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밥심'으로 산다면, 프랑스인은 '빵심'으로 산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실제로 프랑스 전역에 빵집은 3만 5천여 개에 달한다.(사진=홍소라)
한국인이 '밥심'으로 산다면, 프랑스인은 '빵심'으로 산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실제로 프랑스 전역에 빵집은 3만 5천여 개에 달한다.(사진=홍소라)

[뉴시안=홍소라 파리 통신원] 한국인의 삶에 ‘밥’은 거의 필수 요소나 다름 없다.

그것이 쌀밥이건 잡곡밥이건 어쨌든 밥은 대체 불가능한 무엇이다.

하지만 쌀을 주식으로 하지 않는 프랑스인에게 밥이란 아시아 식당에 가면 먹을 수 있는 것, 때로 기발한 샐러드를 해 먹을 때 사용할 수 있는 것, 또는 달콤한 디저트(리오래 riz au lait : 우유와 설탕을 끓이고 여기에 쌀을 익혀 만든다) 중 하나 정도에 불과하다.

한국인이 '밥심'으로 산다면, 프랑스인은 '빵심'으로 산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실제로 프랑스 전역에 빵집은 3만 5천여 개에 달한다. 주민 1800명 당 빵집이 하나씩 있는 것.

파리에는 1100여 개의 빵집이 매일 새벽부터 바게트와 크루아상, 초콜릿 빵 등을 판매하고 있다.

참고로 한국에는 1만6500여 개의 빵집이 있어 주민  3010명 당 빵집이 하나씩 있는 셈이 된다.

프랑스에서 ‘빵집’ 하면 연상되는 이미지가 몇 개 있다.

아침과 저녁 시간에 바게트를 사려는 사람들의 줄이 빵집 밖으로까지 나와 있는 쭉 늘어선 모습, 그리고 그들에게 안쓰러운 눈빛을 보내며 빵을 사고 남을 잔돈 몇 푼을 구걸하는 이들, 투명한 유리 진열대 안에 정렬되어 있는 여러 종류의 빵과 과자들,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줄 안에서 진열된 빵과 과자, 케이크를 바라보며 무엇을 고를까 심각하게 고민하는 사람들.

가장 호평을 받는 곳 중 하나는 파리 11구 베제 파티스리

그렇게 진열된 빵을 보며 그 달달한 버터 냄새를 계속 맡고 있노라면, 그저 바게트 하나만 사러 온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 유혹에 빠지지 않고는 못 견디게 되어 버린다.

그리고 드디어 자기 차례가 되어 빵집 주인이 인사를 건네면, 기다리는 시간 동안 몇 번은 바뀌었을지 모를 그 주문을 곧바로 입 밖으로 외치는 손님들의 모습까지. 프랑스의 어떤 빵집에서든 볼 수 있는 정겨운 풍경이랄까.

물론 프랑스의 빵집도 제빵사의 취향과 능력, 그리고 유행에 따라 풍경이 조금씩 달라지기는 한다.

요즘에는 글루텐 프리(gluten-free)나 계란 및 유제품을 아예 사용하지 않는 비건 제과점도 쉽사리 찾아볼 수 있다.

프랑스인들의 추억을 자극하는 빵, 과자, 케이크들은 세련된 매장의 고급스럽거나 독특한 것들이기보다는 그저 이전부터 있어 왔고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있을 그런 것들이다.(사진=홍소라)
프랑스인들의 추억을 자극하는 빵, 과자, 케이크들은 세련된 매장의 고급스럽거나 독특한 것들이기보다는 그저 이전부터 있어 왔고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있을 그런 것들이다.(사진=홍소라)

가장 호평을 받는 곳 중 하나는 파리 11구의 ‘VG patisserie (베제 파티스리)’로, 맛도 뛰어난데 모양과 색감마저 훌륭한 케이크를 만들기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가하면 ‘l’Eclair de génie (레클레어 드 제니)’라는 프랜차이즈는 프랑스인들이 사랑하는 과자 중 하나인 에클레어만 전문적으로 다루면서 이름을 알렸다.

