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남동부 니스에서 장애인만 출입할 수 있는 해변에서 휠체어를 몰고 언 여성들이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사진=뉴시스)
프랑스 남동부 니스에서 장애인만 출입할 수 있는 해변에서 휠체어를 몰고 언 여성들이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사진=뉴시스)

[뉴시안=홍소라 파리 통신원] 프랑스 대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탓에 한국에 상당한 애정과 관심을 지니고 있는 프랑스인들을 상대적으로 많이 만나는 편이다.

이들은 그저 한국어 구사를 넘어 우리나라의 역사, 정치, 사회, 문화에 있어서 일정 수준 이상의 깊이 있는 지식을 갖추고 있다. 이미 한국에도 여러 번 다녀 왔다. 말 그대로 ‘친한파’랄까 ?

이 프랑스 친구들 중에는 한국에서 직장을 잡고 정착해서 살고 싶어 하는 이들이 많은데, 또 그 중 대부분이 한국에서의 삶을 꿈꾸다가도 중간에 그 꿈을 접어 버린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휴가의 부재’라는 점이다.

 "한 달의 휴가를 즐기기 위해 11개월을 일한다"

프랑스의 최소 법정 휴가일이 연간 30일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한국의 경우는 15일이고, 이마저도 제대로 지켜지는 곳이 그리 많지 않다. 따라서 어릴 때부터 여름에 적게는 몇 주에서, 많게는 두 달까지 바캉스를 떠났다가 돌아오는 사이클에 익숙해진 프랑스인들로서는 아무리 한국이 좋아도 선뜻 한국행을 추진할 수가 없는 모양이다.

실제로 프랑스인들에게 있어 여름 휴가는 일상에서 완전히 벗어나 휴식이나 여행, 스포츠, 독서 등으로 재충전을 하는 소중한 기간이다. "프랑스 인들은 한 달의 휴가를 즐기기 위해 11개월을 일한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실제로 소득이 줄어들더라도 가정의 바캉스 예산은 크게 줄어들지 않는다. 보통 8월 첫째 주에 바캉스를 떠나는 이들이 많아 이 시기에 파리에서 마주치는 이들은 관광객일 가능성이 높다.
프랑스의 여름 휴가는 ‘그랑드 바캉스 (Grandes vacances)’라 불린다. 직역하면 ‘큰 방학’이라는 뜻. 이 그랑드 바캉스의 역사는 193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36년 6월 5일, 반 파시즘 인민전선(Front populaire) 내각의 수반이었던 레옹 블룸(Léon Blum)이 발표한 유급휴가제 법안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6월 11일 하원 투표에 부쳐졌고, 곧바로 통과되었다. 반대는 단 한 표에 불과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인 6월 17일, 상원 투표에서도 통과되면서 그해 여름부터 적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프랑스에서 보통 한 법안이 상정되어 통과되는 데까지 평균 7개월 6일이 소요되는 것을 감안하면 그랑드 바캉스는 엄청난 속도로 프랑스에 안착했다.

공무원들은 이미 1853년부터 2주의 유급휴가 법적으로 인정받아

그 배경에는 당시 내각의 수장이었던 레옹 블룸이 1919년부터 노동자 전체에 대한 유급 휴가의 필요성을 강력히 피력하고 있었다는 점, 국제사회에서 유급휴가가 이미 당연한 제도로 인식되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해 5월부터 파업과 시위에 돌입한 2백만에 달하는 노동자들의 분노에 정부가 즉각적으로 화답할 필요가 있었다는 점이 있다. 노동 시간을 주 40시간으로 하는 법안도 바로 이때 성난 시민들을 달래기 위해 곧바로 통과되었다.

