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시 국립 미테랑 도서관과 베르시 공원을 잇는 ‘시몬 드 보부아르 육교' 근처 노천 바의 야경.(사진출처='비와맑음' 블로그)
파리시 국립 미테랑 도서관과 베르시 공원을 잇는 ‘시몬 드 보부아르 육교' 근처 노천 바의 야경.(사진출처='비와맑음' 블로그)

[뉴시안=홍소라 파리 통신원] 프랑스의 수도, 파리. 그 어마어마한 명성에 비하여 파리는 작다.

105.4 km2. 서울의 6분의 1밖에 안 되는 이곳에 224만 명의 파리지앵과 연간 3천220만 명의 관광객이 파리의 길거리를 거닐고 있다.

너무나도 유명한 샹젤리제 거리에서부터 총 길이 5.5 m밖에 되지 않는 드그레 가(rue des Degrés)까지 사람들의 발걸음이 닿지 않는 길은 거의 없다.

6천여 개에 달하는 파리의 거리는 사회에 일정한 공헌을 한 인물을 기린다는 의미로, 사후에 그 사람의 이름을 따 명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역사적인 사건이나 해당 지역 공동체에 의미 있는 일, 주요 장소나 근처 도시의 이름을 따르기도 한다.

2018년 현재 4300여 개의 거리가 실제 인물의 이름에 따라 명명되어 있는데, 그 중 95%에 해당하는 4000여 개가 남성의 이름을, 5%에 해당하는 300여 개가 여성의 이름을 따르고 있다.

거리 전체의 2.6%에 해당하는 수치다. 2011년부터 파리 시청에서 거리에 여성의 이름을 붙이는 프로젝트를 계속하고 있음에도 불구, 엄청난 불균형이 아닐 수 없다.

현재까지 파리 시는 140개 거리의 이름을 여성 위인의 것으로 바꾸었고, 이 작업은 앞으로도 당분간 계속될 예정이다.

파리 시가 거리의 이름을 헌정한 여성들은 크게 예술가와 운동가, 지식인, 성인으로 나뉜다. 그 중 몇몇을 만나 보자.

먼저 작가이자 철학자, 여성해방운동가이자 사회이론가, 하지만 사르트르와의 인연으로 더욱 잘 알려진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 1908-1986).

파리13구에 그의 이름을 딴 광장이 있다. 이 광장은 국립 미테랑 도서관과 베르시 공원을 잇는 ‘시몬 드 보부아르 육교(passerelle Simone-de-Beauvoir)’와 연결되어 있다.

이 육교 중간에서 바라보는 세느강은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노트르담 성당 근처의 퐁뇌프 다리나 예술의 다리(pont des arts)에서 보는 것과는 또 다른 광경을 선사한다.

게다가 베르시 공원을 가로지르면 프랑스 누벨바그의 출발점이 되었던 시네마테크가 모습을 드러낸다.

프랑스에 존재하는 모든 지식의 보고인 미테랑 도서관과 프랑스 영화 예술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시네마테크를 이어 주는 것이 바로 ‘시몬 드 보부아르 육교’인 것이다.

보부아르가 행동하는 지성이자 지금까지도 적잖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던 인물임을 생각해 보면, 이 육교를 그에게 헌정한 것은 정말이지 탁월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두 번째로 소개할 인물은 마거리트 유르스나르(Marguerite Yourcenar, 1903-1987).

한국에는 크게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프랑스 전역에서 잔다르크, 조르쥬 상드와 함께 가장 많은 거리가 그의 이름을 갖고 있다.

파리시는 1995년, 에펠탑과 샹 드 마르스(Champ de Mars) 근처에 위치한, 15구의 작은 길(Allée Marguerite Yourcenar)을 그에게 헌정했다.

유르스나르는 벨기에에서 태어나 프랑스어로 작품 활동을 한 작가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47년, 미국 국적을 취득하였다.

20세기 프랑스 문단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1981년에는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아카데미 프랑세즈 (Académie française)의 회원으로 선출됨으로써 프랑스 페미니즘의 역사를 새로 쓴 작가이기도 하다.

프랑스 한림원(翰林院)이라고도 불리는 아카데미 프랑세즈는 세계적으로도 권위 있는 학술기관으로, 그 회원은 ‘불멸의 지성 (les immortels)’이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유르스나르 이전까지 프랑스의 아카데미들은 규정에 ‘여성의 피선거권 없음’이 명시되어 있지 않음에도 불구, ‘불멸의 지성’에 여성을 포함시키는 것을 의도적으로 피해 왔다.

프랑스 수학 및 과학 분야의 최고 권위 연구 기관인 아카데미 데 시앙스(Académie des Sciences)가 위대한 과학자 마리 퀴리를 두 번의 선거 끝에 회원으로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이런 배경에서 유르스나르가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정회원이 된 것은 말 그대로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었다.