파리 4구의 ‘Legay Choc (르 게이 쇼크)’라는, 동성애자가 운영하는 한 빵집은 남성 성기 모양의 바게트를 만들어 파는 것으로 유명해지기도 했다.

이런 곳들이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발걸음을 멈추게 만들기는 하지만,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속 마들렌처럼 프랑스인들의 추억을 자극하는 빵, 과자, 케이크들은 세련된 매장의 고급스럽거나 독특한 것들이기보다는 그저 이전부터 있어 왔고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있을 그런 것들이다.

이를테면 바게트, 크루아상, 초콜렛빵같이 프랑스인의 일상에서 빠질 수 없는 것들.

과자 중에는 에클레어, 를리지외즈, 각종 타르트, 슈케트, 파리 브레스트, 밀푀유 정도가 있겠다.

동네 빵집부터 고급 과자점까지 예외 없이 한 자리를 차지하는지라, 이들은 매년 제빵사 및 파티쉐들이 장인으로서의 자신감을 걸고 출전하는 각종 대회들의 종목이 되곤 한다.

예를 들어 파리 시에서는 1994년부터 매년 바게트 콩쿠르를 개최하여, 그 해 우승자가 1년 동안 대통령 관저인 엘리제 궁에 바게트를 납품하도록 하고 있다.

2018년에는 파리 14구의 ‘Boulangerie 2M’에서 그 영광을 가져 갔다.

오랜 시간을 프랑스인과 함께 한 먹거리에는 프랑스의 역사와 문화가 잔뜩 묻어 있기 마련이다.

오늘 <뉴시안>의 기사에서는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과자 중 가장 유명하고 친숙한 에클레어, 를리지외즈, 밀푀유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길게 구운 부드러운 슈에 커스터드 크림(초콜렛, 커피, 바닐라, 밤, 카라멜, 각종 과일 등)을 채운 에클레어(éclair)는 1850년 전까지는 ‘공작부인의 빵’ 혹은 ‘작은 공작부인’이라 불렸다.(사진출처=midi capital)
에클레어(éclair)는 1850년 전까지는 ‘공작부인의 빵’ 혹은 ‘작은 공작부인’이라 불렸다.(사진출처=midi capital)

길게 구운 부드러운 슈에 커스터드 크림(초콜렛, 커피, 바닐라, 밤, 카라멜, 각종 과일 등)을 채운 에클레어(éclair)는 1850년 전까지는 ‘공작부인의 빵’ 혹은 ‘작은 공작부인’이라 불렸다.

이 공작부인은 16세기 프랑스의 왕비이자 섭정이었던 카트린 드 메디치(Catherine de Médicis, 1519-1589)와 연관을 맺고 있다.

카트린이 1540년 헨리 2세와의 혼인을 위해 피렌체에서 프랑스로 오면서 에클레어의 기본이 되는 반죽 레시피도 함께 따라왔기 때문이다.

당시 이 반죽의 이름은 ‘뜨거운 반죽’이라는 뜻의 ‘파타쇼 (pâte à chaud)’였다.

그러던 것이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이 레시피가 점차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반죽의 이름이 바뀌어 오늘날의 ‘슈 반죽(pâte à choux)’이 된다.

금욕적인 ‘수녀’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는 를리지외즈

이 반죽 안에 크림을 넣고 윗 표면에 설탕 코팅을 한 것은 1830년 경으로, 프랑스의 전설적인 천재 파티쉐 앙토낭 카렘(Antonin Carème)이었다.

이렇게 점차 오늘날의 에클레어의 형태를 갖추어 갔으나, 에클레어라는 이름이 나오기까지는 50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1850년 리옹(Lyon)에서 등장한 이 디저트에는 에클레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그 어원이 어떻게 된 것인지, 누가 명명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가장 많이 알려진 설로는 <너무 맛있어서 번개(éclair, 에클레어)처럼 순식간에 다 먹어 버린다>는 뜻에서 나왔다는 것과,  <겉면의 설탕 코팅이 참으로 반짝거려 번개같다>는 데에서 나왔다는 것이 있다.

에클레어와 같이 슈 반죽에 커스터드 크림을 넣어 만든 를리지외즈(religieuse)는 그 달콤함과 입안 가득 채우는 크림이 주는 감각적인 만족감과는 반대로 금욕적인 ‘수녀’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어 더욱 눈길이 간다.

