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현 '잘 사는 신묘한 방법' 저자. [사진=송서영 기자]
권태현 '잘 사는 신묘한 방법' 저자. [사진=송서영 기자]

[뉴시안= 송서영 기자]잘 사는 것이란 무엇일까. 개인의 기준마다 다르겠지만, 한국 사회에서 ‘잘 산다’는 말은 여전히 돈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러나 '잘 사는 신묘한 방법'의 저자 권태현은 “진정으로 잘 사는 사회란 돈이 없더라도 두려움 없이 자신의 의지를 표현할 수 있는 사회”라고 말한다. 돈이 잘 사는 삶의 필요조건일 수는 있어도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은행에서 오랜 기간 ‘산업연관표’를 다루며 숫자와 데이터로 세상을 분석해온 권태현 저자는, 잘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갈등’이 있다면 ‘존중’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그 출발점으로 독서를 꼽는다.

그는 “독서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며, 서로 다른 세대를 잇는 가장 현실적인 매개체”라고 말한다. 독서를 통해 타인을 이해하고, 생각을 깊게 하며, 세대를 넘어 공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사회는 ‘잘 사는 길’을 찾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아래는 권태현 저자의 일문일답. 

# ‘잘 사는 것’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저자님이 생각하는 ‘잘 사는 사회’는 어떤 모습인가요?

▲ 잘 사는 사회는 돈이 많다고 해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돈은 필요조건일 수는 있지만, 필수조건은 아니다.

우리 사회는 돈이 기준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진짜 잘 사는 사회는 겁 없이, 두려움 없이 자기 의지를 표현할 수 있는 사회다. 돈이 없어도, 그 이유로 말하지 못하는 사회는 잘 사는 사회가 아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관능미’와 ‘우아미’의 균형을 비유로 자주 쓴다. 젊을 때는 외적인 매력이 앞서더라도 내면의 품격을 잃지 않아야 하고, 나이가 들어 외적 매력이 사라져도 우아함을 키워야 한다. 이 균형을 잡는 방법이 바로 독서라고 생각한다.

# 한국은행에서 산업연관표를 다루던 연구자로서 ‘갈등’과 ‘존중’이라는 감성적 주제에 주목한 계기가 있었나요?

▲ 산업연관표는 모든 산업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한국은행과 농약회사가 무슨 상관이 있겠냐고 생각하겠지만, 한국은행 직원들이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그 쌀에 농약이 사용되고, 결국 모든 산업이 연결돼 있다. 그런 면에서 사회 속 갈등과 존중의 연관성도 눈에 들어왔다. 

산업적 이야기를 더 하자면 우리나라가 산업적으로 성장한 이유는 ‘포기하지 않는 태도’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우리 손으로 다 만들어 왔다. 그러나 저부가 가치로 여긴 부분을 아예 놓으면 약점이 되기도 한다. 요소수가 그렇다. 

따라서 산업 구조를 조정하더라도 완전히 없애면 안 된다. 포기하지 않고 방향을 바꿔가야 한다. 손톱깎이로 세계 시장을 잡은 쓰리세븐처럼, 작더라도 연결된 산업의 가치를 봐야 한다. 

# 책에서 ‘독서’를 존중을 훈련하는 방법으로 꼽으셨습니다. 독서가 어떤 점에서 사회적 힘이 될 수 있을까요?

▲ 독서는 인류 역사상 최고의 발명품이다. 독서는 뇌를 단련시키고 생각을 정리하게 만든다. 요즘은 아이들 언어 속에 폭력이 너무 자연스럽게 들어와 있다. ‘졸라’, ‘열라’ 같은 말이 일상이다. 그 폭력성을 덮어줄 수 있는 것이 독서다.

펜으로 글을 쓰듯이, 책을 읽는 일은 생각의 흐름을 단련시킨다. 영상은 자극적이고 빠르지만, 활자는 느리다. 그 느림 속에서 존중이 자란다. 독서는 단순한 정보 습득이 아니라, 타인의 생각을 이해하는 연습이다.

# 책 전반에서 ‘갈등’이 중요한 키워드로 등장합니다. 갈등을 ‘진보의 동력’으로 바꾸기 위해 어떤 태도가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 갈등은 피해야 할 게 아니라, 발전의 과정이다. 서로 다른 생각이 부딪힐 때 새로운 길이 열린다. 문제는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틀렸다’고 단정하는 태도다.

