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안= 이태영 기자]국회가 17일부터 728조 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증·감액 심사에 들어가면서 첫 ‘이재명 정부 예산’ 심사가 본격화되고 있다.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산하 예산안조정소위원회가 세부 사업별 항목에 대한 조정 작업을 시작하면, 그 결과는 전체회의를 거쳐 본회의 최종안으로 이어진다. 문제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여야가 핵심 정책 방향을 두고 강하게 충돌하고 있어 법정 처리 시한인 12월 2일을 지키기 어렵다는 전망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 쟁점1: ‘확장재정 vs 재정건전성’의 정면 대립
이번 예산안의 기본 성격은 정부와 여당이 제시한 확장재정 기조다. 민주당은 경기 둔화와 지역 활력 저하, 저출생 심화를 고려하면 적극적 재정 투입이 필수라는 입장이다. IMF 역시 한국의 단기 경기 대응에 확장적 재정이 필요하다고 언급한 점을 강조하며 원안 사수에 나서는 분위기다.
반면 국민의힘은 내년도 적자국채가 110조 원 늘어난다는 점을 지적하며 강하게 제동을 걸고 있다. 현금성 지원 확대는 ‘포퓰리즘’이며, 중·장기 재정 건전성을 악화시키는 결정이라는 주장이다. 사실상 양측이 예산 철학 차원에서 충돌하는 구조다.
이미 상임위 단계에서부터 검찰 특수활동비(특활비) 삭감 등 주요 사업을 두고 여야 간 이견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 쟁점2: 지역사랑상품권—효과 논란의 중심
여야 충돌의 최전선에는 지역사랑상품권이 있다. 정부는 1조1500억 원의 국비를 편성해 올해보다 1500억 원을 늘렸다. 지역 상권 소비를 견인하는 핵심 민생 예산이라는 설명이다.
민주당은 ‘지역경제 마중물’이라며 방어에 나서는 반면, 국민의힘은 “지자체가 상품권을 대량 발행하면 5% 할인분을 결국 세금으로 메우는 구조”라며 비판하고 있다. 즉 실제 지역경제 순증효과보다 단기 소비 촉진 정도에 그친다는 지적이다. 국민의힘은 이 예산을 통째로 감액해 지역 산업·기업 지원등 ‘구조적 성장 사업’으로 전환하자고 맞서고 있다.
# 쟁점3: 150조 투입 ‘국민성장펀드’—미래 투자인가, 위험 노출인가
두 번째 충돌 지점은 정부가 향후 5년간 150조 원 규모로 조성하겠다고 밝힌 국민성장펀드다. 내년도 예산안에는 1조 원이 출자금으로 편성돼 있다. AI·바이오·반도체 등 6대 신산업에 대한 전략투자 기구를 공공·민간이 함께 만든다는 발상이다.
민주당은 “장기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대표 투자 예산”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공적 기금, 특히 국민연금이 후순위 출자에 동원될 경우 국민 노후 자금이 고위험 영역에 노출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또한 기존 정책펀드와 중복되거나 수익률 관리가 어렵다는 문제도 제기된다.
# 예산안 처리 시한—올해도 ‘지연’ 시나리오 현실화 우려
정치적 긴장이 높아진 데에는 예산 외적 요인도 영향을 미친다. ‘대장동 개발 비리 항소 포기 논란’ 등 정치 쟁점이 격화되면서 협상 분위기가 악화된 것이다. 여야 대치가 해소되지 않으면 지난해처럼 올해도 법정 시한 내 처리 실패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국회 안팎에서 나온다.
만약 소위 단계에서 핵심 쟁점을 봉합하지 못하면, ‘패키지 딜’이나 최후의 원내대표 협상이 불가피해진다. 특정 사업을 일부 조정하거나 조건부로 운영하는 방식이 거론되지만, 서로의 정치적 부담이 커 합의 지점은 좁다.
# 무엇이 문제인가—정치·정책 충돌이 만든 구조적 난제
이번 예산 심사의 본질은 단순히 특정 사업의 증감 문제가 아니다.
정부·여당은 경기 대응과 미래산업 투자라는 ‘정책 우선순위’를 근거로 확장재정을 정당화하고, 야당은 재정 건전성과 선심성 예산 차단을 앞세워 대규모 지출에 제동을 걸고 있다.
이 과정에서 특정 사업(지역화폐·정책펀드)이 사실상 정치적 상징으로 부각되면서 예산 기술적 논의보다 정치적 공방이 앞서는 구조가 형성됐다.
# 협상 열릴까…핵심은 ‘설계의 정밀함’
예산안의 최종 향방은 결국 핵심 사업들의 설계·감시·평가 체계가 얼마나 정교하게 제시되느냐에 달려 있다.
정치권은 지역화폐는 성과 평가 기준을 명확하게 하고, 국민성장펀드는 위험관리·운용 독립성·민간 매칭 구조를 구체화하며, 재정건전성 논란은 지출 구조조정 로드맵을 제시함으로써 완화할 수 있다고 짚었다..
국회 예결위가 ‘검증’이라는 본연의 기능을 회복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여야가 정치적 균형점을 찾지 못한다면, 예산안은 또다시 법정 시한을 넘길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최소한의 정책적 합의를 도출한다면, 이번 예산안은 이재명 정부의 첫 해 재정 방향을 가늠할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