무지출은 법에 따라 정부가 반드시 지출해야 하는 비용을 뜻하며, 재량지출은 정부가 재정상황에 맞춰 조정할 수 있는 지출을 말한다. 의무지출에는 지방 교부세,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같은 법정지출, 국제조약이나 국제법에 따른 지출, 국채 및 차입금 이자지출 등이 포함된다. 복지 분야의 의무지출에는 4대 공적연금, 국민기초생활보장급여, 기초연금, 건강보험 등이 포함된다. 2023년 본예산 기준으로 의무지출은 348.2조 원, 재량지출은 308.7조 원이다. 총 재정지출 656.9조 원에서 의무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53.3%, 재량지출은 46.7%이다. 향후 노인인구 증가 등으로 법정 복지지출이 늘어나면서 의무지출 비중도 계속 커질 전망이다. 이는 매년 법적 요건에 따라 자동적으로 지급해야 하는 지출이 증가함에 따라 재정지출 구조가 점차 경직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경직화된 재정지출 구조는 정부가 지출을 줄일 수 있는 여력이 줄어든다는 뜻이며, 재정수입이 함께 증가하지 않는 한 재정적자가 확대될 위험이 커진다는 것을 뜻한다.
6. 포퓰리즘은 파산의 원인
차입 시 가장 중요한 원칙은 "투자를 위한 차입이어야 하며, 소비를 위한 차입은 지양해야 한다(Borrow to invest, not to consume)"는 것이다. 소비 목적의 부채 확대는 더 큰 부채로 이어져 결국 파산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남미 국가들의 사례에서 보듯, 정치권이 포퓰리즘에 빠져 무분별한 재정정책을 추진하면 국가재정이 크게 훼손된다.
(P.161) 지속가능성을 위한 페이고
재정의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세입증가 와 재정지출 통제 가능성이 핵심 변수로 작용한다. 이 중에서도 특히 재정지출의 증가를 통제할 수 있는지 여부가 가장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 그 제도적 장치가 재정준척(Fiscal rules)이다.
재정준칙은 국가채무, 재정수지, 재정지출 등의 총량적인 재정지표에 대하여 구체적인 목표 수치를 동반한 재정운영 목표를 법제화 하는 재정운영 정책을 의미한다. 재정은 위기 시 경제의 최후의 보루(last resort)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OECD 38개 회원국 중 대한민국과 튀르키예를 제외한 대부분이 이미 재정준칙을 운용 중이다.(왜 한국은 도입하지 않았나? 이상한 일이다. 의무지출 확대를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서는 미국에서 활용하고 있는 "페이고(PAYGO: Pay-as-you-go)" 제도의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의무지출을 수반하는 법안을 도입할 경우, 이에 상응하는 재원조달 방안을 함께 제시하도록 의무화함으로써 재정건전성을 유지하려는 장치이다. 즉, "법정지출 증가 또는 세입감소를 내용으로 하는 새로운 입법을 할 때는 반드시 이에 대응되는 세입증가나 다른 법정지출 감소 등 재원조달 방안이 동시에 입법되도록 의무화함으로써 재정수지에 미치는 영향이 상쇄되도록 하는 수입지출 균형"을 의미한다. 페이고 제도는 일반적으로 재정적자를 유발하거나 증대시키는 재정입법 또는 흑자를 감소시키는 법안의 입법을 막으려는 수단이다. 의무지출은 일단 입법이 되면 그에 따른 재정지출 규모를 재정당국이 조정하기 어려운 성격을 지니기 때문에 재정건전성 측면에서는 중점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P.188) 증세 논의
