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안= 송서영 기자]전기차를 단순한 이동 수단으로 보던 시선에서 벗어나, ‘머무는 공간’, 나아가 ‘삶의 새로운 확장’으로 바라본 이가 있다. ‘제4의 공간’의 저자 조현민 대표는 “전기차는 운전하지 않을 때도 의미 있는 공간이 된다”고 말한다.
그는 어느 날 밤, 읽던 책을 차에 두고 와 다시 가지러 갔다가, 유난히 아늑하게 느껴진 차 안에서 책장을 펼친 뒤 몇 시간이 훌쩍 지나 있는 걸 보고서 깨달았다고 한다.
“에어컨을 틀고 분위기 있는 음악을 들으며 조용히 앉아 있으니 ‘여기가 내 하루 중 가장 집중할 수 있는 장소일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경험을 시작으로, 전기차는 그에게 서재이자 사무실이 되었고, 이동만이 아닌 몰입의 공간이 되었다.
조 작가는 한국의 지하주차장이 미국의 ‘개러지’처럼 활용될 수 있다고 말한다. 전기차는 냉난방이 가능하고 조용하며 전력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어, 주차장이 곧 개인 작업실이자 쉼터로 확장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공간 문해력’이라고 표현하며, “공간을 소유하는 것보다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더 중요한 시대”라고 강조한다.
공간 문해력을 확대할 열쇠는 자율주행이다. 자율주행이 본격화되면, 자동차는 운전 중심에서 목적 중심 공간으로 바뀐다. “차 안에서 운동도 하고, 회의도 하고, 명상도 하는 시대가 올 겁니다.” 이는 단순한 기술 변화가 아닌 삶의 방식 자체가 전환되는 신호라고 그는 본다.
전기차는 도시의 구조와 부동산 가치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자율주행이 도입되면 이동시간이 부담이 되지 않으니 굳이 도심에 몰려 살 필요도 없어질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는 지방 소멸 해소나 교외 주거 확산의 해답으로도 전기차를 주목한다.
그도 현재 서울 외 지역에 거주하며 서울로 출퇴근을 하고 있지만 전기차로 이동하는 시간이 오히려 즐겁게 느껴져 수도권 진입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무엇보다 조현민 작가는 전기차 이용 문화의 전환을 강조한다. 전기차 충전 구역에 대한 갈등을 두고 “충전은 나만의 권리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써야 하는 자원이다”며 “‘차지(Charge)할 때만 차지하기’ 같은 캠페인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법보다 공감과 상식이 우선이라며, 전기차 문화 확산의 다리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아이폰의 도입기를 떠올리며 전기차의 미래를 예견했다. “처음 스마트폰이 등장했을 때 이용자들이 ‘유별나다’는 시선을 보냈지만 결국 삶을 바꿨듯, 전기차 역시 대중화되는 전환점만 주어진다면, 한국 사회에 또 한 번의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본다.”
그는 “전기차는 대한민국이 세계 1등을 노릴 수 있는 하나의 유력한 경로”라고 강조한다. 특히 “수도권 과밀 문제는 물론, 고령 운전자의 이동 편의성 향상에도 전기차가 해답이 될 수 있는 만큼,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접어든 한국 사회에서 더 값진 효과를 낼 것”이라고 말한다. 아래는 조현민 저자의 일문일답.
# 전기차가 단순한 교통수단을 넘어 ‘삶의 공간’, '제4의 공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 전기차가 공간으로 보이기 시작한 건 ‘움직이지 않을 때’였다. 어느 날 밤, 읽고 있던 책을 차에 두고 온 적이 있었다. 책을 가지러 지하주차장에 내려갔다가, 그날 따라 차 속이 유난히 아늑하게 느껴졌다.
