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한 행사에 참석한 박근혜 전 대통령(왼쪽)과 이재용 부회장(오른쪽)이 대화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삼성전자의 한 행사에 참석한 박근혜 전 대통령(왼쪽)과 이재용 부회장(오른쪽)이 대화하고 있다.(사진=뉴시스)

[뉴시안=김지형 기자] 세상에 공짜가 있을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국정농단’ 비선실세 최순실씨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뇌물공여 등의 혐의 일부만 인정받아 얼마 전 풀려났다. 재판부는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의 회유를 이기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뇌물을 줬다고 판단했지만, 박 대통령의 손을 잡았을 때 경영 승계ㆍ특혜에 대한 명시적ㆍ묵시적 청탁을 기대하지 않았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공짜 점심은 없다. 양쪽 다 서로에게 언젠가 한번쯤 도움이 되길 바랐기 때문에 인연을 맺었고, 이 부회장은 자칫 대기업 수장으로써 명운이 걸린 박근혜의 ‘독배’를 수락했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이재용의 의존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는 전형적 수동성이며, 이 부회장은 경영에서도 남이 질질 끌지 않으면 가지 않고, 남이 밀면 피하지 않고 떠미는 대로 가는 ‘소’와 같은 면모를 보였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의 차세대먹거리로 거론하며 착수한 5대신수종사업 중 하나인 바이오ㆍ제약 사업과 자동차전장사업이다.

◆ 삼성에 대한 정부의 R&D 등 지원 지양해야

삼성이 바이오ㆍ제약 시장에 진입하기 전 국내 제약시장은 전통적으로 우량기업과 중소기업들의 안방이었다. 국내 제약 ‘빅3’ 기업들은 연간 매출 1조원 정도다. 초국적 기업 삼성전자(2017년 기준 매출 240조원)를 비롯해 전 세계 제약시장의 공룡기업인 화이자ㆍ머크ㆍ로슈ㆍ베링거인겔하임ㆍ존슨앤존슨ㆍ노바티스 등 자금력이 막강한 글로벌 기업들과 국내 제약업계와의 경쟁은 마치 ‘어른과 아이의 싸움’과 같다.

이재용 부회장은 과감하게 미래 사업으로 전자에서 제약ㆍ바이오 분야를 선택했다는 긍정론도 있지만, 국내 업계에서는 대기업의 침범이라는 쓴소리를 했다. 이들 국내 제약업계는 그간 외국계 다국적사가 판권을 가진 오리지널 의약품을 경쟁적으로 도입해 대신 판매하면서 몸을 불리거나, 특허가 만료된 블록버스터(판매효과가 막대한 의약품)급의 제네릭(복제약)을 값싸게 제조해 파는 영업전략에 승부를 걸었다.

이로 인해 국내 대형 제약업계는 외국계제약사 제품을 따내기 위해 목을 매는 ‘외자사도매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았고, 정부에 대한 인ㆍ허가, 약국 및 중대형 소형병원 등에 대한 로비까지 온갖 비리ㆍ청탁, 브로커와 로비스트가 판을 치던 아니 현재도 그러한 전쟁터가 돼 왔다.

삼성의 제약ㆍ바이오 진입은 시작부터 그러한 반칙게임이었다. 삼성의 제약ㆍ바이오 회사는 처음 외국기업과 합작투자로 출발해 정부의 무상지원 혜택을 받았지만, 결국 외국인 지분이 팔리면서 무늬만 외투기업 아니냐는 힐난을 받았기 때문이다.

지난 2011년 삼성바이오 설립 당시 미국 신약회사 싱가포르법인인 ‘퀸타일 아시아(Quintile Asia)’로부터 자본금의 10%에 해당하는 300억원의 투자금을 유치했고, 외국인투자기업으로 위장하면서 삼성바이오가 국민의 혈세로 조성된 당시 시가 2,200억원의 인천 송도부지를 50년간 무상임대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인천 송도 3공장 전경 (출처=삼성바이오로직스)
삼성바이오로직스 인천 송도 3공장 전경 (출처=삼성바이오로직스)

현재 삼성의 바이오사업을 담당하는 삼성바이오로직스와 그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는 무상임대 특혜 의혹을 받고 있는 송도 경제자유구역 내 설립돼있으며, 그 부지는 축구장 38배(27만여㎡) 크기다. 삼성은 아직까지 이중 일부에만 생산설비 등을 지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이재용 부회장을 포함한 오너가가 상당한 지분을 소유한 삼성물산 계열로 편입됐고, 이후 2016년 11월 공모가 13만 6,000원에 코스피에 상장됐다. 당시, 퀸타일은 상장 직전인 2016년 4월 10%의 지분을 거의 매각했다. 인천시와 맺은 외국인 지분률 유지 의무기간 5년이 지난 시점이였다. 이로 인해 삼성이 송도 부지를 무상임대하기 위해 편법적으로 외국투자를 받은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다.