고령화로 인한 복지지출의 증대, 국가채무의 증가와 이자율 인상에 의한 이자부담의 증가 등 필수적인 의무지출의 증가를 감안하면 세입확보 방안의 강구 없이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국 경제는 기술향상과 자본축적 수준이 고도 성장기를 지나 저성장 기조로 들어 가고 있어 높은 성장률을 기대하기 어렵다. 저성장 기조가 불가피하다고 보고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유지할 해법을 찾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미국, 일본 등과 함께 OECD 국가 중 조세부담률과 국민부담률이 낮은 그룹에 속한다. 조세부담률은 낮고 GDP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높은 국가는 현세대의 지출을 현세대의 부담인 조세에 의존하지 않고, 국채발행을 통해 재원을 조달함으로써 후세대에 부담을 넘기고 있는 국가들이다. 복지지출의 확대와 세대 간 부담의 공평성 등을 감안하면, 미래세대가 부담하는 국채보다는 현세대가 부담하는 조세에 의한 재원확보에 노력해야 한다. 세입을 확보하기 위하여는 부가가치세를 포함한 다양한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2021년 기준,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소득세 비중은 6.1%로 OECD 평균인 8.3%보다 낮은 수준이다. 미국은 11.2%, 일본은 6.2%, 독일은 10.5%, 프랑스는 9.5% 수준이다. 소비세 비중도 주요 선진국에 비해 낮은 편이다. 부가가치세의 경우 한국의 세율은 10%로, 2022년 기준 OECD 평균 세율인 19.3%에 비해 절반 수준이다. 영국과 프랑스는 각각 20%, 독일은 19%다. OECD는 한국경제보고서에서 고령화로 인한 재정지출 압력에 대응하기 위해 세입확대 방안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필수적이지만 증세 논의는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이슈이다. 국가를 유지하는 합법적 재원이 세금이지만, 개인의 재산에서 강제로 징수한다는 점에서 약탈적이다. 때문에 증세에 대한 조세저항은 매우 크고, 분배(증세)냐 성장(감세)이냐는 이념을 떠나 역사적으로 세금 인상은 정치권력의 무덤이었다. 저출생, 초고령사회에서 비롯될 생산가능인구의 감소, 복지비용의 증가는 이미 당면한 현실 과제임을 인식하고 재정 불균형을 미리 점검하고 대비해야 한다. 저출생, 고령화의 영향이 아직 본격화되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재정수지는 악화되고 있다. 심각한 조세저항과 세대 간 형평 논쟁이 무서워서 회피할수록 현재 세대는 더 많은 혜택을 누리고, 미래 세대는 더 많은 부담을 지게 될 것이다.
(P.193) 오직 납세자의 돈
"이 근본적인 진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국가에는 국민이 직접 벌어들인 돈 말고는 어떤 재원도 없습니다. 정부가 더 많은 지출을 하려면, 결국은 여러분의 저축을 빌리거나 여러분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누군가가 대신 내주겠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발상입니다. 그 '다른 누군가'는 바로 여러분 자신입니다. '공공의 돈'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존재하는 것은 오직 납세자의 돈뿐입니다."
영국의 수상이었던 마거릿 대처가 한 발언으로 재정운영에 대한 전통적인 생각을 대표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재정을 공공의 돈으로 인식하게 되면 '공유지의 비극'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정치가 상대방을 라이벌(Rival)로 생각해서 정책을 놓고 경쟁한다면, 인기가 없더라도 한정된 예산을 효율적으로 쓸려는 유인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가 상대방을 적(Enemy)으로 생각한다면 정권을 잡기 위해서 재정을 표를 얻는 수단으로 활용할 것이고, 국민들에게 유익해도 인기가 없는 정책은 추진하지 않게 될 것이다. 실제로 많은 국가들에서 정치적 갈등이 커지면서 포퓰리즘적 재정운영이 보편화되고, 이로 인해 적자재정의 운영과 국가채무의 증가로 인한 위험이 커지고 있다. 채무는 미래의 소득을 현재로 당겨써서 투자와 소비를 촉진하는 역할을 하므로 성장을 가능하게 할 수도 있지만, 비생산적인 재정지출로 인한 과도한 국가채무는 금융위기와 버블을 초래할 수도 있다.
글 김도진 법무법인 세종 고문(전 IBK기업은행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