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 꺼진 공장에서 로봇 팔이 부품을 집어 들고, AI가 실시간으로 생산 계획을 수정한다. 그 어둠 속에서 더 이상 인간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부재의 공간에서 산업은 다시 인간을 소환하기 시작했다. ‘일의 소멸’이 아니라 ‘일의 전환’이다. 인간은 감독자·설계자·의미 관리자 등 해석적 역할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이태영 기자]
불이 꺼진 공장에서 로봇 팔이 부품을 집어 들고, AI가 실시간으로 생산 계획을 수정한다. 그 어둠 속에서 더 이상 인간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부재의 공간에서 산업은 다시 인간을 소환하기 시작했다. ‘일의 소멸’이 아니라 ‘일의 전환’이다. 인간은 감독자·설계자·의미 관리자 등 해석적 역할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이태영 기자]

[뉴시안= 이태영 기자]사람의 손길이 사라진 공장. 불이 꺼진 채, 로봇과 인공지능(AI)이 24시간 쉬지 않고 생산 라인을 돌린다. 제조업의 미래가 ‘빛없는 공장’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다크팩토리(Dark Factory)’가 글로벌 제조업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단순한 자동화를 넘어 AI가 생산 전체를 통제·학습하며, 인간의 개입 없이 공정을 최적화하는 완전 무인화 시대가 열리고 있다. 뉴시안은 ‘다크팩토리’ 시대, 현주소를 점검해 봤다. /편집자주

 

# 인간이 사라진 공장…그러나 산업은 다시 인간을 호출한다

불을 끈 생산 라인 위로 로봇 팔이 부품을 집어 올리고, AI 시스템이 공정 데이터를 분석해 스스로 계획을 수정한다.

표면적으로 인간은 필요 없어 보인다. 그러나 산업이 놓치지 않고 묻는 질문은 오히려 분명해졌다. 자동화의 끝은 인간의 종말이 아니라 인간의 재시작이다.

다크팩토리는 인간의 몸을 공정에서 떼어냈지만, 인간의 ‘머리’와 ‘마음’은 더 깊은 영역으로 이동시켰다. 기술이 “정답”을 찾아내는 동안, 인간은 “이 일이 왜 의미가 있는가”를 해석하는 존재가 되었다.

한 산업 연구자는 “다크팩토리는 인간을 밀어낸 것이 아니라, 인간의 위치를 더 높은 층위로 옮겨놓았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산업은 감독자, 설계자, 윤리 관리자, 의미 해석자 같은 ‘해석 중심 노동’을 핵심 역할로 재정의하기 시작했다.

# AI의 정확성이 높아질수록, 산업은 인간의 감정을 찾는다

AI는 알고리즘으로 움직이지만, 인간은 감정으로 일한다. 이 차이가 앞으로 산업 경쟁력의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MIT 슬론경영대학원은 “2025년 이후 기업 경쟁력은 기술 역량보다 공감력(Empathy)과 창의적 판단력이 좌우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기계는 문제를 풀지만, 인간은 가치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기계가 모사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자산인 '감정, 윤리, 관계'는 이제 새로운 산업 자원(Economic Emotion Resource)으로 부상한다.

국내 기업들도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AI 의사결정 과정에 인간의 윤리 검증을 반영하는 ‘AI 윤리심의위원회’를 신설했다. 현대중공업은 로봇이 공정을 수행하고, 인간이 ‘위험 예지·정서 안정’ 역할을 담당하는 AI-인간 협업 라인을 실험 중이다.

산업 관계자는 “산업의 중심축은 정확성에서 가치성으로 넘어가고 있다”며 “AI가 일을 잘할수록 인간의 감정·윤리·관계는 오히려 산업의 마지막 자원이 된다”고 강조했다.

지난 7월 16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3회 농식품테크 스타트업 창업박람회'에서 축산 가공에 사용되는 로봇이 전시되어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 7월 16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3회 농식품테크 스타트업 창업박람회'에서 축산 가공에 사용되는 로봇이 전시되어 있다. [사진=뉴시스]

# 노동의 재편…인간은 ‘제조자’에서 ‘해석자’로

자동화 확산은 일자리 감소 논란을 불러온다.

