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 관련 혐의로 재판 참석하는 최순실(왼쪽)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 (사진=뉴시스)
뇌물 관련 혐의로 재판 참석하는 최순실(왼쪽)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 (사진=뉴시스)

[뉴시안=김지형 기자] 요한계시록 12장.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입은 여자가 있는데 그 발아래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 두 별의 면류관을 썼더라.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부르짖더라.”...(중략)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1987년 삼성그룹의 창업주 호암 고 이병철 선대회장이 타계한 뒤 9년쯤 사건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95년 대국민성명을 통해 “대통령 재임 중 기업체로부터 약 5000억원을 받아 사용하고 1700억원 가량이 남았다”고 눈시울을 적시며 공개 사과했고, 통치자금 수사의 초점이 ‘정경유착’으로 급물살을 타면서 삼성 등 34개 재벌총수들이 검찰로부터 전격 소환되게 된다.

재계로 불똥이 튀면서 이건희 회장도 김영삼 정부 말기인 1996년 전두환ㆍ노태우 비자금 사건 관련 검찰의 포토라인에 서게 된다. 수사를 받던 재계 총수 중 이 회장의 표정은 압권이었다. 왜 재수 없게 내가 찍혔냐는 불만이 얼굴에 역력했기 때문이다.

당시 이 회장은 10시간 넘는 검찰의 강도 높은 조사에서 처음 대통령에 바친 비자금이 80억원 정도였다고 버텼지만, 결국 제공뇌물이 250억원 정도였다고 실토했다. 이 회장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뇌물공여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고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삼성 등 재계 비자금 조사 후 경제도 흔들려

아버지가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으면서 검찰과 법정을 들락날락 하는 사이,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그룹 계열사 제일모직과의 합병을 거쳐 지금은 삼성물산으로 통합된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를 초저가로 편법 발행하는 등 당시 조용히 승계 작업을 진행했다.

1996년 전환사채 헐값발행 건은 삼성가가 증여세 등을 제대로 내지 않고 편법으로 재산을 물려주면서 승계와 지배구조체제를 강화했다는 사회적 지탄을 받았다. 삼성에버랜드 이사회가 이건희 회장의 4남매와 조카에게 약 100억원 어치의 전환사채를 7,700원에 발행했기 때문이다.

그 중 이재용 부회장(당시 전무)에 대한 발행이 전환사채의 약 97%를 차지했다. 이 부회장은 이때 일정액의 전환사채를 주식으로 전환하여 삼성에버랜드의 최대주주(31.9%)가 됐다. 이후 1년여가 지난 1997년 12월 IMF 경제위기가 터졌다. 원ㆍ달러 환율이 요동치면서 수많은 회사들이 부도 및 경영위기를 겪었고 실물경제가 악화되면서 대량해고, 실업률 급등 등 경제는 좌초됐고 중산층이 무너졌다.

에버랜드전경(사진=뉴시스)
용인에 위치한 에버랜드 전경(사진=뉴시스)

1998년 이 회장의 가장 큰 실패로 거론되고 있는 삼성의 자동차사업도 부도를 맞았다. 재벌들의 대마불사식 경영으로 촉발된 IMF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 김대중 정부는 집권 이후 삼성자동차와 대우전자의 빅딜을 추진했으나 무산됐다.

이 충격은 일파만파였다. 국내외 언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위기를 고조시켰고 원ㆍ달러 환율은 수직상승했다. 결국 1999년 이 회장은 삼성자동차의 법정관리를 신청했고, 이를 정리하는 몫은 정부가 됐다. 에버랜드 편법 전환사채발행과 이재용에 대한 불법승계 시도가 발생한지 약 3년여 동안 벌어진 일이다. 삼성그룹은 1995년 삼성자동차를 설립했지만, 시장에 제대로 뿌리도 내리지 못한 채 2000년 프랑스 르노에 지분을 전량 매각했다.

참고로 제일모직은 2014년 7월 삼성SDI로 흡수합병됐고, 이후 제일모직 사명은 당시 삼성에버랜드에서 이어받았다. 이후 2014년 12월 제일모직(구 삼성에버랜드)은 상장됐고 이듬해 9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했다. 삼성에버랜드의 최대주주였던 이재용 부회장은 제일모직의 상장과정에서 약 3조 2,000억원의 막대한 평가차익을 거두게 된다. 

◆삼성특검 당시 서브프라임 모기지사태 터져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삼성에버랜드 편법 전환사채 발행 이후 10년쯤 지난 2006년, 삼성법무실장 출신인 김용철 변호사가 자신이 50여억원의 비자금을 관리해왔다고 폭로하면서 삼성일가는 또 한 차례 홍역을 겪었다.

이건희 회장을 포함해 이재용 부회장, 홍라희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까지 검찰의 조사를 받았다. 삼성그룹의 불법비자금 조성을 포함해 차명계좌ㆍ분식회계ㆍ세금포탈ㆍ돈세탁ㆍ불법승계 등을 수사한 삼성특검이다.

