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후 일본사회에 만연하는 ‘후킨신가리’ 후폭풍
재난 후 일본사회에 만연하는 ‘후킨신가리’ 후폭풍
  • 김경철 도쿄 통신원
  • 승인 2018.07.17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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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일본 폭우 후 SNS를 중심으로 일부 유명인에 대한 공격과 비난 이어져
- 남의 웃음조차 ‘불경스럽다’고 여기는 '공감피로' 형성
7일 일본 오카야마(岡山)현 구라시키(倉敷)시에서 지붕에 대피한 주민들이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 이번 폭우로 심각한 피해를 입은 규슈지역과 중부지방은 7월 5일부터 72시간 동안 평년 7월 한 달 동안의 강수량보다 3배 이상 많은 폭우가 집중적으로 쏟아졌다. (사진=뉴시스)
7일 일본 오카야마(岡山)현 구라시키(倉敷)시에서 지붕에 대피한 주민들이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 이번 폭우로 심각한 피해를 입은 규슈지역과 중부지방은 7월 5일부터 72시간 동안 평년 7월 한 달 동안의 강수량보다 3배 이상 많은 폭우가 집중적으로 쏟아졌다. (사진=뉴시스)

[뉴시안=김경철 도쿄 통신원] 2011년의 동일본대지진 이후, 최대의 인명피해를 가져 온 ‘서일본 폭우 재해’.  

이번 폭우로 심각한 피해를 입은 규슈지역과 중부지방은 7월 5일부터 72시간 동안 평년 7월 한 달 동안의 강수량보다 3배 이상 많은 폭우가 집중적으로 쏟아졌다.

원인은 태평양상의 고기압과 중국대륙 상공의 저기압이 각각 정체하면서 장마전선이 빠져나가지 못한 채 오랫동안 일본 상공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으로 지목된다.

이에 더해 폭우 직전 일본을 빠져나간 제 7호 태풍(쁘라삐룬)이 따뜻하고 습한 수중기의 길목을 넓혀주었기 때문에 이곳에 모여 있던 수증기에 의해 기록적인 강수량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집계된 피해를 보면, 히로시마 현과 오카야마 현을 비롯한 14개현에서 200여명이 넘는 사상자(7월 17일 현재 사망자 219명 실종자 21명)와 7천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했으며, 3만여채가 넘는 주택이 침수와 파손 등의 피해를 입었다.

현재도 23만 가구가 단수와 도로 유실 등 라이프라인이 단절된 채 생활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착한 일 하고 있다고 광고하고 싶은 거냐?”

일본 정부는 10일 총리실 산하에 ‘비상재해대책본부’를 설치하고 20억엔의 예산을 투입하여 이재민을 위한 물자지원 등의 구호활동에 나섰다.

14일에는 이번 폭우를 ‘특정 비상 재해’로 지정하고 이재민들에게 행정상의 편의를 제공하는 방침을 정하는 한편, 피해가 극심한 지역을 ‘격심재해지역’으로 정하여 복구활동에 대한 국고 지원율을 현행의 60~70%에서 80~90%까지 높일 것을 밝혔다.   

일본 국민들의 온정의 손길도 이어지고 있다. 일본 전역에서 피해지역을 돕기 위한 모금운동이 벌어지고 있으며, 자원봉사자들도 쇄도하고 있다.

일본 언론에 의하면, 3일 연휴 기간인 7월 14일~16일의 3일간, 일본 전역에서 적어도 3만 3천명 이상의 자원봉사자가 피해지역을 찾았다고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SNS를 중심으로 이번 폭우를 둘러싸고 일부 유명인들에 대한 공격과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

인기모델인 야마다 유씨는 7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장마도 끝났으니 여름 필수품을~”이라는 코멘트와 함께 자신이 모델로 기용된 스프레이형 썬블럭 제품의 사진을 올렸다가 네티즌들로부터 “뉴스도 안보나?” “자숙할 줄 모른다”등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인기 코메디언 와타나베 나오미씨는 자신의 SNS에 피해상황을 공유하자 “착한 일 하고 있다고 광고하고 싶은 거냐?”라는 지적을 받았다고 밝혔다.

인기 유투버인 비트박서 히카킨씨는 피해주민을 위해 기부금을 보내는 방법을 설명하고 자신 역시 100만엔의 기부금을 보냈지만, “재해를 이용해 이름을 팔기 위한 행동이다” “부자라고 자량하나”등의 악플이 쇄도했다고 한다.

이 밖에 방송국을 향해서도 “버라이어티와 드라마를 중단하라” “광고를 자제하라” “취재로 피해주민을 괴롭히지 말라” 등등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이처럼 심각한 재난 이후, 특정인의 말이나 행동에 대해 네티즌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며 공격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신조어로 ‘후킨신가리(不謹慎狩り=불근신 사냥)가 있다.

후킨신(不謹慎 불근신)이란 ’자숙하지 못한다‘ ’불경스럽다‘ 등의 뜻으로, 사회적인 불행 앞에서 자숙하는 분위기에 동조하지 못하고 ’왠지 즐거워 보이는‘ 코멘트를 발견하면 인터넷상에서 비난을 쏟아내는 행위다.

“분위기를 파악하라”는 무언의 압력

지난 2016년의 구마모토 대지진에서도 ‘후킨신가리’가 크게 화제가 되었다.

당시 구마모토시에 거주하는 한 여배우는 자신의 블로그에 지진으로 인해 전멸된 자택 사진을 올리고 텐트에서 생활하게 된 가족의 일상을 공개하자, 네티즌들로부터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이 돌아왔다.

“힘든 사람이 당신뿐인가?” “스스로를 불쌍하다고 어필하는 게 짜증난다” 등의 악플이 쇄도했다.

전 일본대표 피겨스케이트 선수인 안도 미키씨는 지진 발생 다음날, 약혼자인 하비엘 페르난데스 선수의 생일을 축하하는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려 네티즌들로부터 “배려가 너무 없다” “지진으로 울고 있는 사람도 있는데 너무한다” “지진에도 자기 어필만 한다” 등의 융단폭격을 당했다.

니가타세이료대학(新潟青陵大)의 우스이 마후미 교수는 일본사회에서 만연하는 ‘후킨신가리’의 원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인간은 재난 현장이나 상황에 대한 보도 등을 접하면서 이재민들에게 공감하면서 심리적으로 우울한 상태가 된다. 이것이 심해지면 남이 웃거나 평소처럼 행동하기만 해도 화가 나기 시작한다. 이 심리 상태를 ‘공감피로’라고 하는데, 남의 웃음조차 ‘불경스럽다’고 여기게 되는 것이다” 

재난에 대한 매스컴의 과도한 뉴스와 사회적인 자숙 분위기가 “분위기를 파악하라”는 무언의 압력으로 국민들을 몰아넣고, 심리적 피로감이 발생한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타인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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