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안= 송서영 기자]AI 도입이 전 산업 분야에서 활발히 진행되는 가운데, ‘제조업 강국’ 한국 역시 AI와의 결합을 통해 무한한 성장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제조 분야마다 비정형화되고 각기 복잡한 양상의 데이터 특성을 가진 제조업 특성상 현실은 아직도 걸음마 단계에 머물러 있는 상황이다.
정임두 UNIST 교수는 기계공학과와 인공지능 대학원에서 활동하며,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제조 현장의 데이터 수집과 정비에서부터 시작해, 인공지능을 실제 공정에 효과적으로 접목하는 실용적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정임두 교수는 자동차 조립 공정에 AI를 적용한 대표 사례로 ‘대량생산 품질 문제’를 언급하며, 제조업에서 AI가 가진 힘을 이렇게 설명한다.
“자동차 한 대를 생산하려면 수백 가지의 다양한 공정이 필요합니다. 각 공정에서 품질 저하 문제가 발생을 하지만, 기존 품질 검사 방법은 고가의 장비로써 설치 및 운용 비용이 많이 들고 검사 시간 또한 오래걸려 샘플링 검사만 하거나 거의 최종 단계에서만 검사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한계로 조기에 문제를 발견하지 못하여 훨씬 복잡해진 문제를 후공정에서 해결하기 위해 많은 노력과 비용이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어 그는 "AI를 활용하면 아주 단순하고 저렴한 센서만 가지고도 고도의 검사가 가능하여 거의 모든 공정의 주요 생산 단계를 고도로 모니터링할 수 있게 됨으로써, 최종 단계 훨씬 이전의 각 공정에서 이미 불량을 사전에 예측하고 결함을 막을 수 있어, 막대한 비용 절감은 물론, 품질 향상에도 기여합니다.” 고 말한다.
이 같은 AI의 힘은 포스코와의 공동 연구에서도 확인됐다. AI를 통해 품질 관리를 고도화한 결과 연간 최대 1,000억 원의 비용 절감 효과가 발생했다.
정 교수는 제조업과 AI의 결합이 단순한 비용 절감을 넘어, 제조 산업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현재 제조업에서는 공정별로 각각의 관리 부서가 존재하며, 각 부서가 수집·분석한 정보를 공장장에게 전달하고, 공장장들이 취합한 내용을 다시 경영진에 보고한다. 경영진은 이를 종합해 최고경영자에게 전달하고, 최고경영자는 그 정보를 바탕으로 기업 운영의 방향을 결정한다.
하지만 이처럼 여러 단계와 사람을 거치며 전달되는 정보는 왜곡되거나 지연될 수 있으며, 항상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구조다.
이에 반해 AI를 활용하면, 각 제조 공정과 공장을 실시간 데이터 기반으로 자동 관리할 수 있고, 경영에 필요한 핵심 지표들을 AI가 자동 분석해 대표이사의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보고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가능하다.
이처럼 AI가 공정부터 경영까지 통합적으로 판단하고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체계가 정착되면, 일명 ‘AI 1인 운영 체제’의 대기업도 충분히 등장할 수 있다.
AI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정 교수는 단순한 코딩 능력보다 산업 현장을 이해하고 데이터를 해석할 수 있는 ‘도메인 전문성’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최근 대형 IT 기업들이 프로그래머를 대규모로 감축하는 이유도, 이제는 단순 코딩조차 AI가 대체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기계공학을 포함한 다양한 공학 분야의 실무 지식과 현장 경험이 AI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핵심 경쟁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AI가 자동으로 생성한 코드라고 해도, 그 의미를 이해하고 데이터의 맥락을 파악해 실제 공정에 적용할 수 있는 사람은 결국 해당 도메인을 깊이 이해한 전문가다.
즉, 전문성이 더 큰 경쟁력이 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향후 계획에 대해 정 교수는, 제조 현장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AI 패키지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기존 공장 시스템과 쉽게 연동될 수 있도록 설계된 모듈형 솔루션으로, 센서나 PLC(제어장치) 등 현장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AI가 자동 분석해 공정 개선을 지원하는 형태다.
정 교수는 “중소기업 현장은 전용 인력이나 대규모 인프라가 부족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별도의 복잡한 설정 없이 간단한 설치와 최소한의 교육만으로 운영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통해 대기업뿐만 아니라, AI 도입이 어려웠던 중소기업들도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공정 안정화, 불량 예측, 에너지 절감 등의 실질적인 효과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아래는 정임두 교수의 일문일답.
# 교수님께서는 어떤 연구를 주로 진행하고 계신가요?
▲ UNIST 기계공학과와 인공지능 대학원에서 제조업과 AI의 융합을 주제로 연구하고 있다. 제조업에 AI를 도입하려면 먼저 데이터를 확보하고 정비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많은 기업들이 AI에 대한 지식과 접목 아이디어가 부족한 상태다.
이에 따라 임직원을 대상으로 한 교육부터 시작해 데이터 수집 시스템을 구축하고, 이를 기반으로 프로젝트를 발굴해 실행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자동차 산업에서는 조립 공정 중 발생하는 단차 문제를 AI로 사전 감지함으로써 생산성과 품질을 높이고 비용도 절감하고 있다.
# 제조업과 인공지능의 융합을 연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 원래는 열과 압력을 활용한 대표적인 플라스틱 성형 공정인 사출성형이나, 재료를 금형에 넣어 원하는 형태로 굳히는 전통적 방식의 몰딩 같은 제조 공정을 연구해왔다.
당시에도 컴퓨터를 활용해 문제를 해결했지만, 시대의 흐름에 따라 데이터 기반 접근이 필요해졌고 현재는 AI를 통해 더 고도화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과거의 시뮬레이션이나 수치 해석 방식보다 AI 기반의 데이터 분석이 더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데서 인공지능 융합을 연구하게 됐다.
