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27일(현지 시간) 스코틀랜드 턴베리의 트럼프 턴베리 골프장에서 회담하고 있다. 미국과 EU가 '상호관세 15%'를 골자로 한 무역 합의를 타결했다. [사진=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27일(현지 시간) 스코틀랜드 턴베리의 트럼프 턴베리 골프장에서 회담하고 있다. 미국과 EU가 '상호관세 15%'를 골자로 한 무역 합의를 타결했다. [사진=AP/뉴시스]

[뉴시안= 김수찬 기자]미국이 일본 EU 등과 관세 협상을 속속 타결한 가운데, 한-미 양국간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다. 위성락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이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겸 국가안보보좌관을 만나지도 못한 채 빈손으로 귀국하는 가 하면, 당초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과 회담 일정을 잡고 출국하려던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미국의 일방적인 연기 통보로 인천공항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협상 시한이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양국 간 협상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한 상태이다. 이재명 정부가 만족스러운 협상 결과를 끌어내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지만, 최악의 경우 협상이 결렬돼 합의에 실패한다면, 한국 경제는 그야말로 관세 폭탄의 직격탄을 맞게 될 것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분석에 따르면 한미 관세협상 실패시 한국의 실질 GDP가 최대 0.4% 감소해 약 9조 2600억 원의 경제적 손실이 예상된다고 발표했다. 25% 상호관세와 철강·알루미늄 50%, 자동차·부품 및 반도체·의약품 25% 품목관세가 부과될 경우의 시나리오이다.

미국 입장에선 일본, EU와 관세협상을 완료한 만큼, 다소 느긋한 상황이다. 따라서 한미 협상에서 목이 말라 샘을 파야하는 쪽은 한국일 수 밖에 없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4일 오전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릴 예정이였던 미국 재무장관과 무역대표부(USTR)와 예정되어 있던 통상협상이 취소돼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귀빈실을 나서고 있다. [사진=뉴시스/공동취재]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4일 오전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릴 예정이였던 미국 재무장관과 무역대표부(USTR)와 예정되어 있던 통상협상이 취소돼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귀빈실을 나서고 있다. [사진=뉴시스/공동취재]

그런데 한·미 양국간 협상이 이처럼 지지부진한 가장 큰 이유는 뭘까. 

통상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한국이 제시한 협상 패키지가 미국 측을 충분히 만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한국 정부는 '1000억 달러+α(알파)' 규모로 국내 대기업의 대미 투자 계획을 미국 측에 제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미국이 요구한 규모는 물론 일본과 EU가 각각 미국과 합의한 투자 규모와도 큰 차이가 있어 한국 측의 제안을 미국이 수용할지 미지수이다.

실제 EU는 7500억 달러(약 1038조원) 규모의 미국산 에너지와 막대한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구매하는 한편, 기존 투자 외에 6000억 달러(약 830조7000억원)를 추가로 미국에 투자하기로 했다.

앞서 일본도 미국에 5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하고 미국 항공기 제조업체인 보잉 항공기 100대 구입,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가스관 건설 프로젝트를 위한 미·일 조인트 벤처 설립 등도 합의했다.

상대적으로 경제 규모가 작은 한국이 일본이나 EU 같은 대규모 투자를 하긴 쉽지 않겠지만, 한국 측이 제시한 1000억 달러는 많이 부족해 보인다.

이에 따라 한국 측은 ‘조선분야 협력’이라는 히든 카드로 미국 측을 설득하겠다는 전략을 세워놓고 있다. 이와함께 쌀 쇠고기 등 농축산물 시장 추가 개방 등도 협상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막판 올코트 프레싱으로 관세 협상 타결을 이뤄내겠다고 벼르고 있다. 

협상 시한 마지막 날인 오는 31일 구윤철 경제부총리가 미국 워싱턴DC에서 베선트 재무장관과 최종 담판을 벌일 예정이다. 조현 외교부 장관도 비슷한 시기에 미국으로 건너와 카운터파트인 루비오 국무장관과 같은 날 만나 한미간 무역협상을 측면 지원할 계획이다.