삼성에 대한 정부의 전폭적 지원은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 과정에서도 지속됐다. 상장 전 3년째 적자를 내던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기존 상장 조건에 부합하지 않았지만, 한국거래소는 2015년 11월 관련 규정을 개정했고 연간 50조원이 훌쩍 넘는 수익을 내고 있는 삼성그룹 계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조그만 바이오벤처와 비슷한 수혜를 입었다.

이 시기는 박근혜 정부 집권 중기로 박 전 대통령은 2015년 12월 인천 송도에서 열린 삼성바이오로직스 제 3공장 착공식에 정ㆍ재계 인사들ㆍ고위 관료들과 함께 직접 참석하기도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바이오산업에 대한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을 힘주어 연설했고, 이재용 부회장은 재계 임원들과 함께 연단 밑에서 박수를 쳤다. 이는 개발독재시기, 사카린밀수사건 등 각종 비리 스캔들을 일으키며 비자금ㆍ부정청탁ㆍ뇌물로 점철됐던 국내 대기업들의 온갖 과오를 지켜보는 듯 한 기시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인삼성바이오로직스 제3공장 기공식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
삼성바이오로직스 제3공장 기공식에 참석한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 신사업에서 ‘을’의 전략을 선택한 황태자

바이오산업과 자동차산업이 이재용에게 날개를 달아 줄 준마가 될 수 있을까. 규제산업인 바이오ㆍ제약과 완성차에 납품해야하는 자동차 전장사업은 이재용 부회장에게 정부와 다른 글로벌 기업에 대한 을의 위치를 선택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삼성그룹이 바이오사업과 자동차 전장사업을 차세대 먹거리로 선택하면서, 전자업계에서 누려왔던 상대적 ‘갑’의 위치에서 ‘을’의 위치로 전락하는 모양세가 된 것이다. 정부 인ㆍ허가와 대기업에 대한 파트너십ㆍ납품, 제품 판매ㆍ허가를 위해 대정부ㆍ대기업 로비를 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재용의 ‘뉴삼성’ 전략은 중소기업과 별다른 차별점이 없다.

삼성이 선택한 사업은 제약ㆍ바이오산업에서 ‘바이오시밀러(biosimilarㆍ특허가 만료된 바이오의약품의 복제약)’의 개발제조및판매ㆍ위탁생산(CMO)을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삼성은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1공장(3만ℓㆍ2011년), 2공장(15만ℓㆍ2013년)에 이어 지난해 말 3공장(18만ℓ)까지 준공하면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글로벌 경쟁사와 어깨를 같이하는 연간 36만ℓ의 생산 능력을 갖추게 됐다. 제약사의 의뢰를 받아 의약품 생산을 전문적으로 대행하는 CMO사업의 경우, 국내 중소기업ㆍ바이오벤처뿐만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는 베링거인겔하임, 론자 등과 샅바싸움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계약 규모는 10개사, 15개 제품으로 스위스의 로슈와 미국의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퀩(BMS) 등에서 수주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수익을 위해서는 해외 블록버스터급 바이오의약품의 도입이 필수적이다.

이는 글로벌제약사의 판권ㆍ특허권으로 막혀있다. 글로벌 제약사의 제품과 기술을 도입하고, 이를 위탁생산하기 위한 시설에 대한 인증, 그리고 생산ㆍ판매까지 해당국가 의약당국의 허가 등 여러 가지 절차와 규정을 통과해야 한다. 이후, 제품판매 가격과 의약품의 보험급여 적용 여부 등도 당국과 협상 등이 필요하다. 처방 부분에서는 병원 등 의료기관이 관여하는 사업이다.

바이오전문 마케팅ㆍ리서치업체 바이오플랜 ‘어소시에이트’에 따르면 고객(제약사)이 CMO 계약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조건은 생산스케줄 준수로 나타났으며, 이로 인해 스케줄 준수와 바이오의약품 시장 선점을 위한 글로벌 플레이어간 경쟁은 점차 치열해지고 있다.

또한 통산 CMO 계약부터 실사, 기술이전, 생산 인증까지 거쳐야하는 단계는 10여개 과정으로 4년여의 긴 시간이 필요해 상용화 실패 시 고객사 및 위탁업체의 커다란 손실이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즉, 돈과 속도다. 이 부회장이 조급했던 배경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이 부회장을 조사했던 특검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상장 과정에서 부정청탁이 있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고, 정치권은 대기업이 송도 부지를 무상임대하자 특혜 아니냐고 질타하기도 했다. 개발독재 시기 국민 세금을 빼내 땅집고 헤엄치던 대기업들의 행태와 뭐가 다르냐는 지적도 받고 있다.