를리지외즈(religieuse)는 '수녀'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어 더욱 눈길이 간다. 사진은 초콜렛 를리지외즈.(사진 출처=Shutterstock)
를리지외즈(religieuse)는 '수녀'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어 더욱 눈길이 간다. 사진은 초콜렛 를리지외즈.(사진 출처=Shutterstock)

두 개의 동그란 슈크림으로 되어 있는데, 아래의 것이 조금 더 크고 둘 사이를 크림으로 장식해, 마치 수녀복을 입은 여성을 연상시키는 모양을 하고 있다.

초콜렛과 커피 맛이 대표적이다.

1856년, 그러니까 프랑스에 에클레어와 함께 슈 반죽의 시대가 도래했을 시절, 나폴리 출신의 유명 파티쉐  프라스카티(Frascati)가 만들었다.

당시 프라스카티는 파리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과자점을 운영하고 있었고, 를리지외즈를 선보이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에클레어와 레시피가 거의 같은데, 만드는 과정이 보다 복잡하다는 면에서 파티쉐들의 선호도는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프랑스의 동네 빵집에서 를리지외즈가 점차 사라지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반면 안젤리나(Angelina)처럼 인지도가 있는 고급 과자점에서는 보다 많은 장식이 가미된 를리지외즈를 찾아볼 수 있다.

밀푀유의 창시자는 파리 7구의 박 가 (rue du Bac)에서 과자점을 운영하던 파티쉐 아돌프 쇠뇨(Adolphe Seugnot)로 알려져 있다.(사진출처=lecercledesgourmands.com)
밀푀유의 창시자는 파리 7구의 박 가 (rue du Bac)에서 과자점을 운영하던 파티쉐 아돌프 쇠뇨(Adolphe Seugnot)로 알려져 있다.(사진출처=lecercledesgourmands.com)

밀푀유( mille-feuille)는 프랑스어로 ‘천 겹’이라는 뜻이다. 세 겹의 퍼프 페이스트리 사이에 커스터드 크림을 채우고, 위에는 설탕으로 코팅을 한 프랑스의 대표적인 과자 중 하나다.

나폴레옹은 워털루 전투 전날 밀푀유를 먹었을까?

영미권에서는 ‘나폴레옹’이라고 부른다. 나폴레옹이 이 디저트를 너무 좋아해서 워털루 전투 전날 밤에 밀푀유를 먹다가 소화불량에 걸렸다는 설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워털루 전쟁은 1815년, 이 과자가 생겨난 것은 1867년이라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 밀푀유와 레시피가 비슷한 과자가 1806년에 등장했다가 금방 잊혀졌음을 감안하면 나폴레옹의 일화가 사실일 가능성은 아직도 조금은 남아 있다.

밀푀유의 창시자는 파리 7구의 박 가 (rue du Bac)에서 과자점을 운영하던 파티쉐 아돌프 쇠뇨(Adolphe Seugnot)로 알려져 있다.

쇠뇨는 구웠을 때 층층이 겹을 이루는 퍼프 페이스트리의 대가였다.

밀푀유는 손님들의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하루에 100여 개씩 팔려 나갔다. 밀푀유의 성공에 힘입어 더욱 더 알려지기 시작한 그 거리는 2018년 오늘, 아주 괜찮은 과자점들이 모여 있는, 명실공히 파리에서 가장 달달한 거리 중 하나가 되었다.

색다른 밀푀유들이 궁금하다면, 쇠뇨의 과자점이 있던 그 거리에 가 볼 것을 추천한다.

에클레르와 밀푀유는 2018년 오늘날까지 바바오럼(baba au rhum), 초콜렛 무스, 퐁당 오 쇼콜라(fondant au chocolat), 파리브레스트 (Paris-brest) 및 오페라(Opéra) 등과 함께 프랑스인이 가장 사랑하는 과자 중 하나로 남아 있다.

몇 세기가 지나도록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프랑스인들에게 ‘프루스트의 마들렌’으로 남아 있을 이들 과자를 보며 우리의 마들렌은 어디에 있을까 잠시 고민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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