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워렌버핏은 또 다시 가상화폐를 강력히 비판했다. (사진=뉴시스)

[뉴시안=송범선 기자] 100조원 재산가, 워렌 버핏이 가상화폐(암호화폐)에 대해 또 다시 비판했다. 버핏은 비트코인을 왜 이렇게 싫어하는 것일까?

몇 년 째 이어지는 ‘버핏의 비판’에 맞서, 비트코인 투자자들의 버핏에 대한 공격도 거세지고 있다. 이들은 버핏이 블록체인으로 발생하는 ‘미래 과학’에 대해 잘 모른다는 점을 내세우며 가상화폐를 옹호하고 있다.

버핏은 지난 4월 28일(현지시간) 버핏의 고향 오마하에서 가진 야후 파이낸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비트코인을 매수하는 것은 투자가 아니라 사기다. 이것은 투기적인 게임이나 도박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가상화폐는 실제로 아무 것도 생산하지 못한다”며 “아무도 비트코인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버핏의 주장은 일관되게 이어진다. 버핏은 몇 년 전부터 꾸준하게 "비트코인은 사기"라고 발언했다.

버핏은 자신이 잘 모르는 것에는 절대 투자를 안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초창기의 버핏은 특히 미래 과학 기술주에 투자하는 것을 불신했고, 안정자산 위주의 포트폴리오를 형성했다.

결국 버핏은 FANG으로 불리는 페이스북-애플-알리바바-넷플릭스-구글에 투자하지 않았고, 이 종목들은 급등을 거듭했다.

최근에서야 버핏은 애플과 IBM 등에 투자하는 등 기술주 투자를 시작했다. 이제서야 IBM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대로 버핏은 아이폰을 생산하는 애플의 초창기에 투자하지 않았다.

그런데 올해 2월 26일(미국시간) 버핏은 “지난해 버크셔 해더웨이의 가장 많은 투자금을 애플 주식을 사는데에 사용했다”고 CNBC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애플의 주가 흐름. 버핏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버핏이 2009년부터 2012년까지 크게 상승한 애플의 수퍼 사이클에서 전혀 수익을 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 당시 버핏은 애플과 같은 기술주에 투자하지 않았다. (차트=하나금융투자)

사실 애플의 주가 추이를 보면, 2009년부터 2012년까지 큰 상승을 이루다가 2014년 급락했다. 이후 2015년부터 재차 반등해 오르기 시작한다.

버핏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버핏이 2009년부터 2012년까지 크게 상승한 애플의 수퍼 사이클에서 전혀 수익을 보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 당시 버핏은 애플과 같은 기술주에 투자하지 않았다.

물론 2014년의 급락이 있은 후 저평가된 시점에서 매입한다는 명분은 있으나, 애플이 다시 한 번 스티브 잡스 때와 같은 전성기를 맞을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몇 년 전부터 암호화폐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밝힌 워렌 버핏은 2017년 비트코인의 큰 상승에 대한 수익을 가져가지 못했다. 비트코인 투자자들은 이점을 꼬집고 드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버핏이 암호화폐에 대해 잘 모른다”며 “애플의 사례와 같이 나중에 비트코인을 잘 알게 되면 그때 투자를 시작할 것”이라고 비꼬는 발언이 나온다.

이어 “버핏이 투자하기 시작할 때, 비트코인은 이미 지금 가격의 10배 이상 올라 있을 것”이라고 ‘뒷북 투자’를 들어 비판한다.

버핏의 투자는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는 가치주를 위주로 투자하기 때문에 미래가치를 계산하는 성장주에 비중을 적게 두었을 뿐이다.

버핏은 두번째 스승, 필립 피셔의 성장주 투자에 영향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첫번째 스승인 벤자민 그레이엄의 영향을 더 크게 받아 자산 가치주에 투자하는 경향이 짙다. 

애플이나 넷플릭스가 성장주였지만 크게 급등한 것처럼 비트코인도 굳이 주식으로 따지자면, 가치주보다는 미래가치를 먹고 사는 성장주에 가깝다.

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가상화폐 기술 블록체인은 성장주에 가깝다. 이는 버핏의 투자철학에 적합하지 않다. (사진=픽사베이)

버핏은 저평가된 가치주에 투자함으로써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었다.

반면, 조지 소로스는 가치주에 투자하지 않고, 성장주 또는 공격적인 외환 등에 투자해서 부자가 되었다. 조지 소로스는 이번에 비트코인에도 투자한다고 밝혔다.

워렌 버핏과 조지 소로스는 서로 투자 방법이 다를 뿐, 둘 중 누가 더 옳다고 따질 수 없다. 가상화폐든 주식이든, 투자는 자신의 원칙대로만 올곧게 가는 것이 중요함을 두 대가를 통해 입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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