여성 없는 역사를 지속할 수 없음을 공개적으로 선포하고,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를 인정하는 상징적이고 정치적인 사건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파리에는 테라스가 많다. 테라스에서 햇살을 맞으며 커피나 와인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어쩐지 그들의 시간은 다른 사람들보다 천천히 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테라스는 아담한 광장 하나를 가득 메웠던 파리 14구 한켠에 숨어 있는 보물같은 곳이었다.

느긋하게 삶의 여유를 즐기는 이들로 가득찬 그 광장은 플로라 트리스탕(Flora Tristan, 1803-1844)의 이름을 달고 있어 더욱 인상적이었다.

플로라 트리스탕은 몰락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인쇄 공장에 다니며 노동자의 삶을 살았다.

18살에 결혼을 했으나 불행한 결혼 생활에서 벗어나고자 셋째를 임신한 상태에서 두 아들을 데리고 집을 나온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들이 받는 고통을 경험하고 관찰하며 여성운동가로 거듭난 그는 노동운동가이기도 했다.

1840년에 출간된 <런던 산책>에서 트리스탕은 런던 노동자들의 처참한 현실을 묘사하고 비판했고, 1843년에는 <노동자 동맹>이라는 잡지를 발간했다.

이 ‘동맹’을 실현하기 위해 프랑스 전역을 돌아다니며 사회의 약자인 노동자와 여성의 삶을 위해 강행을 하다 1844년 열병으로 인한 뇌수축으로 사망한다.

그를 추적하던 남편의 총에 맞고도 살아 남아 자신의 소신을 위해 살아가다 격정적으로 삶을 마감한 트리스탕과 같은 이가 있었기에 오늘의 파리는 테라스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이리라.

마지막으로 로사 보뇌르(Rosa Bonheur, 1822-1899)를 소개할까 한다.

로사 보뇌르의 작품 '마시장'. 그의 이름을 딴 거리는 파리 7구와 맞닿은 15구의 한 켠에 자리하고 있다. 동물을 즐겨 그린 화가이자, 프랑스의 레지옹 도뇌르 (Légion d’Honneur) 훈장을 받은 최초의 여성이기도 하다.
로사 보뇌르의 작품 '마시장'. 그의 이름을 딴 거리는 파리 7구와 맞닿은 15구의 한 켠에 자리하고 있다. 프랑스의 레지옹 도뇌르 (Légion d’Honneur) 훈장을 받은 최초의 여성이기도 하다.(캔버스에 유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그의 이름을 딴 거리는 파리 7구와 맞닿은 15구의 한 켠에 자리하고 있다. 그의 그림이 자연과 인간 사이의 화해에 대한 염원을 담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을 만큼 동물을 즐겨 그린 화가이자, 프랑스의 레지옹 도뇌르 (Légion d’Honneur) 훈장을 받은 최초의 여성이기도 하다.

프랑스 최고 권위의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는 1802년 나폴레옹 1세가 전장에서 공적을 세운 군인에게 수여할 목적으로 제정했다가, 점차 사회의 각 분야에서 공로가 인정되는 사람에게 프랑스의 대통령이 수여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수여 이후에 명예를 지키지 못할 경우 취소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할리우드의 영화 제작자 하비 웨인스타인이 성추행 스캔들로, 패션 디자이너 존 갈리아노가 유대인에 대한 인종차별 발언으로 인해 서훈을 박탈당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지휘자 정명훈, 이창동 감독 등이 이 훈장을 받은 바 있다.

오늘날 로사 보뇌르는 동성애자의 아이콘으로 더욱 유명하다.

짧은 머리에 바지를 입고 시가를 입에 문 여성의 모습은 19세기에는 상상하기 힘든 것이었다.

실제로 보뇌르는 바지를 입거나 말을 타기 위해 파리시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이 허가장은 6개월에 한 번씩 갱신해야 했다. 또한 자신의 삶에 보다 안정성을 더해 줄 결혼이라는 제도를 선택하지 않고 두 명의 여성과 함께 살았다.

다음 번에 파리 시 거리에 남게 될 여성은 현재로서는 지난 1월에 사망한 프랑스 갈 (France Gall, 1979-2018)이 유력하다.

파리 시 상원의원 셀린 불래 에스페로니에 (Céline Boulay-Esperonnier)는 프랑스의 국민 가수였던 그에 대해 "세대를 막론하고 우리 모두의 삶의 일부분이며, 영원한 존재"라며 갈에 대한 오마쥬를 파리 시가 헌정하는 것에 적극 찬성했다.

이렇게 파리는 도시에 사람들의 역사를 차곡차곡 쌓아가며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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