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하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사진=신선경 기자]
박성하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사진=신선경 기자]

[뉴시안= 신선경 기자]박성하 성균관대 물리학과‧성균나노과학기술원 교수는 생명과학의 영역으로 여겨지던 DNA를 새로운 ‘재료’로 바라본다. 그는 DNA의 정밀한 구조적 특성과 결합 원리를 활용해 나노 크기의 장치와 데이터 저장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쌀알 하나에 도서관 전체를 담을 수 있는 DNA 저장 시스템 구축을 목표로, 물리·생물·컴퓨터 과학의 융합이 만들어낼 새로운 미래를 제시한다. DNA 오리가미, 나노 로봇, 데이터 저장 장치까지... 물리학, 생물학, 컴퓨터 과학을 넘나드는 그의 연구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박성하 교수를 만나 DNA 나노기술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들어보았다.

# 교수님은 물리학자이신데, 사실 DNA는 생물학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DNA와 인연을 맺게 되셨나요?

▲ 어렸을 때부터 과학을 좋아했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주산으로 논리적 사고를 훈련했고, 중학교 때는 ‘과학의 노래’를 즐겨 부를 만큼 과학이 늘 제 곁에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특별히 뛰어난 성적은 아니었지만 성실함을 무기로 초중고 12년간 개근했고, 대학에 진학하면서 조경철 박사의 영향을 받아 우주과학을 꿈꾸기도 했습니다. 유학 시절에도 핵물리학자 이휘소 박사의 삶에서 큰 자극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물리학을 공부하던 중, 미국 Duke 대학교 물리학과 박사 과정 중 Gleb Finkelstein 지도교수님을 통해 생화학과에 계신 Thomas LaBean 교수님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DNA 나노기술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이후 제 연구 인생이 완전히 DNA와 연결됐습니다.

# 보통 DNA는 ‘유전자 정보’로만 알고 있는데요, 교수님은 DNA를 ‘재료’로 사용하신다고 들었습니다. DNA를 재료로 쓴다는 건 무슨 뜻인가요?

▲ 대부분 DNA를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 정보 저장소로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DNA는 화학적으로 매우 독특한 성질을 가진 물질입니다. 네 가지 염기(A, T, G, C)가 규칙적으로 결합하는 성질을 이용하면 마치 레고 블록을 조립하듯 원하는 구조를 설계할 수 있습니다. DNA는 한 쌍당 0.34nm라는 아주 정밀한 간격을 가지고 있어, 원자 수준까지 제어가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머리카락(머리카락 지름: ~10만nm=0.1mm) 굵기의 10만분의 1, 즉 나노미터 크기의 구조물을 만들 수 있죠. 그래서 저희 연구에서는 DNA를 단순한 유전자 분자가 아닌, 원하는 모양과 기능을 가진 나노 구조물을 만들 수 있는 “재료”로 활용합니다.

# 교수님 연구에서 ‘DNA 오리가미’라는 게 있던데, 이건 무엇인가요?

▲ ‘DNA 오리가미’는 긴 DNA 가닥을 종이 한 장처럼 두고, 짧은 DNA 조각들을 접는 선처럼 배치해 원하는 모양으로 접히게 만드는 기술입니다. 종이접기처럼 나노 스케일에서 상자, 별, 심지어 약물 전달 장치나 작은 기계 부품 같은 정교한 구조물도 만들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DNA 구조물은 전자현미경 또는 원자힘 현미경으로 관찰할 수 있으며, 약물 전달, 바이오센서, 나노 로봇 등 다양한 응용 가능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박성하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사진=신선경 기자]
박성하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사진=신선경 기자]