28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 인근에서 열린 한-미 상호관세 협상 농축산물 개방 반대 전국농축산인 결의대회에서 한국농축산연합회와 한국종합농업단체협의회, 축산관련단체협의회, 농민의 길 등 농민단체 소속 단체장들과 농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28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 인근에서 열린 한-미 상호관세 협상 농축산물 개방 반대 전국농축산인 결의대회에서 한국농축산연합회와 한국종합농업단체협의회, 축산관련단체협의회, 농민의 길 등 농민단체 소속 단체장들과 농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통상 전문가들은 그러나 이 같은 경제적인 패키지 뿐만 아니라, 국제 정치적인 변수가 양국 간 관세 협상에 비중있게 작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 정계는 새롭게 출범한 이재명 정부가 중국을 견제하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을 과연 얼마나 지지하는 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셰셰’ 발언으로 상징되는 친중 (親中) 기조가 영 미덥지 않다는 눈치이다. 

공화당 소속 브라이언 매스트 미국 하원 외교위원장은 “(한국의) 일부 사람들은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배를 모두 떠받치려 하고, 우리가 더 큰 강조와 초점을 두고 있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에 대한 균형·견제 역할을 넘어서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양쪽 모두를 만족시키려 하면 결국 모두가 피해를 입을 것이고, 미국은 이를 모욕(slight)으로 여길 것”이라며 미·중 패권 경쟁 속 우방국인 한국이 중국 견제에 있어서 분명한 입장을 취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해석됐다.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뒤 지금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외교·안보 분야 조언을 하는 로버트 오브라이언 미국글로벌전략 회장도 국내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이재명 정부의 중국·러시아와의 실용 외교 전개 방향을 면밀히 지켜보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한국 측에서 미국에 오해를 살만한 시그널을 보내는 발언과 행동이 잇달았다.

이재명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참석 검토 건도 그중 하나이다. 이 대통령이 당선 뒤 트럼프 대통령과의 만남을 갖기도 전에 전승절 행사에 참석해 시진핑 주석을 먼저 만난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트럼프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것이다.

김민석 국무총리가 최근 대한상의 하계포럼에서 한 기조연설도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다. 김 총리는 이날 연설에서 "우리나라에 가장 부족한 것이 제국적 사고"라며 "저도 과거 학생운동하고 제국적 국제질서를 비판했던 사람이지만 때로는 대한민국을 미국의 51번째 주(州)라고 하는 비판이 아니라, 미국이 한국의 14번째 자치단체라고 보는 공격적 관점을 가질 때가 됐다"고 말했다. 김 총리가 어떤 의도로 한 발언인 지 명확하진 않지만, 미국 입장에선 그렇게 기분좋게 들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미 관세협상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미국을 찾은 일부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이 반(反)트럼프 의원이 주최한 행사에 참석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는 관세협상을 지원하기는커녕 되레 협상의 걸림돌 역할을 한 게 아니냐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최근 특검이 오산 주한미군기지를 압수수색한데 대해 트럼프 행정부가 발끈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이 사건이 관세 협상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카드를 경제적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폭넓게 활용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최근 발발한 태국과 캄보디아 전쟁에서도 양측에 휴전을 요구하면서 관세 카드를 꺼내들었다. 전직 대통령 자이르 보우소나루를 석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브라질에 50% 관세를 부과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관세협상은 경제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정치적 요소들도 함께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만큼, 협상이 완전하게 타결되기 전까지 쓸데없이 트럼프 행정부를 자극할 말과 행동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충고했다. 이들은 “지금은 미국과의 통상·안보 협상 타결이 국가적으로 가장 중요한 시기‘라며 ”미국이 미심쩍어하는 ‘친중’ 이미지를 확실히 불식하는 일이 긴요하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