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안= 신선경 기자]법무법인 한중의 박경수 변호사는 해군 법무관을 거쳐 국방부 법무관리관, 국가보훈부 보훈심사위원장을 역임했다. 부모가 한국전쟁 피난민이었고, 본인도 군 생활을 경험한 그는 “군인의 희생은 끝까지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신념으로 억울한 군인과 가족의 명예 회복에 앞장서 왔다.
김진만 소위 사건, 김오랑 중령 사건 등 대표적 승소 사례를 통해 억울한 군인의 명예를 회복시킨 그는, 보훈제도의 가장 큰 문제로 ‘입증 책임’을 지적하며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군과 보훈 제도와 얽힌 수많은 사건을 맡으며, 억울한 희생자와 가족들의 명예 회복을 위해 앞장서 온 박 변호사를 만나 국방과 보훈 분야 전문 변호사로서의 소회를 들어봤다.
# 군 사건과 보훈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은 무엇입니까.
▲ 제가 해군 법무관으로 군 생활을 했고, 마지막 공직은 보훈심사위원장이었습니다. 부모님도 한국전쟁 당시 흥남철수 때 피난선을 타고 내려오신 분들이에요. 어릴 적부터 전쟁의 고통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죠.
또 군 복무시절 미 해군과의 교류를 통해 미국의 제도화된 시스템을 보면서 “진정한 전투력은 강한 훈련이 아니라, 다쳐도 전사해도 국가는 끝까지 책임진다는 확신에서 나온다”는 걸 절감했습니다.
# 군 사건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 처음부터 군 전문 변호사를 하려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제게 들어오는 사건은 대부분 군 사건이었어요. 의뢰인과 대화하다 보면 군 조직과 상황을 바로 이해할 수 있었죠. 다른 변호사들은 그 전제부터 설명을 들어야 하니 소통에 어려움이 있고 사건을 이해하기까지 시간이 걸리지만 전 군 관련해서는 군 경험 덕에 사건을 빠르게 이해하고 대응할 수 있었습니다. 그게 경쟁력이 된 것 같습니다.
# 담당 사건 중 김진만 소위 사건은 35년 동안 진실이 왜곡된 채 국가유공자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법리 문제라기보다는 사실관계 규명이 핵심이었는데 어떻게 풀어가셨는지요.
▲ 당시에는 ‘음주 상태로 고속도로를 무단횡단하다 사망’한 사건으로 처리돼 보훈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저도 결론적 사실관계 앞에서 처음에는 도저히 승소할 자신이 없는 사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유가족은 30여 년 동안 “현장에 혈흔조차 없었다”고 의문을 제기했어요. 그런데 기록을 보던 중 김 소위가 사망했다는 고속도로 현장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고속도로가 아니라 왕복 2차선 국도였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사건 현장의 도로는 마을주민들이 자주 횡단하는 곳이라는 진술도 있었습니다.
당시 수사기록에서 가해 차량 탑승자는 누가 봐도 확장 공사 중이던 고속도로에 김 소위가 무단횡단하다가 사고를 당했다는 내용으로 진술했습니다.
그런데, 그 공사 중인 도로는 실제 사고가 난 고속도로가 아니고 당시 공사 중이던 현재의 왕복 4차선 남해고속도로입니다. 이러한 점들에 비추어 사고 자체가 조작의 의혹이 제기되었고, 결국 사망원인이 고속도로가 아닌 좁은 국도에서 일어났고, 고인은 상관의 지시로 참석한 회식 후 귀가 중이었습니다. 결국 법원은 ‘공무 연장선상 순직’으로 인정했고, 35년 만에 국가유공자로 명예를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 조현병으로 고통받던 장교 사건도 의미 있는 사례로 꼽힙니다.
▲ 젊은 장교가 조현병을 앓으면서 어머니 혼자 수십 년간 돌본 사건입니다. 감정 결과에서 군 복무 스트레스가 영향을 줬다는 사실이 드러났지만, 쉽게 인정을 안 해줬어요. 결국 재판부가 어머니의 절절한 사정을 받아들여 보훈 결정을 내렸습니다. 무엇보다 어머님이 아들의 군복무와 조현병의 발병에 대해 30년간 눈물로 호소하니 법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사건은 ‘법에도 눈물이 있다’는 말이 실감된 순간이었습니다.
# 일반 형사사건과 비교해 군 사건만의 어려움은 무엇인가요?
▲ 자료 접근성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군 관련은 모든 게 비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정보와 자료에 대한 접근이 어려운 게 가장 힘듭니다. 일반 사건이라면 정보공개 청구로 받을 수 있는 자료조차 군 사건에서는 불가능합니다. 판사도 뭘 해주고 싶어도 근거가 없으니 어려운 거죠.
# 영화 ‘서울의 봄’으로 유명한 김오랑 중령 사건은 법리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 김오랑 중령은 애초에 소송이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헌법 제29조에 군인은 전투·훈련 등 직무집행과 관련해 받은 손해에 대하여는 법률이 정하는 보상 외에 국가배상소송을 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고, 국가배상법 역시 동일하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김 중령은 순직으로 처리되어 국가유공자로서 당시 법률에 따라 보상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김 중령의 죽음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국가배상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김 중령의 국가배상소송 여부를 타진했을 때에는 좀 부담스러웠습니다. 게다가 김 중령에 대해 알고 있던 사실 관계는 단지 영화 서울의 봄을 통해 12·12 군사반란의 날에 인상깊었던 희생자 정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김 중령의 일대기를 다시 한번 조사하며 우발적 사고로 조작하거나 왜곡했다는 점을 관련 자료에서 확인했습니다.
결국 김 중령의 죽음에 대해 상당 기간 조작 및 왜곡, 인격권 침해, 그리고 은폐가 있었다고 소장의 방향을 잡아 변론을 진행했고 재판부도 수용해 승소판결을 내려주었습니다.
# 오랫동안 보훈심사위원장을 맡으셨는데,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면 어떤 부분을 꼽으신다면.
▲ 첫째, 입증 책임 문제입니다. 현재는 국민이 모든 증거를 갖춰야만 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록은 대부분 군이 갖고 있잖아요. 일정 수준 소명이 있으면, 그 이후는 국가가 반박해야 하는 구조로 바뀌어야 합니다.
둘째, 보이지 않는 상이(PTSD, 난청, 고엽제 후유증 등)에 대한 인정과 배우자 승계 확대가 필요합니다. 지금은 혜택이 본인 사망과 함께 끊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평생을 국가에 헌신한 분들과 그 가족이 방치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 끝으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시다면.
▲ 우리나라는 유일한 분단국가이고, 군 복무는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국민의 의무입니다. 그렇다면 희생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국가가 져야 합니다. 입증 책임 역시 국가가 져야 한다는 점을 제도적으로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그것이 군인의 희생을 존중하는 진정한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담 = 전규열 대표이사 겸 편집인(경영학 박사)
정리‧사진 = 신선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