토마스 쿤의 ‘패러다임 전환’ 개념을 좋아한다. 사회가 발전하려면 기존의 사고를 바꾸는 전환이 필요하다. 지금의 AI 시대도 마찬가지다.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사고의 깊이가 따라오지 않으면, 결국 표면적인 변화에 그친다. 진짜 변화는 사고의 틀을 바꾸는 데서 시작된다.

# 세계 최고 독서율을 자랑하는 스웨덴을 언급하셨는데, 어떤 점이 인상적이었습니까?

▲ 스웨덴은 한때 가난한 나라였다. 그런데 국민이 독서와 금주 운동을 시작하면서 불과 10년 만에 바뀌었다. 지금은 투표율이 80%를 넘는다. 국민이 책을 읽으니 사고가 깊어지고, 정치 참여가 활발해졌다.

생각이 넓고 철학이 깊은 사회는 극단으로 가지 않는다. 정치인이 정치를 ‘수단’으로 쓰지 않고, 시민이 주체가 된다. 우리 사회도 그런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점에서 국내 곳곳에 도서관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왼쪽부터 권태현 저자와 전규열 뉴시안 대표이사 [사진=송서영 기자]
왼쪽부터 전규열 뉴시안 대표이사와 권태현 저자. [사진=송서영 기자]

# 책 출판·유통 구조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시선을 보이셨습니다.

▲ 한국은 책을 ‘지식’이 아니라 ‘상품’으로 다룬다. 미국 아마존은 절판된 고전이라도 요청이 있으면 복사해서 제본해준다. 지식을 나누는 시스템이다.

한국의 서점은 여전히 ‘돈’이 중심이다. 책은 돈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사회의 지적 자산이다. 도서관을 생활권 가까이에 짓고, 절판된 책도 복제·공유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지식을 공공재로 다루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 연령대별로 다른 독서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 초등학교 독서 목록을 보면 감당하기 어려운 책들이 많다.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도 추천도서에 들어가는데, 사실상 ‘29금’ 수준이다. 아무리 명작이라 불리는 책이라도, 독자의 연령과 수준에 맞는 추천 목록 속에서 제시되어야 한다.

또한 독서란 결국 레저 시간을 효율적으로 보내는 법이다. 억지로 전집을 읽게 하면 오히려 책을 싫어하게 된다. 대학생들도 요즘은 장편을 힘들어한다. 결국 독서 습관은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형성돼야 한다. 

# 독서할 때 자신과 다른 의견의 책도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 나와 맞지 않는 책이나 신문도 반드시 읽어야 한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외면하면 시야가 좁아진다.

신문도 마찬가지다. 내가 동의하지 않는 신문이라도 읽어야 비교가 된다. 지적 자산이 풍부하면 다양한 시각을 비교하고 판단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한쪽으로만 기운다.

사회가 건강하려면 서로 다른 목소리가 존재해야 한다. 정치는 특히 균형이 중요하다. 한쪽이 지나치게 약하면 다른 쪽이 흥분 상태로 간다. 서로 견제하며 균형을 잡을 때 사회가 바로 선다.

# 독서와 관련해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요.

▲ 고등학교 시절 포항에서 경제 강좌를 맡은 적이 있다. 강의가 끝날 때마다 학생들에게 책 세 권을 추천하곤 했다. 그중 하나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였다.

2년 뒤, 강남에서 근무하던 시절에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그때 추천해주신 책을 읽고 공부의 목적을 찾았습니다”라는 내용이었다. 

편지의 주인공은 2년 전 경제 강좌를 들은 학생이었다. 그 학생은 카이스트 물리학과에 진학했다. 그 편지를 읽으며 ‘책 한 권이 사람의 방향을 바꿀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에 큰 보람을 느꼈다.

# 책의 마지막에서 ‘젊은 세대가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사회’를 강조하셨습니다. 지금 한국 사회에 가장 필요한 변화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가장 시급한 변화는 세대 간의 존중이다.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가 서로를 ‘필요한 존재’로 인식해야 한다.

젊은 세대가 아무리 다르게 살아도 그 자체로 존중해야 하고, 그들이 누리는 사회는 이전 세대의 노력 위에 세워졌다는 점에서 기성세대에 대한 존경도 필요하다.

세대 갈등의 해법이 ‘다름을 틀림으로 보지 않는 것’에 있다고 본다. 다른 패러다임을 부정하기보다, 다름을 인정해야 사회가 건강해진다.

나이 든 사람은 젊은이 없이는 살 수 없고,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의 토대 위에 선다. 서로 존중하고 존경하는 관계가 되어야 미래가 열린다.

 

대담 = 전규열 대표이사 겸 편집인(경영학 박사)

정리ㆍ사진 = 송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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