김용철 변호사는 홍라희 관장이 그룹 차원에서 조성된 비자금으로 고가미술품을 구입하는 등 돈세탁을 시도했다면서, 이는 모두 구조조정본부(2017년 해체된 미래전략실)가 관리하는 비자금이었다고 주장, 파문이 확산되기도 했다.

사법부는 선대회장이 물려준 재산이라는 삼성의 해명을 받아들여 조세 포탈 혐의로만 이건희 회장을 기소했고, 이 회장은 불구속상태에서 재판을 받다가 2008년 조세포탈 혐의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의 처분을 받게 된다. 당시 특검에는 불법승계및비자금조성 등과 관련해 이재용 부회장과 홍라희 관장까지 출두하며 조사를 받았다. 하지만 대부분 증거불충분 등으로 불기소처분혹은무혐의 처리됐다.

검찰수가가 시작된 지 약 2년만이다. 당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는 등 전 세계 증시가 패닉에 빠졌고, 국내 시장과 당국도 그 충격으로 정신이 없었을 때다. 2007년 미국으로부터 촉발된 신용경색은 전 세계를 휩쓸었다. 이후 2009년부터~2013년까지 글로벌 경제는 최악의 경기침체ㆍ유가폭등ㆍ하이퍼인플레이션ㆍ애그플레이션 등을 겪었다. 구조조정 여파로 실업률이 급등했고 저성장 암초를 맞았다.

리먼브러더스 파산 여파로 세계 최대보험사 AIG도 구제금융을 받기도 했다.(사진=뉴시스)
리먼브러더스 파산 여파로 세계 최대보험사 AIG도 구제금융을 받기도 했다.(사진=뉴시스)

이재용 부회장 위기없이 복귀가능할까

이러한 전세계 금융위기에서도 선전한 삼성전자는 이건희 회장의 지난 2010년 경영일선 복귀에 일등공신이 됐다. 이 회장은 1년여간 공백기를 같다 이명박 정권 초기 특별 사면ㆍ복권됐다. 언론 등을 통해 조성된 이 회장에 대한 조기 등판론 때문이었다.

2007년 삼성특검이 터진 뒤 10년쯤 되는 시기 이 부회장은 청와대 비선실세로 지목된 ‘박근혜ㆍ최순실게이트’에 휘말리면서 2017년 2월 구속됐다가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지난 2월 석방됐다.

구속된 후 353일 만에 풀려난 이재용 부회장이 진정 원하는 것은 뭘까. 경영복귀를 위해선 어떤 상황이 전개돼야 할까. 이전에도 그렇듯 국내외 경제위기, 그룹차원의 위기는 아닐까 걱정된다. 삼성 등 대기업의 위기가 국가경제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표적 재벌개혁학자인 박상인 서울대 교수는 자신의 저서 <삼성전자가 몰락해도 한국이 사는 길>에서 “삼성전자의 몰락은 삼성그룹의 몰락과 한국 경제의 위기로 전이될 수 있다”면서 “삼성 리스크가 현실화된다면 한국 경제와 사회는 1997년의 경제위기 당시보다 더 혹독한 시련을 겪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삼성그룹에 의한 국내 경제력 집중의 심각성이 과도한 상태라면서 “삼성전자의 몰락이 삼성그룹의 수직적 계열화와 계열사 간 출자구조를 통해 삼성그룹의 몰락으로 전이되고, 삼성그룹의 몰락은 국가경제의 위기로 전이될 수 있다”면서 “삼성전자의 몰락이 삼성생명과 삼성화재의 도산으로 전이될 경우, 국내 보험산업 자체가 무너짐으로써 금융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 또한 삼성그룹 계열사들과 하청기업들의 도산이 현실화될 때 실업률이 약 7.1% 증가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2014년 기준 삼성그룹의 매출액은 약 303조원, 자산총액은 약 623조원이었다. 해당년도 한국 GDP는 약 1458조원으로 삼성의 매출은 우리나라 GDP의 20.4%였으며, 자산총액은 GDP 대비 42%를 차지했다. 2012년 기준 삼성그룹은 한국 수출의 28%를 담당했으며, 2013년 기준 삼성전자의 수출은 우리나라 총 수출의 25%를 기록하기도 했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매출 240조원, 영업이익이 54조원 등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최순실은 박 전 대통령의 비선실세로 국정농단 사태로 세간에 알려졌다. 최씨 부친인 최태민 목사는 박정희 대통령 독재시절 박근혜 와의 친분관계를 이용해 부정 축재를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최태민은 고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에게 암살된 후 상심한 박근혜를 위로하면서 인연을 맺은 관계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 5일 이재용 부회장이 석방된 후 언론들은 잇따라 조기 복귀와 관련된 기사들을 내놓고 있지만 이 부회장은 지난 23일 삼성전자 이사회에 불참했다. 이 부회장은 두문불출하면서, 경영진과의 대면 접촉도 자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부회장 석방 이후 금융감독원은 이건희 회장의 차명계좌 검사에 나섰으며, 이명박 전 대통령이 실소유주로 알려진 다스의 미국 소송비용 대납 의혹까지 불거졌다. 검찰은 이건희 회장의 차명계좌에 대한 수사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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