한국고용정보원은 "2035년까지 전체 직업의 43%가 AI·로봇에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지만 “사라지는 직업보다 새롭게 생겨나는 직업이 더 많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 산업 전반에서 ‘해석 중심 노동’ 직종이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로봇 엔지니어 ▲AI 윤리감독관 ▲데이터 큐레이터 ▲산업 서비스 디자이너 등 과거엔 존재하지 않았던 직업들이다.

기술은 인간의 일을 대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인간의 사고와 산업의 역할을 확장시키는 또 다른 생태계를 만들어내고 있다. 노동은 ‘손의 시대’를 지나 ‘두뇌의 시대’, 그리고 ‘가치의 시대’로 이동하고 있다.

# 기술이 앞서갈수록 윤리는 뒤처진다

AI가 공정에서 잘못된 판단을 내려 제품 불량이 발생했다면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알고리즘인가, 개발자인가, 경영자인가?

이 질문은 법률보다 더 오래된 질문, 인간의 책임과 도덕의 문제다. AI의 자율성이 커질수록 인간의 통제력은 약해지고, 결정 주체는 모호해진다.

서울대 기술윤리연구소는 지금의 산업을 “도덕적 공백의 시대”라고 설명한다.

기술이 너무 빨라서 윤리가 따라가기 어렵고, 윤리가 너무 느려서 기술을 견제하기 어렵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윤리의 느림은 산업을 지키는 마지막 브레이크다”라고 강조한다.

EU는 이미 AI 윤리를 법으로 고정했고, 한국도 2026년까지 표준 마련에 나섰다. 다크팩토리가 완성될수록, 윤리의 울타리는 더 두꺼워져야 한다.

# 다크팩토리가 다시 요구하는 것…산업의 ‘철학’

다크팩토리는 더 이상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산업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그 철학을 묻는 질문에 가깝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이 흐름을 ‘테크노 휴머니즘(Techno-Humanism)’이라고 부른다. 기계는 인간의 대체물이 아니라 확장기라는 뜻이다.

전주대 한동욱 교수는 “생산이 완벽해질수록, 산업은 오히려 인간의 불완전함을 필요로 한다”고 짚었다. 이 말은 다크팩토리 시대가 끝내 인간의 마음을 중심에 놓고 돌아갈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피지컬AI실증 단지 조감도. [이미지=전북특별자치도]
피지컬AI실증 단지 조감도. [이미지=전북특별자치도]

# 지역에서 시작된 또 하나의 실험: 전북의 피지컬 AI

다크팩토리 전환은 글로벌 기업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국내에서도 지역 산업의 구조 재편이 본격 시작됐다.

전북특별자치도가 추진 중인 피지컬 AI 실증사업은 지역 제조업을 AI·로봇·센서로 재설계하는 한국형 다크팩토리 실험장이다.

자동차, 식품, 소부장이 뿌리 산업으로 남아 있는 전북은 AI 기반 공정 고도화와 무인 자동화 실증을 통해 “지역 산업 → AI 산업으로의 전환 모델”을 시험 중이다. 현재 사업은 행정안전부 중앙투자심사의 마지막 단계를 남겨두고 있으며, 성공 시 1조 원대 본사업으로 이어지는 국가급 프로젝트의 도약대가 된다.

실증 내용 역시 단순하지 않다. ▲실제 생산라인에서 AI 공정 최적화 테스트, ▲로봇·센서 융합 자동화, ▲불을 끄고도 돌아가는 공장의 가능성 검증이 숙제다.

전북이 한국 제조업의 ‘AI 전환 전초기지’를 넘어 한국형 다크팩토리 모델의 첫 페이지를 쓰는 지역이 될지 주목된다.

# 인간을 잃은 기술은 결국 산업을 잃는다

다크팩토리 시대는 인간을 밀어낸 시대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을 다시 산업의 중심으로 데려오는 시대다.

기계는 일을 하지만, 인간은 그 일의 의미를 만든다. 기계가 공장을 돌아가게 한다면, 인간은 산업을 돌아가게 한다.

다크팩토리는,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부재 속에서 인간의 필요를 증명하는 공간이 되고 있다. 다크팩토리가 남긴 마지막 메시지는 “기계가 완벽해질수록, 인간은 더욱 필요해진다”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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