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안= 송서영 기자]대형마트 2인자로서 굳건한 위상을 이어갈 것 같던 홈플러스가 결국 회생 절차에 들어갔다. 이 자체만으로도 유통업계와 시장에 충격을 안겼지만 더 큰 충격은, 그 이면의 복잡한 자산유동화 구조와 카드사·사모펀드 간 얽힌 이해관계로 인해 일반 투자자들까지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이다.
자산유동화 전자단기사채(ABSTB)를 무분별하게 활용하며 촉발된 이번 사태는 고도의 금융공학이 적용된 구조로, 일반 투자자들이 사전에 리스크를 인지하거나 전체 구조를 이해하기에는 지나치게 복잡했다.
김기동 범무법인 로백스 변호사는 뉴시안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사태는 카드 돌려막기와 다름없는 편법 유동화 구조로, 사실상 소비자와 이해관계자에게 피해를 전가한 것”이라며 “MBK는 실질적인 경영자로서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홈플러스 피해 구제에 앞장서고 있는 김 변호사는 홈플러스의 위기를 촉발한 ABSTB 구조에 대해 “90일짜리 현금서비스에 가깝다”며 “사실상 카드 돌려막기 구조와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홈플러스는 유통업 특성상 납품업체에 대금을 지급하는 시점과 소비자가 상품을 구매해 결제하는 시점 사이에 시차가 생긴다. 홈플러스는 마트에 진열할 물건을 여러 납품업체로부터 먼저 받아오지만, 그 대금은 며칠이나 몇 달 뒤에 지급한다.
반면, 이 물건들이 소비자에게 팔릴 때는 바로 결제된다. 이처럼 ‘물건을 들여올 때와 소비자에게 팔릴 때 사이에 시간차’가 생기는 것은 유통업의 일반적인 구조다.
이 시간차로 인해 당장 현금이 부족해질 수 있는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홈플러스는 ‘기업구매전용 카드’를 활용했다. 이 카드는 홈플러스가 납품업체로부터 물건을 외상으로 사올 때 결제 수단으로 사용하는 기업 전용 신용카드다. 카드사에게는 나중에 돈을 갚기로 하고 먼저 물건을 들여올 수 있어, 자금 흐름에 숨통을 트이게 해주는 역할을 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 MBK 계열사인 롯데카드가 깊이 개입하면서 문제는 한층 복잡해졌다.
김기동 변호사는 “홈플러스의 신용등급이 하락하자 2024년부터 신한카드와 현대카드는 거래량을 줄이거나 유지했지만, 오히려 롯데카드 사용량은 급격히 늘었다”며 “이는 사실상 그룹 내 계열사 지원을 위한 비정상적인 거래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이 카드 결제 대금을 바탕으로 발행한 ABSTB다. 카드사는 홈플러스가 최장 90일 이내에 자신들에게 갚아야 할 돈을 받을 권리, 즉 ‘채권’을 보유하고 있다. 카드사는 이 채권을 그냥 들고만 있지 않고, 이를 SPC(특수목적회사)라는 곳에 넘기게 된다.
이때 카드사는 ‘참가계약’을 활용함으로써 금융당국의 감독을 피해갈 수 있었다. 참가계약이란, 카드사가 채권을 완전히 넘기는 대신, 채권에서 발생하는 원금과 수수료 등 현금흐름에 대한 '일부 권리만' SPC에 넘기는 방식을 말한다.
이 경우, 형식적으로는 채권 양도가 아닌 ‘참가’에 불과하기 때문에 자산유동화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자산유동화법의 사각지대를 활용한 것이다.
SPC는 이렇게 카드사가 넘긴 ‘받을 돈(채권)’을 모아서, 투자자에게 파는 단기채권 상품을 만든다. 이게 바로 ABSTB(자산유동화 전자단기사채)다. 홈플러스가 앞으로 갚을 돈을 담보로 한 투자 상품인 것이다.
투자자들이 이 ABSTB를 사면 SPC는 현금을 얻고, 이 돈은 다시 카드사에 유입되는 구조다.
ABSTB를 활용한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었지만, 홈플러스가 돈을 갚지 못하더라도 그 피해가 오롯이 투자자에게만 돌아가고, 카드사는 책임을 피해갈 수 있도록 구조가 설계돼 있었다.
