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거리를 경호원과 함께 달리는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사르코지는 선거비용 관련 부정 등 다수의 심각한 혐의에도 불구,여전히 프랑스의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사진=AFP)
파리 거리를 경호원과 함께 달리는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사르코지는 선거비용 관련 부정 등 다수의 심각한 혐의에도 불구,여전히 프랑스의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사진=AFP)

[뉴시안=홍소라 파리 통신원 ] 2018년 8월 24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항고심이 선고되었다. 징역 25년. 프랑스의 각 언론에서도 해당 소식을 비중있게 다루었다.

프랑스가 1789년 대혁명을 거치며 왕비의 목을 단두대에서 잘라 버린 나라로 유명하기는 하지만, 정작 오늘날까지도 권력자에 대한 견제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

실제로 1958년 10월 4일 시작된 제5공화국 이후 부패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선고는 공금 유용 혐의를 받은 자크 시락 (Jacques Chirac)에 대한 2년 징역형이 유일하다.

자크 시락은 파리 시장에 재직 중이던 지난 1983년부터 1998년 사이에 자신이 이끌던 정당인 공화국연합(RPR)의 당직자 21명을 파리 시 공무원 신분으로 위장시켰다.

"우리가 한국을 따라가려면 한참 멀었다"

이들의 월급으로 수백 만 유로의 파리 시 재정이 유용되었다. 이 혐의는 자크 시락의 대통령 재임 시절 드러났으나, 면책 특권으로 처벌받지 않았다.

자크 시락의 대통령 임기는 1995년에서 2007년까지였다. 결국 2011년에야 자크 시락은 2년 징역형을 선고받지만 집행유예가 있었기 때문에 실제로 옥살이를 하지는 않았다.

이런 프랑스이기에  이전 최고 권력자에 대한 징역 25년이라는 중형 소식은 놀랍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박근혜 전 대통령 재판 소식을 담은 기사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반응은 물론 개개인의 정치성향이나 신념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우리가 한국을 따라가려면 한참 멀었다"라던가  "한국을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는 식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프랑스에서 정치인에 대한 재판은 거의 열리지 않거나, 열린다고 하더라도 상당히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대중의 기억 속으로 사라지기 십상이다.

바로 그 좋은 예가 사르코지의 ‘비그말리온(Bygmalion) 사건’이다. 정확히는 ‘사르코지 대선 캠페인 자금 사건’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사르코지는 프랑스 제5공화국의 여섯 번째 대통령으로 그 재임기간은 2007년부터 2012년까지였다. 해당 사건은 사르코지가 연임을 노리며 대선에 뛰어든 2012년 봄으로 거슬러 올라 간다.

비그말리온은 한국으로 치면 경기도에 해당하는 일 드 프랑스(Île-de-France) 지역의 모(Meaux) 시의 시장인 장 프랑수아 코페(Jean-François Copé)가 2008년에 만든 일종의 마케팅 회사다.

2012년 대선 당시, 공화당의 전신인 대중운동연합(UMP)을 주요 고객으로 하고 있었다.

대중운동연합은 사르코지가 속해 있던 정당으로 프랑스 정치 지형 속에서 중도우파 혹은 우파에 해당하고 있었다.

당시 비그말리온은 성장을 거듭하고 있었고, 대중운동연합은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비그말리온은 대중운동연합 선거운동 운영비 영수액을 실제보다 높여 발행했다. 이렇게 신고된 선거 운동 비용은 1천8백만 유로였다.

"사르코지는 비그말리온 사건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문제는 대중운동연합의 1차 대선 캠페인 사용액이 1천7백만 유로 가량으로 보고되었고, 그 중 47.5%에 달하는 8백만 유로가 환불이 가능한 상태였던 데에 있다.

프랑스 1차 대선에서는 5% 이상의 지지를 받은 후보는 선거운동에 사용한 금액의 최대 4.75%를 환불받게 된다. 또한 2차 대선에서는 선거운동액의 최대 47.5%를 환불받을 수 있다.

