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신 KAIST 화학과 석좌교수. [사진=신선경 기자]
이해신 KAIST 화학과 석좌교수. [사진=신선경 기자]

[뉴시안= 신선경 기자]“홍합이 파도 속에서도 바위에 단단히 붙어 있을 수 있는 이유는, 폴리페놀 계열의 단백질로 구성된 접착 단백질 덕분이었습니다. 저는 이 접착력을 밝혀내고, 이를 다양한 소재에 응용할 수 있는 코팅 기술로 발전시켰습니다. 이 연구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게재되며 주목을 받았고, 현재까지 1만 회 이상 인용됐습니다.”

‘홍합’이라는 작은 생명체의 생존 전략에서 출발한 연구가, 이제는 사람들의 삶을 바꾸고 있다. 바로 그 중심에는 이해신 KAIST 화학과 석좌교수의 집요한 탐구와 과학적 상상력이 있다.

이 교수의 폴리페놀과의 인연은 2007년, 홍합의 접착 단백질을 연구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해당 기술을 기반으로 2010년 이노테라피에서 CTO로 재직하며 지혈제를 개발하고 상용화에 성공했으며, 2017년에는 주삿바늘 표면에 지혈 성분을 코팅해 찔러도 피가 나지 않는 주삿바늘을 개발했다. 이러한 연구 성과로 2018년에는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연구자’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이후 탈모 개선에 도움을 주는 샴푸까지 선보이며 연구를 실생활로 끌어냈다.

“과학이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직접 쓰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이 교수는, 지금도 폴리페놀의 무한한 가능성을 믿으며 또 다른 변화를 설계하고 있다. KAIST 생명과학과를 졸업하고 MIT 박사후연구원을 거쳐, 현재는 화학과 석좌교수 겸 폴리페놀 팩토리 대표로 활약 중인 그에게 연구와 창업의 접점을 물었다.

스승이신 매서 스미스 교수(현 버클리대 교수)와 공동연구하는 이해신 교수.[사진=이해신 교수]
스승이신 매서 스미스 교수(현 버클리대 교수)와 공동연구하는 이해신 교수.[사진=이해신 교수]

# 카이스트 생명과학 학사를 마치고 미국에서 의공학 박사학위를 받고 MIT 박사후연구원을 지내셨습니다. 그간의 주요 연구 활동과 성과를 소개해 주십시오.

▲ 의공학은 매우 폭넓은 분야입니다. 병원에서 사용하는 기술 중 약물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의공학의 영역이라고 볼 수 있죠. 예를 들어 MRI, 엑스레이, CT 같은 영상 진단 장비들도 모두 의공학 분야에서 개발되는 기술입니다.

저는 그동안 다양한 의공학 분야를 연구해 왔습니다. 특히 과거에는 지혈제 개발에 집중한 적이 있었고, 2010년에는 직접 지혈제 전문 회사를 설립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다른 분이 운영하고 있지만, 그 당시 국내 지혈제의 국산화에 어느 정도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지혈제만큼은 제가 가장 많이 연구한 사람 중 하나일 겁니다.

의공학에서 주요 관심 분야는 재활 의공학입니다. 휠체어를 포함해 최근에는 로봇 기술이 적용된 재활 기기들도 활발히 개발되고 있죠. 이 분야는 시장 규모도 크고, 사회적으로도 관심이 높아서 매우 주목받고 있습니다.

# 생명과학을 전공하셨는데, 현재는 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신 게 특이하십니다. 

▲ 생명과학을 전공했지만, 연구 주제는 분자 수준의 구조와 기능을 이해하고 응용하는 데 초점이 있었습니다. 접착 단백질과 소재 과학, 표면 코팅 기술까지 연구 영역이 확장되며 화학과로 소속이 변경되었습니다. 현재는 화학과 교수로서 생명과학 기반의 융합 연구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이해신 KAIST 화학과 석좌교수. [사진=신선경 기자]
이해신 KAIST 화학과 석좌교수. [사진=신선경 기자]

# 현재 연구 중이신 폴리페놀에 대해 쉽게 설명해 주십시오.

▲ 폴리페놀은 기본적으로 벤젠 고리에 하이드록시기, 즉 수산화기 두 개 이상이 결합된 물질을 의미합니다. 수산화기 하나가 붙은 페놀은 독성이 있지만, 여러 개가 결합된 폴리페놀은 항산화 작용을 하여 오히려 건강에 이로운 기능을 합니다. 이 항산화 기능 덕분에 건강기능식품의 핵심 성분으로 널리 사용됩니다.

모든 식물에는 폴리페놀이 존재합니다. 식물의 세포벽을 강화하고 외부 자극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하죠. 종류는 천여 종이 넘으며, 우리에게 익숙한 카테킨이나 탄닌, 레스베라트롤, 안토시아닌 등도 모두 폴리페놀입니다. 떫은맛의 원인이기도 하고, 발효나 산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사람의 경우, 멜라닌이 대표적인 폴리페놀입니다. 멜라닌은 피부와 눈동자에 존재하며 자외선을 차단하고 피부를 보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체내에서 폴리페놀을 자체적으로 생성하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음식이나 건강기능식품을 통해 섭취해야 합니다.