전기차 안에 앉아 에어컨을 틀고, 분위기 있는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잠시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 안에서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어느새 몇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여기가 내 하루 중 가장 집중할 수 있는 장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로 전기차를 단지 이동수단이 아닌, ‘머무는 공간’이자 ‘하루 중 가장 조용하게 회복되는 공간’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책에서도 강조한 바 있듯, 지금은 공간 그 자체보다도 그 공간을 어떻게 읽고 활용하느냐가 더 중요해진 시대다. 이를 ‘공간 문해력’이라고 부른다. 전기차는 그 문해력을 시험하는 새로운 유형의 공간이며, 움직이지 않을 때에도 새로운 의미가 생긴다.
그 안에서 우리는 생산하고, 쉬고, 교류할 수도 있다. 전기차는 제1의 공간인 집, 제2의 공간인 회사, 제3의 공간인 커뮤니티·여가 공간을 일정 부분 모두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공간으로 기능한다.
# ‘움직이는 서재’, ‘바퀴 달린 집’이라는 표현이 인상 깊습니다. 실제로 사용자들은 어떤 방식으로 전기차를 활용하고 있나요?
▲ 전기차 사용자들은 점점 자동차를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닌 ‘머물 수 있는 공간’, 혹은 ‘쓸 수 있는 공간’으로 인식하고 있다.
예를 들어 차박 캠퍼들은 전기차를 침실이나 이동형 주방으로 활용하고, 직장인들은 지하주차장 차량 안에서 조용히 노트북을 펼쳐 문서를 작성하거나 화상회의를 진행한다.
전기차가 공간으로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한 기능 확장 때문만은 아니다. 이는 한국 사회의 도시 구조와도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미국에서는 ‘개러지’가 차량 보관을 넘어 창의적 작업의 거점으로 쓰이지만, 한국은 아파트 중심 사회로 개러지 문화가 없다. 대신 전기차와 지하주차장이 그 역할을 대체할 수 있는 매개공간으로 떠오르고 있다.
전기차의 도입으로 지하주차장은 단순한 주차 공간에서 충전 공간으로 확장되었고, 전기차 내부는 몰입 가능한 나만의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실제로 책 집필 당시 전기차 안에서 음악을 들으며 원고를 다듬고 기획안을 썼다. 전기차 안에 머물렀던 그 순간은 도시생활 속에서 그에게 ‘나만의 개러지’가 되었다. 이는 단순한 공간 활용 변화가 아닌, 도시에 사는 방식의 재구성과 공간 문해력의 진화로 이어지고 있다.
# ‘제4의 공간’은 단순히 물리적 개념이 아니라 사회적 변화와도 맞닿아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 기존에는 공간이 집, 일터, 여가공간 등 물리적 위치로 정의되었다. 하지만 전기차는 이동 중이든 정차 중이든, 그 자체로 사회적 경험이 일어나는 무대가 되고 있다.
대표적인 변화는 충전구역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협업이다. 충전 후 차를 빼지 않아 생기는 다툼, 내연기관차가 충전구역을 점유하는 문제 등은 단순한 공간 부족이 아니라, 공간에 대한 인식 차이, 즉 공간 문해력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반면, 아파트 단지 주민들이 충전 순서를 공유하거나, 전기요금 정보를 나누며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기도 한다. 전기차는 그렇게 사회적 규범을 재구성하는 촉매제가 되고 있다.
‘제4의 공간’은 새로운 공간의 추가가 아닌, 기존 공간을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이며, 이는 기술보다 사람이 먼저 주도해야 한다.
# 자율주행 기술이 본격화되면 전기차의 공간적 의미는 어떻게 달라질까요?
▲ 자율주행이 본격화되면 자동차 내부는 운전 중심 공간이 아니라 목적 중심 공간으로 재구성될 것이다.
핸들 대신 책상, 계기판 대신 디스플레이, 운전석 대신 회의 공간이 들어서며 공간 자체의 구조가 달라진다.
앞으로는 ‘운전 중 시간’이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회의, 수면, 독서, 의료행위가 가능한 가치 있는 시간으로 전환될 수 있다.
출퇴근 시간 동안 AI 코칭 수업을 듣거나 VR 피트니스 콘텐츠를 즐기는 일도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자율주행차가 공간 문해력의 스펙트럼을 폭발적으로 확장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본다.