# DNA에 영화나 사진 같은 데이터도 저장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정말 가능한가요?

▲ 네, 가능합니다. DNA는 원래 생명의 유전 정보를 저장하는 분자인데, 이는 디지털 저장 원리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컴퓨터가 0과 1로 정보를 저장하듯, DNA는 A·T·G·C 네 글자의 조합으로 정보를 기록할 수 있습니다. 연구자들은 글, 사진, 영화 파일까지 DNA 서열로 변환해 저장하는 데 성공했죠. 장점은 쌀알 하나에 도서관 전체를 담을 만큼 엄청난 저장 밀도와 수천 년간의 안정성입니다. 다만 아직은 저장과 읽기에 비용이 많이 들어 실제 상용화에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 교수님 연구는 물리, 생물, 컴퓨터가 다 연결된 것 같습니다. 이런 융합 연구에 흥미를 갖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 저는 한 분야에만 머무르는 것보다 여러 학문이 만나는 지점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온다고 믿습니다. DNA 나노기술은 생물학적 분자를 다루지만, 물리학의 원리로 구조를 만들고, 컴퓨터 과학의 알고리즘으로 설계도를 그려야 가능한 분야입니다. 이런 경계 없는 융합이 미래 과학의 중요한 흐름이라 생각했고, 그 지점에서 큰 매력을 느껴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어릴 적 퍼즐 맞추기를 좋아했는데, 지금은 물리·생물·컴퓨터라는 세 가지 퍼즐을 동시에 맞추는 셈입니다.

# 연구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였나요?

▲ 세 가지 순간이 특별히 기억납니다. 2003년, DNA 격자 구조물을 처음 만들고 원자힘 현미경으로 확인하기 위해 몇 달간 밤을 새우던 경험은 연구자로서의 끈기를 다져준 시간이었습니다. 2015년에는 대전 출장을 가던 길에 “DNA로도 복제기를 만들 수 있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자기 복제 DNA 링 연구로 이어진 결정적 계기가 되었지요. 이 성과는 Nature Nanotechnology에 발표할 수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2024년 제주 출장 중 DNA 저장장치 연구를 하다 정보 저장 밀도를 높일 수 있는 손실 압축 방법을 착안했고, 이는 Advanced Materials에 발표할 수 있었습니다. 현장에서 얻은 영감이 실제 성과로 이어질 때 연구자로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

# ‘DNA 나노기술이 매력적인 이유’를 한마디로 설명해주신다면?

▲ DNA 나노기술의 매력은 생물학적 분자인 DNA를 활용해 원하는 모양과 기능을 직접 설계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생명이 쓰는 분자를 단순히 읽는 데서 그치지 않고, 우리가 새로운 재료와 도구로 재창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무궁무진합니다. 작은 나노 세계에서 과학, 공학, 예술이 동시에 만나는 분야라 할 수 있습니다.

박성하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사진=신선경 기자]
박성하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사진=신선경 기자]

# 앞으로 꼭 해보고 싶은 연구나 목표는 무엇인가요?

▲ 제가 꼭 이루고 싶은 목표는 ‘DNA 저장장치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실험실에서 가능성을 확인하는 수준이지만, 언젠가 DNA에 대량의 데이터를 안정적으로 저장하고 꺼내 쓸 수 있는 시스템을 완성하고 싶습니다. 쌀알 하나에 도서관 전체를 담을 만큼 효율적인 저장 방식이라, 에너지 절약과 장기 보존 면에서 큰 혁신이 될 것입니다. 이를 통해 미래 사회가 직면할 데이터 폭증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 물리학자를 꿈꾸는 청소년이나 대학생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 저는 “본분에 충실하라”는 말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과학의 업적은 그림자와 같아, 억지로 드러내려 하지 않아도 진정한 성과는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학생이라면 수업과 공부, 연구에 꾸준히 성실하게 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대학》에 나오는 ‘격물치지, 성의정심, 수신제가, 치국평천하’처럼 큰일을 이루려면 먼저 자신의 자리에서 기본을 충실히 다져야 합니다. 물리학 연구도 화려한 성과보다 기초를 쌓고 진리를 탐구하는 꾸준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렇게 본분을 지키다 보면 언젠가 인류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는 기회가 찾아올 것이라 믿습니다.

※ 박성하 교수 약력

2008-현재 성균관대학교 물리학과 교수(학과장)

2005-2007 미국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교(Caltech) 박사후연구원

2005 박사 Department of Physics, Duke University, North Carolina, USA

2000 석사 Physical Sciences Division, University of Chicago, Illinois, USA

1998 석사 Department of Physics, California State University at Northridge (CSUN), California, USA

1996 학사 Department of Physics, California State University at Northridge (CSUN), California, USA

 

대담 = 전규열 대표이사 겸 편집인(경영학 박사)

정리‧사진 = 신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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