# AI가 기존 제조 공정의 문제를 어떻게 극복하나요?
▲ AI는 많은 데이터를 통해 학습하고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을 갖는다. 예를 들어 계절, 습도, 장비 노후화 등으로 공정 조건이 바뀌는 상황에서도 AI는 실시간으로 최적 조건을 찾아 조정할 수 있다. 사람이 모든 변수를 고려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AI는 종합적으로 판단해 품질과 생산성을 높일 수 있어 기존 방식으로는 해결이 어려웠던 문제들을 효과적으로 극복할 수 있다.
# 자동차 조립 공정에서 AI를 활용한 불량 감지 기술은 어떤 성과를 냈나요?
▲ 기존에는 조립을 완료한 뒤 뒤늦게 불량을 발견하는 경우가 많았다. 문짝 하나를 레이저로 검사하는 데만 14분이 걸리고 검사를 위해 라인을 멈추게 되면 비용도 발생한다.
그래서 보통은 300대 중 1대만 샘플로 검사하는데, 이 방식으로는 불량을 선제적으로 발견하기 어렵다. 그래서 소위 ‘자동차 뽑기’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랜덤으로 불량이 섞여 들어가는 것이다.
반면 AI는 1만 원대 센서로도 레이저 수준의 정밀 분석이 가능하며, 모든 공정에 실시간 검사를 적용해 고객 불만을 ‘제로’에 가깝게 줄일 수 있다. 비용 절감 효과도 매우 크다.
# 사람이 하던 위험 작업을 로봇에게 맡기는 연구도 진행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실제 어떻게 적용되고 있나요?
▲ 기존 제조 공정 중에는 사람이 필수적으로 들어가야 하는 과정이 있다.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말이다. 이러한 공정에도 로봇을 적용할 수 있도록 연구하고 있다.
기존 자동화는 사람이 코딩한 루틴을 반복하는 방식이었다. 즉, 매뉴얼에 넣어두지 않은 상황이 나타나면 대응하지 못하는 격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모방학습’을 통해 사람이 했던 작업을 AI가 보고 따라하며 학습한다. 영상 시청 등을 통해 사람이 일하는 과정을 학습하는 것이다.
최신 자율주행과 비슷한 원리로, 정해진 매뉴얼 없이도 예외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기술이다. 이러한 제어 방식은 더 섬세하고 위험한 작업에도 적용 가능하다.
# ‘AI 자율제조’가 한국 제조업에 어떤 변화를 줄 수 있을까요?
▲ 한국은 GDP 대비 제조업 비중이 28%에 달할 정도로,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AI를 선제적으로 도입하기 좋은 조건들도 많다.
공장과 IT 인프라, 엔지니어 인력 등 모든 조건이 잘 갖춰져 있어 AI 도입에 매우 유리한 환경이다. AI 기반 자율제조는 한국 제조업의 경쟁력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핵심 기술이다.
# AI가 접목된 초고속 3D 프린팅 기술도 개발하셨습니다. 어떤 기술인가요?
▲ 3D 프린팅은 제조업에서 가장 첨단 기술에 속한다. 그러나 기존의 3D 프린팅은 층별 적층 방식으로 시간이 오래 걸리는 단점이 있었다. 그런데 이 공정을 ‘볼륨 바이 볼륨’, 즉 한 덩어리(부피) 단위로 형성하는 방식을 사용하면 속도를 100배 이상 높일 수 있다.
단 미국에서 이 연구가 발표될 당시 반드시 케이스 안에서만 제작이 가능했고 부피도 매우 작았다. 이에 우리는 케이스가 없이 제작을 하거나 케이스 사이즈도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사실 가장 큰 어려움은 각 부피에 맞게끔 공정 조건을 일일이 바꿔주어야 하는 것이다. 이 과정은 AI로 극복했다. AI가 실시간으로 원하는 형상을 빠르게 나오게 하도록 공정 조건을 최적화해 생산성을 높이고 있다.
# 증강현실 콘택트렌즈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데 현재 개발 단계는 어디까지 왔나요?
▲ 이미 상용화된 증강현실 글라스는 무겁고 배터리 소모가 크다는 단점이 있다. 우리는 3D 프린팅 기술을 활용해 디스플레이를 렌즈에 삽입하고, 전력 소모를 획기적으로 줄인 증강현실 콘택트렌즈를 개발했다. 세계 최초의 기술로 상용화를 준비 중이다.
# AI 시대에 기계공학자의 역할도 달라지고 있다고 보시나요?
▲ 그렇다. 단순 코딩은 이미 AI가 대체하고 있다. 앞으로는 AI를 ‘어디에’, ‘어떻게’ 쓸지를 아는 사람이 경쟁력을 가진다. 제조업 기계에서 생성되는 데이터는 도메인 지식이 필요한 경우가 많아, 기계공학적 이해가 없으면 해석하기 어렵다.
AI를 제대로 활용하려면 데이터를 해석하고 정제할 수 있는 도메인 전문성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미래의 경쟁력이다.
# 앞으로의 연구 계획이나 목표가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 제조업에 특화된 AI 모듈을 패키지 형태로 개발하고 싶다. 기존 시스템에 연결만 하면 공정에 맞게 AI가 자동으로 분석·관리할 수 있는 모듈이다.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도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범용 AI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장기적으로는 공장장 없이도 경영자가 스마트폰으로 공정을 실시간 관리할 수 있는 AI 기반 제조 환경도 실현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대담 = 전규열 대표이사 겸 편집인(경영학 박사)
정리ㆍ사진 = 송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