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안= 이태영 기자]한국경제인협회가 공정거래위원회에 공정거래법 운영과 관련한 제도 개선 과제 24건을 제출했다고 18일 밝혔다. 개선안은 ▲기업집단 규제체계 개편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기준 조정 ▲형벌체계 합리화 ▲산업·금융 시너지 제고 등 네 가지 축으로 구성됐다.
# “동일인, 자연인 아닌 법인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경협은 먼저 기업집단 규제체계 개선을 통해 ‘동일인 지정 방식’을 현행 자연인·법인 병행 방식에서 법인 중심 체계로 전면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기업집단을 규정할 때 동일인을 먼저 지정한 뒤, 동일인과 관련자(특수관계인)가 지배하는 계열사를 그룹에 포함시키는 구조다. 동일인은 자연인 또는 법인으로 규정돼 있다.
그러나 한경협은 “대기업집단 다수가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고 의사결정 또한 이사회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자연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하는 방식은 1980년대 제도 도입 당시와 달리 현재 지배구조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장기적으로는 동일인 지정제도의 단계적 폐지까지 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동일인 관련자 범위가 최대 6촌 혈족·4촌 인척까지 확대될 수 있어 실질 지배와 무관한 친족까지 규제 대상이 되는 것은 과도하다며, 실질 가족인 직계존비속·배우자 중심으로 범위를 대폭 축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공시대상기업집단, GDP 연동해 기준 현실화”
두 번째 과제로 한경협은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 기준의 현실화를 제안했다.
현재 자산총액 5조원 이상 기업집단을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지정하고 있으나, 이 기준은 2009년 설정된 뒤 15년 동안 고정돼 경제 규모 확대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경협은 “공시대상기업집단 계열사 중 약 78%가 중소기업 규모”라며 “경제적 영향력이 미미한 기업까지 포괄적으로 규제 대상이 되는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은 2024년부터 GDP 연동 방식으로 지정 기준이 매년 조정되는 반면, 공시대상기업집단은 고정 금액 기준을 유지해 제도 간 불균형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공정위가 올해 업무계획에서 검토했던 것처럼 ‘절대금액’에서 ‘경제 규모 대비 상대적 기준’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동일인 형사 책임 완화… 단순 누락은 행정질서벌로”
한경협은 형벌체계의 합리화도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기업집단 지정자료 제출을 거부하거나 허위 제출할 경우 2년 이하 징역 또는 1억5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실무에서는 공정위가 회사가 아닌 동일인(자연인)에게 자료 제출을 요구하는 사례가 많다.
그러나 동일인이 6촌 혈족 등 폭넓은 특수관계인의 재산·투자 내역을 실질적으로 모두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일부 누락만으로도 형사 책임을 지게 되는 구조는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한경협은 단순 착오나 행정상 누락에 대해서는 행정질서벌로 전환하고, 자료 제출의 법적 책임 주체를 기업집단의 대표 법인으로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 “시대 변화 따라 제도도 진화해야”
이상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공정거래법은 시장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지키는 핵심 법제이지만, 시대 변화에 맞춰 제도가 함께 진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글로벌 경쟁이 심화된 상황에서 기업의 합리적 경영활동까지 제약하는 규제는 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며 “공정위가 제도를 합리적으로 개선해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