결국 2012년 대선에서 대중운동연합이 이런 꼼수를 이용하여 상당한 금액을 챙기려고 했던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해 5월 2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재판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프랑스 언론은 최근 박 전 대통령에 대한 2심 판결 결과를 크게 보도하며 한국 사회의 사법정의 구현 움직임에 대해 높은 평가를 내렸다.(사진=뉴시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해 5월 2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재판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프랑스 언론은 최근 박 전 대통령에 대한 2심 판결 결과를 크게 보도하며 한국 사회의 사법정의 구현 움직임에 대해 높은 평가를 내렸다.(사진=뉴시스)

이 사건에 대하여  비그말리온 회사의 대표였던 코페는 자신은 해당 사건과 관련이 없다며 무죄를 주장하였으나 결국 당 지도부의 요청에 따라 당직에서 사퇴한다.

2012년 대선 당시 사르코지 측 캠프 부대표로 활동했던 제롬 라브릴루(Jérôme Lavrilleux) 또한 비그말리온 사건에 연루되어 있었음이 밝혀져 대중운동연합으로부터 제명당할 위기에 닥치고, 2014년 10월, 스스로 대중운동연합에서 탈퇴한다.

라브릴루는 2015년 10월 13일 <롭스(L’obs)>와의 인터뷰에서 사르코지가 비그말리온 사건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이제껏 한 번도 공개하지 않은 사실을 이야기하고자한다"며  "사르코지는 다른 사람들에게 책임을 돌리며 자신만 빠져 나가고 있으며, 자신의 잘못을 받아들일 줄 모른다"고 지도자로서의 자질이 부족함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2015년 9월 초에 진행된 경찰 조사에서 사르코지는 비그말리온과 대중운동연합 사이에 허위 거래 시스템이 존재했다는 것을 알았으나 이는 코페와 비그말리온 사이의 일이라고 자신의 책임을 회피했다.

여기에 대하여 라브릴루는 "사르코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여러 논란에도 불구, 2018년 5월 재판이 열렸으나 사르코지는 자신을 해당 사건과 관련지어 회부하는 것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였고, 이것이 받아들여질 것인가 여부는 2018년 9월 20일에나 밝혀질 예정이다.

조사 착수 이후 벌써 3년이 지난 사건임을 감안하면 지지부진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가 하면, 한국 언론에서도 다루었던 바와 같이 2007년 대선 과정에서는 리비아의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Mouammar Kadhafi)로부터 수백만 유로의 선거 자금을 불법으로 동원하기도 했다.

프랑스 혁명의 이념은 실천적 노력 없이는 공염불

또한 같은 시기 로레알 그룹의 상속녀 릴리안 베탕쿠르에게서도 불법 정치 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이 불거지자 관련 재판에서 판사에게 "대선에서 당선되면 고위직을 주겠다 "고 제안하여 매수했다.

이 판사와 원활하게 연락하기 위하여 일명 대포폰이라 불리는 차명폰을 사용하기도 했다.

이러한 다수의 심각한 혐의에도 불구, 사르코지는 여전히 프랑스의 거리를 활보하고 있으며, 프랑스 언론은 여전히 사르코지의 스포츠, 사르코지 가족의 행보 등을 다루고 있다.

스스로 정치에서 물러난다고 선언했으나 여전히 권력자로서의 지위를 누리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를 멀리서 바라보는 프랑스인들의 눈에 한국은 ‘법 앞에서 만인은 평등하다’는 당연한 정의이념이 보다 지켜지는 곳으로 비쳐지는 듯 하다.

‘자유, 평등 그리고 박애’라는 프랑스의 이념이자 세계인이 공감하는 가치는 가까워지기 위해 사회 전체가 끊임 없이 노력하지 않으면 결국 허구에 지나지 않는 공허한 외침에 불과한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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