# 화학과 교수님이 탈모를 연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 제가 주목한 것은 폴리페놀의 접착력입니다. 폴리페놀은 단백질과 잘 결합하는 성질을 갖고 있는데, 이는 녹차의 떫은맛이 입에 오래 남는 것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머리카락은 단백질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폴리페놀을 활용하면 모발을 보다 탄탄하게 붙잡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래비티 샴푸에도 이 원리가 적용돼 있습니다. 샴푸 속 폴리페놀이 모발에 결합해 보호막을 형성하고, 마치 풀을 먹인 것처럼 볼륨과 탄력을 부여합니다. 또, 헐거워진 모낭 부위에도 폴리페놀이 작용해 빠지는 모발을 줄여주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 연구의 출발점도 홍합이었습니다. 미국 노스웨스턴대 박사과정 시절, 해안 바위에 단단히 붙어 있는 홍합의 접착력을 관찰하며 연구를 시작했고, 이 단백질 구조를 모방해 지혈제와 주삿바늘을 개발했습니다. 이후 모발 연구로 확장된 것입니다.

사실 처음 그래비티 샴푸를 개발할 때는 탈모 효과를 크게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모발을 두껍게 강하고 힘있게 만들어주는 물리적 모발 보호에 중점을 맞춰서 연구했는데, 지인들에게 임상용 샘플을 나눠준 결과, 탈모가 줄어들었다는 반응이 이어졌고, 그 원인을 분석해 제품에 반영하면서 지금의 그래비티로 진화하게 되었습니다.

# 최근 프랑스 소비재 박람회 ‘Foire de Paris 2025’에 참가하셨습니다. 어떤 성과가 있었나요.

▲ 지난 4월 30일부터 5월 11일까지 열린 ‘Foire de Paris(포흐 드 파리) 2025’는 12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유럽 최대 소비재 전시회입니다. 

이번에 처음 갔는데 전 세계에서 모인 유명한 브랜드나 히트상품들을 소개하는 자리였습니다. 저희는 현장에서 일반 소비자 대상의 제품 시연 및 판매와 함께 글로벌 바이어 들과의 수출 상담을 병행했습니다.

총 4만 명 이상이 부스를 방문했고, 준비한 제품 1만 개가 조기 완판되는 등 현지 소비자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30여 개국의 유통 바이어와 수출 협의를 진행했는데, 전시 초반에 반응이 뜨거워서 인지 예약된 바이어 외에 많은 바이어들이 현장에서 상담을 위해 대기하며 줄을 잇는 이례적인 풍경이 만들어 졌습니다. 제품을 사용해 본 소비자들이 다음날 지인들을 동반해서 재방문하시며 제품을 싹 쓸어 가시기도 하고 특히 중동계, 유럽계분들의 반응이 좋았습니다. 현재 유럽 시장 진출을 위한 타당성 조사가 진행 중입니다.

# 올해 초 CES 2025에도 참가하셨는데 현장 반응이 어땠나요.

▲ CES는 카이스트 창업기업들로 이루어진 연합부스의 일원으로 참여하게 됐습니다.

폴리페놀 팩토리는 AI, 로봇기술 등 쟁쟁한 기술들을 제치고 헬스테크 기술기업으로 화제의 중심에 섰습니다. 제품 시연과 기술 소개가 이어진 첫날, 준비한 샘플 1만 개가 반나절 만에 모두 소진되며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글로벌 벤처캐피털인 플러그 앤 플레이를 포함해 국내외 투자사 50여 곳이 투자와 협력을 타진했고, 미국 유통 대기업인 월마트와 타겟의 벤더사로부터 입점 제안도 받았습니다. 일본 라쿠텐 본사로부터는 직매입 제안이 들어와 현재 구체적인 논의가 진행 중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CES 참여가 너무 좋았습니다. 관람객들의 수준이 높으시고 기술에 대한 이해도 또한 넓어서 진지하게 기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즐거웠습니다. 

왼쪽부터 전규열 뉴시안 대표이사와 이해신 카이스트 석좌교수. [사진=신선경 기자]
왼쪽부터 전규열 뉴시안 대표이사와 이해신 카이스트 석좌교수. [사진=신선경 기자]

# 향후 계획이나 목표가 있다면.

- 폴리페놀 팩토리는 접착과 코팅이라는 폴리페놀의 고유 기능을 기반으로 기존에 없던 혁신적인 고기능성 제품군의 라인업을 구축하고자 합니다. 그 중 가장 주력하는 분야는 ‘헤어케어’입니다.

예컨대 다이슨도 처음엔 청소기로 출발했지만 현재는 헤어 제품군이 주력으로 자리 잡았듯, 저희도 헤어케어 시장에서 차별화된 기술력을 선보이려 합니다. 당분간은 탈모 및 두피 케어 중심의 기능성 제품에 집중할 계획이며, 장기적으로는 인체에 무해한 폴리페놀 기반의 접착제, 지혈용 의약품까지 연구 영역을 확장해 나갈 예정입니다.

# 창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조언해 주신다면?

- 많은 학생들이 아이템 선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것 같아요. 본인이 관심 있는 것만 좇다 보면 시장성과 실현 가능성을 간과하게 됩니다. 창업 아이템은 극소수만이 할 수 있는 기술이어야 하며, 그 분야를 제대로 알고 있는 전문가의 도움과 협업이 중요합니다. KAIST의 창업 문화도 점점 좋아지고 있으니, 기술의 사회적 가치를 고민해보는 창업이 많아지길 바랍니다.

 

대담 = 전규열 대표이사 겸 편집인(경영학 박사)

정리‧사진 = 신선경 기자 

저작권자 © 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