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안= 이태영 기자]사람의 손길이 사라진 공장. 불이 꺼진 채, 로봇과 인공지능(AI)이 24시간 쉬지 않고 생산 라인을 돌린다. 제조업의 미래가 ‘빛없는 공장’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다크팩토리(Dark Factory)’가 글로벌 제조업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단순한 자동화를 넘어 AI가 생산 전체를 통제·학습하며, 인간의 개입 없이 공정을 최적화하는 완전 무인화 시대가 열리고 있다. 뉴시안은 ‘다크팩토리’ 시대, 현주소를 점검해 봤다. /편집자주
“AI는 이제 지각과 생성 단계를 넘어 물리적 세계에서 인지하고 계획하며 행동하는 ‘피지컬 AI’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움직이는 모든 것은 결국 로봇화되고, 그 속에 AI가 내재될 것이다.”
올 초 세계 최대 가전전시회인 미국의 CES 2025 기조연설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던진 화두다. 이 말은 진즉부터 현실화되고 있다.
밤새 불빛이 꺼지지 않는 공장. 그러나 그 불빛 아래에서 일하는 사람은 없다. 로봇팔이 쉼 없이 움직이고, AI가 공정의 속도와 온도를 계산한다. 작업자의 손길은 사라졌지만, 생산라인은 그 어느 때보다 정확하고 빠르다.
‘다크팩토리(Dark Factory)’의 물결은 이제 한국 산업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하지만 기술혁신의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바뀌고 있는 것은 ‘일의 형태’와 ‘노동의 의미’다. 사람 없는 생산라인은 과연 일자리를 빼앗는가, 아니면 새로운 일을 만들어내는가.
# 자동화가 몰고 온 인력의 지각변동
경기도 화성의 한 자동차 부품업체는 올해 초부터 AI 기반 생산 시스템을 도입했다. 기계가 실시간으로 센서 데이터를 분석해 불량률을 감지하고, 로봇이 스스로 부품 교체를 진행한다. 이 회사의 생산라인에는 더 이상 야간 교대 근무자가 없다. 그 대신 ‘공정 데이터 엔지니어’와 ‘로봇 프로그래머’가 새로 고용됐다.
자동차 부품업체 생산기술팀장은 “작업자는 줄었지만, 분석 인력과 제어 기술자는 오히려 늘었다”고 말했다.
글로벌 IT 시장 조사 기관 스타티스타(Statista)에 따르면, AI 로보틱스 시장의 규모는 2020년 약 50억달러에서 2025년 225억달러로 350% 성장했다. 향후 5년간 예상되는 연평균 성장률은 23.3%, 2030년에는 약 643억달러(한화 약 85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제조업 자동화율은 2019년 45%에서 2024년 61%로 상승했다. 동시에 단순조립·포장직은 5년 새 28% 감소한 반면, 로봇정비·AI운용 관련 직무는 2.7배 증가했다. ‘일자리 감소’보다는 ‘직무의 재편’이 더 정확한 표현이란 걸 증명한다.
# 일터의 중심이 ‘공정’에서 ‘데이터’로
다크팩토리가 등장한 이후, 노동의 공간은 물리적 현장보다 디지털 제어실에 가깝다.
AI는 센서로 수집한 공정 데이터를 분석해 이상 신호를 탐지하고, 인간은 이를 모니터링하며 보완한다. 현장은 점점 ‘기계의 공간’으로, 사무실은 ‘데이터의 공장’으로 변모하고 있다.
LG CNS는 올해 ‘AI 기반 스마트팩토리 플랫폼’을 통해 설비 상태를 예측·분석하는 자율진단 시스템을 선보였다. 과거 한 명이 3대의 기계를 관리하던 구조에서, 이제는 한 명이 30대의 설비를 원격으로 제어할 수 있다고 한다.
AI가 기계를 돌리고, 사람은 AI를 돌리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는 노동 강도의 완화가 아니라, 노동의 본질이 지식 기반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다.
# 기술이 일자리 ‘대체’하지 않는다, ‘재구성’한다
자동화는 늘 ‘일자리 파괴자’로 불려왔다. 그러나 실제로는 직무 재구성(Reconfiguration)의 방향으로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로봇이 단순노동을 대신하면, 인간은 관리·설계·해석 등 상위 기능에 집중하게 된다.
한국고용정보원 분석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제조업 내 ‘AI·로봇 융합 인력’ 수요는 5년 전 대비 180% 증가했다.
정부도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K-디지털 트레이닝’과 ‘스마트제조 인재양성사업’을 통해 2027년까지 50만 명의 디지털 제조인력을 양성할 계획이다.
산업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기계는 노동을 대체하지만, 인간은 직무를 창조한다"며 "결국 기술은 일자리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일의 의미와 구조를 바꾸는 과정이기도 하다"고 짚었다.
# “로봇과 일하는 시대, 인간의 일은 무엇인가”
다크팩토리의 확산은 단순히 산업의 효율성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제 산업의 화두는 ‘기계가 못 하는 인간의 영역’을 찾아내는 일이다. 창의적 설계, 윤리적 판단, 감성적 소통 같은 비정량적 능력이 새로운 경쟁력이 되고 있다.
산업계는 “산업혁명 5.0은 효율의 시대가 아니라 의미의 시대다. 인간이 왜 일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기술보다 더 중요해졌다”고 지적했다.
특히 "산업 현장은 빠르게 ‘기계 중심 구조’로 이동하고 있지만, 그 안의 인간은 더 고도화된 존재로 진화하고 있다"며 "AI와 로봇이 생산을 담당하는 시대, 사람은 의미와 창의의 중심으로 남는 존재로 거듭난다"고 강조했다.
# 일의 종말이 아니라, 일의 진화
인공지능(AI) 전환이라는 복합적 도전에 직면한 한국 제조업이 피지컬 AI(Physical AI)를 통해 위기를 기회로 전환해야 한다는 제안도 주목된다.
국회미래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연구보고서에서 이승환 연구위원은 “피지컬 AI 시대는 한국 제조업에 위기인 동시에 기회”라면서 “피지컬 AI 시대의 제조업 혁신은 기술적 도전을 넘어 국가 미래 경쟁력을 좌우하는 전략적 과제임을 인식해 범국가적 역량을 결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람 없는 공장’은 결코 ‘사람이 필요 없는 산업’을 뜻하지 않는다. 다크팩토리가 상징하는 것은 효율이 아니라 인간의 재배치, 기술과 인간의 역할 재설정이라는 게 산업계의 중론이다.
산업계는 “노동은 이제 기계를 대신해 땀 흘리는 일이 아니라, 기계와 함께 더 나은 세상을 설계하는 일이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KAIST 출신 한동욱 전주대 교수는 "AI가 공장을 움직이는 시대, 결국 그 공장을 설계하고 책임지는 주체는 여전히 인간"이라며 "다크팩토리는 효율이 아니라 ‘인간의 재배치’, 즉 인간의 존재 이유를 다시 묻는 실험장"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