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마(페루)=김수찬 선임기자] 페루 수도 리마에서 관광가이드로 일하고 있는 호세 판도(38)는 요즘 한국 기업에 부쩍 관심이 많다. 기자를 처음 만난 날에도 ‘포스코’가 몇 개월 전 리마 신시가지에 사무실을 개소했다며 호들갑을 떨며 자기 나름의 의미까지 부여했다. 하지만 기자가 확인한 결과, 포스코E&C가 오래 전 이곳에 지점을 개설한 것을 호세가 오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이날 한국인 단체관광객들을 맞이하다보니 한국 기업 관련 소식을 전해주고 싶었는데 시차가 다소 있었던 모양이다.
대학 졸업 후 어렵게 ‘국가고시’를 거쳐 관광가이드 자격증을 딴 호세는 5개 국어를 능통하게 구사하는 20년 경력의 베테랑 투어가이드이다. 4년 전부터 국내 여행사의 페루 현지 회사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는 만큼 한국 기업들의 페루 진출을 적극 환영하는 ‘투자유치 홍보대사’를 자임하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인플레가 극심하고, 브라질은 부패가 심해 투자하기가 마땅치 않다. 하지만 페루 화폐인 솔은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안정적인 화폐로 인정받고 있다. 동 은 등 광물자원도 풍부하다. 의료 및 약품 관련 시장도 성장성이 크다”
실제 최근 한국 기업들의 페루시장의 문을 두드리는 노크가 잦아지고 있다. 특히 K-방산 기업들의 진출이 눈에 띄게 활발해지고 있다. 페루를 중남미 시장 진출 교두로 삼으며 K-방산기업들이 페루 육해공군 분야 진출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
HD현대중공업은 지난해 4월 페루 국영 시마조선소와 약 6406억원 규모의 페루 해군 함정 4척 현지 공동건조 계약을 체결했다. 이 사업은 한국 기업이 남미 국가와 진행한 해군 함정 사업 가운데 최대 규모로 평가된다.
이를 위해 리마에 현지 지사를 설립해 기자재 공급과 기술 지원 체계를 강화하고 있으며 향후 추가 함정 발주 시 우선 협상을 진행할 수 있는 기반도 마련했다.페루와 잠수함 공동개발사업도 가시화하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지난 4월 페루 리마에서 열린 방산전시회에 참가, KF-21, FA-50, 소형 무장헬기(LAH) 등 주력 기종 등을 전시하며 페루 정부가 추진중인 전투기 도입사업의 기회를 엿보고 있다. KAI는 지난해 7월 FA-50 부품 물량 공동생산 업무협약, KF-21 부품물량 공동생산 협약을 체결했다.
현대로템은 지상 무기 분야에서 페루 육군과 협력 관계를 강화하는 등 페루는 K-방산의 중남미 핵심 시장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호세의 주장과 달리, 페루도 여타 남미국가와 마찬가지로 정치 불안이 기업 투자의 발목을 잡고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지난 10월 정치적 불안정으로 대통령이 거듭 교체되는 페루에서 디나 볼루아르테 대통령이 의회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탄핵당했다. 이로써 페루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관심을 모았던 볼루아르테 대통령은 지난 2018년 이후 7년여 만에 탄핵으로 중도에 하차한 7번째 대통령이 됐다.
상황이 이쯤되니 호세는 손가락으로 꼽아가며 전임 대통령의 이름을 겨우 겨우 기억해냈다. “나는 그래도 정치에 관심이 있어 알지만, 많은 페루 국민들은 전임 대통령 이름을 다 알기 힘들 것이다”
심각한 정치적 갈등과 이로 인한 국민 불만은 최소한 내년 5월 대선때 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리마 시내 곳곳에는 담벼락에 내년 대선을 겨냥한 정당들의 선거 캠페인 홍보 문구가 커다랗게 적혀 유권자들의 표심을 겨냥하고 있다. 리마 아르마스광장 산마르틴광장 등 주요 광장에는 반정부시위에 대비해 대통령궁 리마시청사 등에는 경찰과 군병력이 깔려 있어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었다. 경찰은 일부 시민들의 광장진입을 막아서기도 했다.
정치적 갈등은 정부 대 정부 사업으로 간주돼 온 K-방산 프로젝트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 아무쪼록 페루 정국이 하루빨리 안정을 되찾아 K-방산의 성공적 투자로 이어져 페루 경제도 회복국면으로 접어들길 바란다. 이와함께 마추비추로 상징되는 페루 관광산업의 최선봉에서 뛰고 있는 호세의 소박한 꿈이 이뤄질 수 있도록 페루 정치 지도자들이 정신을 차렸으면 한다.
“앞으로 10년 가량 더 관광가이드로 일하고 조금 일찍 은퇴해 그동안 부어온 개인연금으로 아내와 함께 전원생활을 하고 싶다. 지금 12살 아들과 5살 딸이 학교를 마칠 때까지만 뒷바라지하면 이후 큰 돈 들어갈 일이 없어 연금으로 충분히 생활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