1936년 툴루즈의 한 광장에 모여 노동 조건 향상을 요구하는 시민들 (사진출처=툴루즈 시청)
1936년 툴루즈의 한 광장에 모여 노동 조건 향상을 요구하는 시민들 (사진출처=툴루즈 시청)

프랑스 전역에서 ‘쉴 권리’, ‘주당 40시간 노동’, ‘노인에게는 연금을, 젊은이에게는 일자리를’ 등의 구호가 거리를 가득 메웠다. 실제로 1935년까지만 해도 휴가를 떠나는 프랑스인은 열 명 중 하나에 불과했다. 이러한 특혜를 누리던 이들이 돈이 많은 부르주아층이나 공무원이었음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사실일 것이다.

그때까지 유급휴가에 인색했던 프랑스에서도 공무원들은 이미 1853년부터 2주의 유급휴가를 법적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1936년 시민의 힘으로 쟁취한 ‘모두를 위한 바캉스’ 기간은 2주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해 여름의 공기는 이전의 그것과는 많이 달랐다. 60만 명의 프랑스인들이 해변이나 시골로 떠났다.

3백만 명의 아동이 휴가의 기쁨에서 배제될 듯

당시 자동차는 일부 부자들만이 소유할 수 있는 것이었으므로 대부분은 기차, 혹은 자전거로 일상에서부터 멀리 떠나갔다. 1937년에는 휴가를 떠난 이들의 수가 170만 명에 달했다. 급작스레 시작된 그랑드 바캉스는 재빨리 프랑스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자리잡았다.

2주로 시작된 그랑드 바캉스의 기간은 점차 길어진다. 1956년에는 3주로, 1969년에는 4주로 증가한다. 1974년, 경제 위기가 시작되었을 때도 바캉스를 떠나는 프랑스인들의 비율은 오히려 계속 높아졌다. 1974년에는 절반을 넘어섰고, 1994년에는 62%의 프랑스인이 휴가를 떠났다. 1982년에는  유급휴가의 기간이 5주로 늘어나 오늘에 이른다. 브르타뉴, 코트아쥐르, 랑그독, 루아르 지방은 프랑스인이 가장 사랑하는 휴가지이다.

그런데 과연 이 그랑드 바캉스는 실제로도 ‘모두를 위한 바캉스’일까 ? 여전히 빈부의 차이는 크다. 프랑스의 모든 가정을 소득을 기준으로 네 등급으로 나누었을 때, 최고소득층의 90% 이상이 휴가를 떠나는 반면, 최저소득층에서는 40% 미만만이 휴가를 즐길 수 있다고 응답했다.

1930년대 기차로 휴가를 떠나는 프랑스인의 얼굴에 웃음이 활짝 번진다.출처 : CCAS(Caisse centrale d’activités sociales) 역사 아카이브
1930년대 기차로 휴가를 떠나는 프랑스인의 얼굴에 웃음이 활짝 번진다.(사진출처=CCAS 역사 아카이브)

특히 농업종사자, 공장의 노동자, 구직자 등이 휴가를 즐기는 비율은 현저히 낮았다. 특히 바캉스를 즐기지 못하는 아이들의 문제는 매년 여름이 되면 프랑스 사회가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것 중 하나이다.  2018년 현재, 3백만 명의 아동이 휴가의 기쁨에서 배제될 것으로 보인다.

‘모두를 위한 바캉스’를 실현하기 위하여 정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민간 단위에서 여러 지원 정책 및 프로그램이 가동되고 있으나 프랑스 역시 여전히 ‘휴가의 파라다이스’와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불구, 프랑스에서는 그랑드 바캉스가 말 그대로 '모두'를 위한 바캉스가 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는 이루어져 있다. 매년 7월 중순이면 개장하는 ‘파리 플라주’는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연합뉴스>는 지난 7월, 올 여름에 휴가를 떠나는 한국인은 36%에 달한다고 전했다.

이는 작년에 비하여 10% 상승한 비율이지만 노동자들의 당연한 권리로서의 유급휴가가 정착되었다고 보기는 아직 힘들다. 1953년 제정된 근로기준법에서 처음으로 유급휴일에 대한 규정이 입안되었음을 감안하면, 한국의 유급휴가의 역사는 아직 짧다. 언젠가, 하지만 하루빨리 ‘모두가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한국이 찾아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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