SPC에 채권을 완전히 양도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카드사가 여전히 카드대금 채권의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비소구 조건’에 따라 카드사는 홈플러스가 카드대금을 지급하지 않더라도 SPC로부터 받은 참가대금을 반환할 책임이 전혀 없었다.
비소구 조건’이란, 홈플러스가 카드대금을 지급하지 않아 SPC가 투자자들에게 ABSTB를 상환하지 못하게 되더라도, SPC로부터 참가대금을 지급받은 카드사가 이에 대하여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기로 하는 조건을 의미한다. 즉, 홈플러스가 돈을 갚지 못하더라도 카드사는 SPC와 참가계약을 체결한 시점에 손을 뗄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다. 이로 인해 유동화 구조의 최종 부담은 투자자에게 집중됐고, 카드사는 실질적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처럼 카드사들은 SPC와 계약 체결 시에 ‘비소구 조건’을 넣어 자신들의 자금 회수를 보장받았고, 홈플러스는 이러한 구조를 통해 카드사들의 손실 가능성을 없앰으로써 재무 상태가 심각하게 악화된 상황에서도 기업구매전용카드를 계속 사용할 수 있었다.
김 변호사는 홈플러스 회생절차를 ‘시간 벌기’라고 평가했다. 그는 “사모펀드의 특성상 10년이면 엑시트(자금 회수)를 해야 하는데, 올해가 딱 MBK가 홈플러스를 인수한지 10년째 되는 시점이다”며 “더 이상 손해 보기 싫어 시간을 끌며 폭탄을 넘긴 셈이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MBK는 단순한 재무적 투자자가 아니라 실질적 경영자였다”며 “SPC를 내세워 뒤에 숨어 있었지만, 경영 책임은 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회생계획이 M&A를 전제로 하는 상황에서 투자자 권리 회복 가능성은 낮다는 게 김 변호사의 진단이다. 김 변호사는 “조사보고서상 계속기업가치 평가 봤을 때, 희망적인 구조조정 가정을 모두 반영하더라도 올해와 내년은 큰 폭의 영업손실이 예상되고, 영업이익이 나는 시점은 구조조정 이후 4년차부터다”며 “실질적으로 원금 회복은 어렵다”고 봤다.
그는 “홈플러스 특유의 매장 구조는 대형마트 이외의 다른 용도로 사용하기도 어려워 실제청산가치는 기대만큼 나오지 않을 수 있다”며 “MBK가 포기하겠다고 밝혔던 보통주는 애초에 사실상 가치가 없는 것이었다”고 덧붙였다.
홈플러스를 청산해도 확정 채무와 국민연금의 상환전환우선주를 상환하고 나면 남는 돈이 없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현재 홈플러스의 청산가치는 3조7000억원이며 계속기업가치는 2조5000억원이다.
그는 검찰 수사에서 쟁점이 될 부분에 대해서도 짚었다. 김 변호사는 “롯데카드는 홈플러스 기업 상황이 나쁜 걸 알면서도 카드 한도를 늘리고 유동화를 시도했다”며 “여기엔 MBK 현직 임원들이 롯데카드 이사진으로 참여한 정황도 있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금융당국의 제도적 보완도 강조했다. “MBK와 같은 사모펀드가 장기간 실질적인 경영권을 행사하면서도, 금융복합기업진단 감독체계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며 “투명한 공시와 감독 사각지대 해소 없이는 이러한 문제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언급했다. 아래는 김기동 변호사의 일문일답.
# 홈플러스 위기를 초래한 ABSTB 활용 단계에서 가장 큰 실책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 가장 큰 실책은 홈플러스가 이미 사실상 상환 능력을 상실한 상황에서 계열사인 롯데카드를 통해 기업구매전용카드 사용을 급격히 확대하고, 이를 바탕으로 ABSTB를 지속 발행한 것이다.
특히 2024년 5월경 메리츠금융그룹과의 리파이낸싱 과정에서 연 8%의 기본금리에 최대 14%의 내부수익률 보장, 12개월 이내 2,500억 원의 조기상환 특약 등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수익률 보장과 조기상환 조건을 설정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ABSTB를 발행했는데, 이는 구조적으로 투자자에게 손실을 떠넘긴 행위였다.
# ABSTB 유동화 구조가 복잡한데, 일반 투자자들이 구조적 리스크를 사전에 인지할 수 있었을까요?
▲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고 본다. ABSTB는 카드대금채권을 SPC에 직접 넘기는 것이 아니라, 그 채권에서 나오는 현금흐름 일부만 참가권 형태로 이전하는 구조다.