이와 관련, 이 부회장이 박근혜 정부시기 특혜와 관련 청탁 의혹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의존적인 사업ㆍ경영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주장과 함께 전 세계적으로 막대한 매출을 올리는 삼성전자를 거느린 오너일가가 정부의 지원을 기대하는 등 과도하게 보수적이고 수동적인 전략을 취하고 있다는 비판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이렇게까지 해서 바이오사업과 대기업을 밀어줘야 하냐는 것이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삼성이 제약ㆍ바이오업계에 진출했을 때 국내외에서 활발한 인수합병(M&A)을 하는 등 선순환적인 활동을 기대했지만, 소극적 투자로 인해 국내 제약시장을 나눠먹기 하는데 그치고 있다”고 평가 절하했다.

전 세계 바이오의약품 시장 규모는 2014년 1,839억 달러에서 오는 2020년 2,780억 달러로 커질 전망이다. 삼성그룹은 지난 2011년 바이오의약품 생산을 위탁 생산하는 삼성바이오로직스를 합작회사로 설립하고, 이듬해 바이오시밀러 개발과 상용화를 위해 그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설립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지분 94.6% 보유하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상전 전 퀸타일이 지분을 매각하면서, 2016년 말 기준 삼성물산(43.44%), 삼성전자(31.49%), 기타기관투자자및기타주주(21.67%), 우리사주와 퀸타일이 각각 3.33%와 0.07%를 보유하고 있다.

한편, 이재용 부회장은 신수종사업으로 자동차전장사업 카드도 꺼냈다. 전기차 배터리를 개발하기 위해 세계 1위 전장기업 보쉬와 합작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또한, 네비게이션과 대쉬보드 부품 등 전장부품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이는 이전에 완성차에 납품하던 중소영역으로 전자대기업이 계기판, 네비게이션, 전후방 센서ㆍ디스플레이기기 등뿐만 아니라 전기차ㆍ자율주행차를 개발하는 등 자동차업계에서 초유의 IT전자ㆍ통신ㆍ기계의 융합을 시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삼성전자는 미국의 자동차전장 전문업체 하만을 지난 2016년 9조에 인수하기도 했으며, 2015년에는 전장사업팀을 신설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자동차업계 한 임원은 “삼성이 자꾸 중소영역ㆍ우량기업 영역이었던 자동차 전장부문에 대한 진입을 대대적으로 마케팅하고 있다”면서 “삼성이 국내 완성차업계에 고분고분한 협력사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간 납품업체에 독점적 지위를 누렸던 완성차업계가 기계업종의 특성으로 전자를 중심으로 한 삼성과 관계가 틀어진다면 칼날이 되레 국내 완성차뿐만 아니라 관련 우량기계ㆍ중소전장업계에 위협이 될 수 도 있다”고 토로했다.

이재용 부회장이 지난 5일 서울구치소에서 풀려나자 경영 복귀와 추가 투자가 발 빠르게 실행될 것이라면서 언론ㆍ증권가 등 금융업계ㆍ삼성바이오 및 자동차관련 사업부들은 장밋빛 전망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평창올림픽 참관차 방한한 알랭 베르세 스위스 대통령이 스위스 로슈와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인천 송도 본사를 지난 8일에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2공장은 지난해 미국식품의약국(FDA)과 유럽의약품청(EMA)로부터 첫 생산제품에 대한 제조승인을 획득한 바 있다.

삼성바이오에피스의 경우, 류머티즘 관절염치료제인 ‘엔브럴(Enbrel)’의 바이오시밀러(베네팔리)가 지난 2016년 EMA으로부터 판매허가를 받았고, 지난해 말 로슈의 유방암치료제 ‘허셉틴’의 바이오시밀러에 대한 판매허가를 유럽에서 받기도 했다.

2016년 11월 상장됐던 삼성바이로직스(공모가: 13만 6,000원)는 지난해 9월 사상 최초로 30만원을 돌파했으며, 이후 고공행진을 거듭하면서 이날 오후 2시 51분 현재 전날보다 2만 500원(+4.82%) 오른 44만 5,500원에 거래되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2017년 영업이익은 지난해 629억원을 기록하며 전년의 304억원 적자에서 흑자 전환했지만,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영업이익은 2016년 989억원의 마이너스(-)에서 지난해 1,038억원으로 오히려 적자폭이 커졌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애초 나스닥상장을 계획했으나 계획을 틀어 국내 코스피에 상장했으며, 삼성바이오에피스가 나스닥에 상장될 것이란 전망도 시장 일각에서 솔솔 피어나고 있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2월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로 지목된 최순실 씨에 대한 뇌물공여 혐으로 구속기소됐지만, 1~2심을 거치면서 일부 혐의만 인정돼 징역 2년4개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석방됐다.

지난 5일 이 부회장은 서울구치소에서 나오면서 “송구스럽다”면서 “지난 1년간 나를 돌아보는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다. 앞으로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소회를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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