# 전기차를 둘러싼 오해나 고정관념 중 꼭 바로잡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 가장 흔한 오해는 “충전은 불편하다”는 인식이다. 이는 내연기관차의 주유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결과다. 전기차는 주유소에 갈 필요가 없는 차량이다.
수면 중, 쇼핑 중, 업무 중 등 생활 동선 안에서 충전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충전은 기다림이 아니라, 삶에 녹아드는 루틴이다.
또한 “겨울엔 못 쓴다”, “배터리가 위험하다”는 말도 기술 발전을 반영하지 못한 낡은 인식이다. 히트펌프, 배터리 열관리, 충전속도 향상 등으로 대부분의 문제는 이미 해결됐고, 사용자 만족도도 높다.
전기차는 불편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간 감각과 생활 동선을 요구하는 기기다. 틈틈이 스마트폰을 충전하듯, 전기차도 사용하는 방식에 익숙해지는 과정을 필요로 한다.
# 전기차가 도시 구조나 부동산 가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언급하셨습니다. 앞으로 어떤 변화가 예상되나요?
▲ 전기차의 확산은 아직 도시 구조를 완전히 바꾸지는 않았지만, 생활 거점 선택 기준에는 뚜렷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파트 분양 시장에서는 전기차 충전기 유무가 실질적인 경쟁 요소가 되었으며, 충전 인프라가 잘 갖춰진 단지는 실거주 만족도와 향후 시세 측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지하주차장의 기능도 바뀌고 있다. 차량 보관용 수동 공간에서 충전과 콘텐츠 소비, 간단한 업무가 가능한 ‘일상형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복합문화공간이나 재생 주유소 프로젝트에서도 충전기, 소파, 전시 콘텐츠, 휴식 공간이 결합된 형태의 시범적 시도가 진행 중이다.
더 큰 변화는 자율주행 기술이 본격화될 때 나타날 수 있다.
이동 피로가 줄고 이동 시간이 효율화되면 도심에 거주할 필요성이 낮아진다. ‘역세권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 공간의 경험 가능성이 부동산 가치 기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
궁극적으로 전기차와 자율주행 기술은 도시 공간에 대한 인식 변화를 유도하며, 공간 문해력이 곧 자산이 되는 시대를 열고 있다.
# 현재 한국의 전기차 정책 및 인프라 수준에 대해 어떤 점이 가장 시급히 개선되어야 한다고 보시나요?
▲ 가장 시급한 과제는 단순한 충전기 수나 보조금 같은 양적 확산이 아니라, 사용자 문화를 설계하고 정착시키는 일이다.
지금까지는 충전기 숫자가 정책 성과로 여겨졌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함께 나누고 사용하는가’에 대한 사회적 규칙과 인식이다.
예를 들어, 완충 후 차량을 이동하지 않거나, 내연기관차가 충전구역에 주차하는 문제는 기술이 아닌 사람의 행동에서 비롯된다. 이런 문제는 단속이나 과태료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바로 ‘차지(Charge)할 때만 차지하기’ 같은 대국민 캠페인을 통해 인식 전환과 실천을 유도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슬로건이 아니라, 전기차 시대에 맞는 공유 윤리와 공간 에티켓을 확산시키는 문화 기반 정책이다.
또 하나 중요한 과제는 충전 플랫폼 간 호환성 문제다. 현재는 각기 다른 앱, 카드, 결제 방식이 사용자에게 혼란을 주고 있고, 이로 인해 충전 접근성이 떨어지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처럼 하나의 ID로 다양한 충전소를 통합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개방형 충전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궁극적으로는 충전기 숫자를 늘리는 것만이 해답이 아니라, ‘어떤 공간에서 어떻게 머무르고 나누는가’에 대한 문화 설계가 병행돼야 하며, 이는 단지 EV 사용의 문제를 넘어, 공공 공간을 어떻게 공동으로 이해하고 사용하는가에 대한 사회 전체의 질문이기도 하다.
대담 = 전규열 대표이사 겸 편집인(경영학 박사)
정리ㆍ사진 = 송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