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안= 김지형 기자] 지난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신경영 선언 이후 이건희 회장은 마치 황금의 손을 가진 *미다스 왕과 같았다. 당시 마누라∙자식 빼고 싹 바꾸라”면서 재계 크나큰 반향을 일으켰던 이 회장은 이후 반도체∙가전∙휴대전화∙평면TV 등 손에 대는 사업마다 대박을 터뜨리며 삼성신화를 창조했다. 하지만, 삼성사단의 일등을 향한 집착, 목표에 대한 일사불란함, 성과중심, 한국 특유의 재벌∙족벌경영은 아들 이재용 부회장에게 단기적 성과에 대한 중압감,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특혜청탁 의혹을 낳는 등 결국 경영 행보에 걸림돌로 작용했다. 뇌물공여∙횡령 혐의로 1년여동안의 영어 생활 끝에 지난 5일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구치소에서 풀려난 이 부 회장은 “죄송하다”, “입원 중인 부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보러가겠다”고 말했지만 경영 승계 과정에서 그룹 총수로써의 자질과 리더십에 치명타를 입었다. 창업주이자 선대회장인 고 이병철 회장의 상속자로써 삼성제국을 초국적 기업집단으로 도약시킨 아버지의 업적은 얄궂은 운명의 이재용 부회장에게는 넘기 힘든 장벽이 돼 버렸다.

왼편: 이재용 부회장, 오른편: 이건희 회장 (사진=뉴시스)
왼편: 이재용 부회장, 오른편: 이건희 회장 (사진=뉴시스)

◆ 미다스의 손 vs. 마이너스의 손
2017년 연결기준 매출 240조, 영업이익 50조. 시가총액 314조 5,469억원. 삼성전자는 전세계적인 불경기 가운데서도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부품사업 호황 등에 힘입어 지난해 사상 최대 수익을 거둬들였다. 삼성전자의 매출은 대한민국 한 해 예산의 절반에 육박하며 그 수익은 왠만한 국내 지자체 예산의 10배를 넘는다. 20여년 전 터진 IMF구제금융위기와 지난 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글로벌 경기침체 파고 등을 거치면서 우리나라 중산층은 무너지고 수많은 대기업∙중소기업들이 구조조정과 폐업에 내몰렸지만 이건희 회장의 일류전략은 승승장구했다. 소니, 도시바, 샤프 등 극일을 주창해왔던 이 회장은 전 세계 전자업계에서 선두주자들을 추격하고 따돌렸다. 이 회장이 취임했던 1987년 당시 삼성그룹의 총 매출(17조 4,000억원)과 비교할 때 지난해 삼성전자의 성적표는 상전벽해다. 신경영 기치를 내건 20년 전 삼성그룹의 매출이 29조원 정도였지만 2013년 기준 380조원으로 13배 가량 급증했다. 세전이익은 8,000억원에서 38조원으로 47배 가량 늘었다. 2013년 기준 대한민국 국내총생산(GDP)이 1,428조였다는 것을 감안할 때 삼성그룹의 매출은 우리나라 GDP의 26.6%를 차지했다. 삼성전자의 수출은 우리나라 총 수출의 25%에 육박했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의 와병 이후 삼성호의 조타수 역할을 했던 이 부회장이 잇따른 구조조정과 요원한 신사업 성과 등에 이어 뇌물공여∙횡령 혐의 등으로 구속되자 대기업 수장으로써 자질에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부회장은 353일 만에 석방됐지만, 마이너스 손이 아니냐는 자조마저 재계 일각에서 들린다.

 

◆ 칼 무뎌진 JY… 지배구조 개편∙신사업 ‘표류’
2014년 5월 급성 심근경색으로 이건희 회장이 쓰러지자 경영 전면에 나선 이재용 부회장은 실용주의와 선택과 집중을 강조하며 곧바로 비주력사업 정리에 나섰다. 이 부회장은 2014년 5월 삼성종합화학∙삼성토탈∙삼성테크윈∙삼성탈레스 등 4개 계열사를 한화에 매각하며 구조조정 신호탄을 올렸다. 당해 10월에는 삼성SDI∙삼성정밀화학∙삼성BP 화학 등 나머지 화학계열사들을 3조원에 롯데그룹에 팔아 넘겼다. 또한 2015년 1.5조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한 삼성중공업에 강도높은 인력 구조조정을 주문하면서 1년여만에 2,000여명의 임직원이 짐을 싸기도 했다. 이후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을 추진했지만, 국민연금 등 대주주들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숨가쁘게 진행됐던 구조조정과 사업재편은 이 부회장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휘말리면서 지난 해 2월 법정 구속되자 무기한 보류됐다. 그간 이재용 부회장이 야심차게 추진했던 신수종사업도 리더십 공백에 빠지면서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바이오산업과 자동차 전장(전자장비)분야다. 삼성이 제약∙바이오 업종에 진출하자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이 아니냐는 비판이 관련 업계 일각에서 제기되기도 했고, 전장분야의 경우 중소영역 침범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진입장벽이 높은 두 분야에서 삼성은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두고 있다. 이를 반증하듯 삼성그룹 계열 바이오의약품사업부인 삼성바이오로직스와 그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지난 2017년 각각 992억, 878억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2017년 영업이익은 지난해 629억원을 기록하며 전년의 304억원 적자에서 흑자전환했지만,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영업이익은 2016년 989억원의 마이너스(-)에서 지난해 1,038억원으로 오히려 적자폭이 커졌다. 지난 2016년 11월 코스피에 입성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상장 전 3년연속 적자를 기록해 상장과 관련, 특혜의혹이 불거진 바 있다. 한편, 삼성그룹은 지난 2015년 말 전장사업팀을 신설하며 15년 만에 자동차 사업 부활을 알렸지만 자동차 시장에서 아직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한 자동차 업계 임원은 “삼성의 자동차산업 진출이 IMF 트라우마를 다시금 상기시킨다”면서 “당시 국내 대기업들의 중복투자, 과당경쟁, 공급과잉 논란을 초래한 삼성자동차는 정식 판매 1년도 안 돼 가동 중단∙부도 처리 돼 정부가 인위적으로 교통정리를 하는 등 골칫거리가 됐다. 전 세계적으로 경기 회복이 더딘 가운데 신차판매가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는 상황인 만큼 삼성의 자동차산업 재 진출은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전장사업과 바이오사업을 전략사업으로 선택,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신화를 이어가겠다는 구상을 밝혔지만 당분간 경영 공백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차세대 먹거리 찾기와 지배구조 개편 등을 골자로 한 ‘뉴삼성’ 전략에는 여전히 암운이 드리워져 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프리기아 출신 미다스 왕은 술에 취한 디오니소스의 스승 실레노스를 돌보아 줬다. ‘술의 신’ 디오니소스는 그에 대한 보답으로 미다스 왕의 손에 닿는 모든 것을 황금으로 변하게 하는 소원을 들어준다. 가난한 집안 출신으로 신탁에 의해 왕이 된 미다스 왕은 결국 자신의 탐욕으로 인해 딸마저 황금으로 변하게 되는 신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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