이 방식은 일반적인 유동화 구조와 달라 투자자가 이해하기 어렵다. 게다가 참가계약에는 '비소구' 조항이 있어, 홈플러스가 돈을 갚지 않아도 카드사는 아무 책임이 없다.
결국 투자자들은 구조적으로 모든 위험을 떠안고도, 정작 카드사나 홈플러스에 책임을 물을 수도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 카드사와 증권사 간 유동화 거래에서 ‘도덕적 해이’ 문제가 명확히 드러난 대목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 핵심은 카드사가 리스크를 지지 않으면서 수익만 챙긴 구조다. ABSTB를 발행하면서 카드사는 참가계약을 통해 현금을 먼저 회수했지만, '비소구' 조항 덕분에 홈플러스가 상환을 못해도 추가 책임이 없다.
이렇게 되면 카드사는 리스크 관리 유인을 잃게 되고, 투자자만 피해를 떠안게 된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
# 피해자 입장에서 가장 시급한 법적 대응 조치는 무엇입니까? 현재 어떤 절차들이 진행 중인가요?
▲ 현재 로백스는 일부 피해자들을 대리해 MBK, 홈플러스, 롯데카드 경영진을 특경법상 사기 및 배임 혐의로 고소한 상태다.
핵심은 이들이 홈플러스의 지급불능 상태를 알면서도 ABSTB와 기업어음을 계속 발행했다는 점이다. 형사 책임을 규명해 민사상 손해배상으로 연결해야 하고, 이것이 향후 정부의 피해자 지원 논의와 제도 개선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 향후 회생 계획이 인수합병(M&A)을 전제로 한다면, 투자자들의 권리 회복은 구조적으로 가능한가요?
▲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본다.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홈플러스의 계속기업가치는 2조 5000억 원으로, 청산가치 3조 7000억 원보다 1조 원 이상 낮게 평가됐다
법원은 피해 최소화를 위해 인가 전 M&A를 허가했지만, ‘청산가치 보존 원칙’상 회생계획이 인가되려면 최소 청산가치 이상의 매각금액이 나와야 한다. 현재 홈플러스는 대부분의 자산이 담보로 묶여 있고, 투자심리도 위축돼 있어 현실적으로 청산가치 이상의 M&A는 사실상 성사되기 어려운 상환으로 보인다.
# MBK·홈플러스·롯데카드 간의 구조적 연계성에 대해 검찰 수사가 본격화될 경우, 어떤 법적 쟁점이 핵심이 될까요?
▲ MBK 김광일 부회장이 홈플러스 대표이사이자 롯데카드 이사를 겸직하며 내부거래를 주도한 정황이 핵심이다.
롯데카드는 홈플러스에 과도한 신용공여를 했고, 이는 업무상 배임에 해당할 수 있다. 홈플러스가 이미 재무위기 상태였는데도 ABSTB를 계속 발행했다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사기죄가 성립될 가능성도 있다. 검찰 수사는 이 구조적 연계성과 고의성 여부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 금융당국은 이 같은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 현재 PEF(사모펀드) 전업집단은 금융복합기업집단 규제 대상에서 빠져 있다. 과거 금융위원회는 PEF전업집단이 기업을 단기간 보유하고, 위험전이·내부거래 위험이 낮다는 이유로 예외를 인정했다.
그러나 MBK처럼 장기간 지배력을 행사하며 계열사 간 위험을 전이시키는 사례가 늘고 있는 만큼, 일정 규모 이상의 PEF는 금융복합기업집단으로 편입해 내부거래 공시, 위험관리 평가 등을 받아야 한다. 이를 통해 감독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금융소비자 보호를 강화할 수 있다.
# 이 사건이 향후 사모펀드의 기업 인수 및 유동화 관행에 미칠 영향은 무엇이라고 전망하십니까?
▲ 사모펀드의 차입비율 제한을 통한 무리한 차입매수(LBO) 구조에 대한 규제가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 나아가 증권사에 대해서도의 리테일 셀다운(재판매) 대상 제한, 보유의무 강화 등도 생각해볼 수 있다.
향후 사모펀드는 보다 장기적이고 책임 있는 투자 전략을 마련해야 하며, 사회적 책임을 수반하는 투자 행태가 요구될 것으로 본다.
대담 = 전규열 대표이사 겸 편집인(경영학 박사)
정리ㆍ사진 = 송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